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요리
사람과 사람이 만나 교류하는 방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과 일본은 비슷하면서도 참 다릅니다. 예를 들면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고 체면을 중시하는 점이나,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도 학년이 위라면 ‘선배(先輩)’라고 부르는 점은 판박이지요.
하지만, 정서적 거리감은 한국보다 일본이 조금 더 먼 것 같습니다(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생각이니, 재미로만 읽어주세요). 예를 들면, 일본에서 A가 B에게 C의 연락처를 묻는다면, B는 먼저 C에게 ‘A가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는데, 괜찮을까?’라고 물어보기 마련입니다. 당사자의 허락 없이 개인 정보를 건네면 실례니까요. 또, 친구와 식사나 술 약속을 잡을 때도 보통 한 달 전에는 ‘예약’을 합니다. 갑자기 ‘오늘 저녁에 시간 돼?’라고 묻는다면, 만남이 성사되지 않을 확률이 높지요.
연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인 친구들과 연애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니, 미리 약속하지 않고 찾아가거나, 하루에도 몇 번씩 메시지와 전화를 주고받는 일은 드물다고 하더군요. 물론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서로의 개인적인 일상에 관여하는 성향도 적어 보입니다.
가끔은 매정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거리감 탓에 많은 한국인 유학생이나 직장인이 외로움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편리한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가령, 회사 점심시간에 ‘혼밥’을 해도 눈치 볼 필요가 없다던가, 갑작스러운 회식이 거의 없다는 점이 그렇지요.
이처럼 미묘하게 다른 한국과 일본의 문화가 저는 비빔밥과 덮밥의 차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밥으로 한 그릇 요리를 만든다면, 다양한 재료를 매콤한 고추장 양념에 야무지게 버무린 비빔밤, 혹은 말 그대로 ‘지지고 볶는’ 볶음밥이 떠오릅니다. ‘우리’라는 틀 속에서 부대끼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들 대로 든 관계에 비할 수 있겠지요.
반면, 일본에서는 밥과 재료가 따로 노는 덮밥, 혹은 ‘돈부리(どんぶり)’가 대세입니다. 소스가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엄연히 층이 나뉘어 있으니 밥은 밥대로 토핑은 토핑대로 고유의 맛을 유지합니다. 어쩌면 상호간이 경계가 비교적 분명한 인간관계가 음식에 반영된 것은 아닐까요?
어느 쪽에나 장단점이 있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는 한국식 정 문화가 그리워지고, 요리는 일본식 덮밥에 선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비빔밥과 볶음밥도 자주 만들어 먹지만, 똑같은 재료가 주어졌을 때 조리하기 쉬운 쪽은 역시 덮밥이니까요.
덮밥은 근대화와 산업화가 이뤄지던 19세기, 빠르게 한 끼를 해결해야 했던 서민들이 즐겨 먹던 방식에서 유래했습니다. 종류는 튀김 덮밥인 ‘텐동(天丼)’과 장어 덮밥인 '우나기동(うなぎ丼)', 해산물 덮밥인 '카이센동(海鮮丼)', 소고기 덮밥인 규동(牛丼) 등 토핑에 따라 무궁무진합니다.
또, 이름이 독특한 덮밥으로는 ‘부모와 자식 덮밥’이라는 의미를 지닌 ‘오야코동(親子丼)’도 있지요. 흔히 닭고기와 달걀을 함께 익혀 밥에 얹은 일컫는데, 저는 오늘 이 오야코동의 연어 버전을 먹기로 했습니다. 연어와 연어알을 함께 올린 해산물 덮밥으로, 일본에서는 ‘카이센오야코동(海鮮親子丼)’이라고도 부릅니다.
생선회 덮밥을 만들겠다고 하니, 남편이 밥에는 단촛물로 간을 해달라더군요. 연어와 연어알은 제 입맛에 맞게 회간장에 짭조름하게 재운 뒤 밥에 올렸습니다. 밥이 뜨거웠기에, 얇게 썬 양파를 중간에 넣긴 했는데 필수는 아닙니다(만약 넣는다면, 취향에 따라 오이나 김, 깻잎, 시소 등을 사용해도 좋겠네요). 또, 사진에는 고추냉이가 빠졌지만, 취향에 따라 마지막에 올리시면 됩니다. 소스를 두 개 만드는 일이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연어회로 밥을 싸 먹으면, 생선초밥 맛이 나는 게 장점입니다.
재료(1인분 기준):
덮밥 - 밥 한 공기, 연어 150g, 연어알 45g, 양파 1/4개, 고추냉이(취향껏)
단촛물 - 식초, 설탕, 소금
회간장 - 간장, 청주, 미림
1. 식초와 설탕, 소금을 티스푼으로 3:2:1 비율로 섞어 단촛물을 만든 뒤, 밥 한 공기에 넣고 버무린다.
2. 간장, 청주, 미림, 물을 밥숟가락으로 6:2:2:1 비율로 섞은 뒤, 끓어오르기 직전 불을 끄고 냉장고에 넣어 미지근하게 식힌다.
3. 먹기 좋게 썰은 연어회와 연어알은 회간장에 약 20분간 재운다.
4. 양파는 슬라이스 한 뒤 얼음물에 담가 아린 맛을 뺀다.
5. 밥(1) 위에 양파(4)와 연어회와 연어알(3), 고추냉이를 순서대로 올린 뒤, 남은 회간장으로 부족한 간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