brunch

매거진 퇴사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규진 Nov 11. 2017

청춘마리오네트 #5

운명: 거스를 수 없는 도면

잠겨버린 문 앞에 서서♩

천국을 갈망 한다네♪

두드릴수록 멀어지는 일상의 계획♬    


라디오에서 존 케이브(John Cave)의 ‘천국의 소리(sound of heaven)’가 들려온다. 이전에 몇 번 들어본 곡인데 가사는 기억나지 않아도 음정의 애절함이 늘 가슴에 남는다. 오늘은 재복이와 함께 새로운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볼 셈이다.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둔  상근이에게 몇 달 전부터 부탁해서 겨우 빌려낸 것이다. 상근이의 말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이미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되었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고 한다. 상근이의 과장을 감안해서 듣더라도 난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내 오른손에 3D 프린터로 만든 총기를 버젓이 들고 있다는 것을. 영국에서는 이 총을 데스티니 건(Destiny Gun)이라고 부른다는데 정말 세상이 많이 발전했나 보다. 글자를 인쇄하던 프린터가 이제 총기를 제작한다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운명의 장난이 아닌가.  

  

  - 형, 하얀색 총 어디서 났어? 새로 나온 모델이야?

  - 재복아 이건 비비탄 총이 아니야. 우리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아니라는 거지

  - 에이, 형. 누가 봐도 플라스틱 장난감 총인데? 그리고 형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놀던

    거 보다 멋있지 않아.     


어디를 겨냥해야할지 몰랐다. 지금의 나를 만들고, 오늘의 이곳에 서 있게 한 누군가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현기증이 나에게 손짓하기 시작할 때쯤 나는 재복이와 함께 삼송마트까지 뛰어갔다. 안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오락기 앞에 말없이 앉았다. 재복이는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면서 나와 같은 시늉을 하고 있다. 가슴 속에 품고 있던 데스티니 건을 꺼내어 오락기를 겨누었다. 그리고 방아쇠 끝자락에 집게손가락을 걸어본다.     


  - 이게 누구야, 명환이 아니니    


평소에 눈인사만 주고받던 주인집 아주머니가 말을 건네 온다. 하필이면 이럴 때 긴장을 흐르게 만들어버리다니. 우리는 분명 악연임이 틀림없었다. 총에 묻은 식은땀을 닦아내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재복이는 뭐가 좋은지 아주머니에게 헤벌쭉 입을 벌리고 필요 없는 대답을 연발하고 있다.     


  - 재복아, 이만 집으로 가자. 먼저 가보겠습니다

  -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재복이랑 맛있는 거 사먹어. 늘 챙겨주지도 못하는데 이럴 때 용돈이라도 줘야지

  - 아니, 괜찮습니다. 저희도 돈 있어요

  - 부담 갖지 말고 받아도 돼. 자식 같아서 그래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한 번 거절은 했지만 끝내 받아버린 5만 원짜리 지폐. 이 돈이면 라면이 몇 개이고, 아이스크림은 몇 개이던가. 오락 또한 실컷 하고 지겨워서 일어날 수 있는 큰 금액의 돈이었다. 이 돈으로 재복이와 함께 자장면과 탕수육을 실컷 먹고 싶은 욕심이 생겼지만, 아니 상상까지 이미 해버렸지만, 나를 묶고 있는 굴레를 끊어버리기로 작정하고 욕심을 향해 데스티니 건을 발포했다. 한껏 도도하게. 어설프게 당긴 방아쇠 덕분에 5만 원짜리 지폐는 비스듬히 찢어졌고, 뒤편에 위치하고 있던 나의 유일한 즐거움인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산산조각이 났다.     


이것이 나의 미래이자 운명이라는 것은, 세상에 강제로 태어나 산부인과 병동의 인큐베이터에서 호흡을 가다듬을 때 이미 정해졌다. 몸부림쳐도 몸서리칠 것이라는 사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청춘마리오네트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