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예은 May 11. 2020

마음 가벼운 한 끼, 비건 스무디볼

일곱 번째 요리

어느새 집밥 시리즈를 시작한 지도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눈치 채신 분도 계시겠지만, 그동안 올린 요리 중에 고기를 주재료로 하는 것은 없습니다(물론, 콥샐러드 편에 스팸과 닭가슴살이 등장하긴 했지만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채식주의자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닙니다. 대체로 고기보다는 해산물과 채소를 선호하지만, 한국에 가면 치킨과 곱창은 꼭 먹고, 여행지에서도 음식을 가리는 법이 없으니까요. 게다가 누군가가 대접해주는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감사히 먹고, 남편이 해달라는 고기반찬도 흔쾌히 만들곤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채식에 지향점을 두고 때때로 육식을 하는 애매모호한 제 식습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저는 자타공인 고기파였습니다. 먹는 양도 엄청났지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는 성인 못지않은 양의 스테이크를 먹어 치우고, 친척들과 삼겹살이라도 구워 먹는 날엔 어른들이 놀랄 만큼 흡입하곤 했으니까요. 친오빠와 함께 자라며 불붙은 경쟁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먹성 좋은 소녀였습니다.


편식을 시작하게 된 건 고등학생 때의 일입니다. 기숙사 생활과 입시 스트레스 탓에 위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음식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었지요. 음식을 먹으면 아프니 자꾸만 식사를 피하게 되고, 끼니를 거르니 상태가 나빠지기만 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습니다. 병원에 다니면서 천천히 회복되었지만, 그 후로도 한 동안 고기, 특히 돼지고기만큼은 잘 소화시키지 못했기에 자연스레 피하게 되었습니다.


채식주의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쯤의 일이었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완전 채식주의’라고 불리는 ‘비거니즘(veganism)’은 살아 있는 생명을 착취하는 모든 라이프스타일을 거부하는 움직입니다. 여기에는 고기, 해산물, 달걀, 유제품은 물론 동물성 성분이 들어간 의약품, 가죽 제품, 그리고 동물 실험 화장품 등도 포함되지요. 나아가 채집 과정에서 많은 꿀벌을 희생시키는 꿀도 식단에서 제외됩니다.

Photo by Sven Scheuermeier on Unsplash


하지만 모든 채식주의자가 '비건(vegan)'인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경제적 여유나 체질, 삶의 우선순위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유제품과 달걀을 섭취하는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lacto-ovo vegetarian),’ 해산물까지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vegetarian), ' 붉은 고기만 금지하는 '폴로 베지테리언(pollo-vegetarian),’ 그리고 상황에 따라 육식도 허용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등 다양한 종류로 나뉘지요.


저는 금주나 다이어트처럼 특정한 강박이 생기면 오히려 쉽게 포기해버리는 나약한 인간인지라 채식주의자 선언은 아직입니다. 다른 이에게 강요할 생각도 없고요. 다만, 공장식 축산이나 필요 이상의 잔혹 행위에는 거부감을 느낍니다.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분쇄기에 갈리는 수컷 병아리나 한평생 좁은 철창 속에서 강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돼지도, 우리가 가족처럼 여기는 애완동물과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으니까요.

Photo by Nathaniel Yeo on Unsplash


그래서 조금 비싸더라도 동물복지 인증 제품을 이용하고, 고기보다는 해산물을, 해산물보다는 채소와 과일을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직접 동식물이 되어보지 않아 알 순 없지만, 그래도 소, 돼지와 같은 포유류보다는 어류가, 그리고 어류보다는 식물이 통증을 덜 느낄 것 같거든요. 물론 이 또한 생물학적으로 나와 비슷할수록 동질감을 느끼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겠지만요.


게다가 윤리적인 논쟁을 떠나, 지구 온실 가스 배출량에서 축산업 비중이 15%에 달하고, 현대인의 식단에 채소나 과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 가끔은 환경 보호나 건강을 위해서 채식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폴 맥카트니가 제안한 '고기 없는 월요일(Meat-free Monday)' 운동처럼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제가 아는 가장 쉬운 비건 요리인 스무디 볼을 만들어볼까 합니다.


일반적인 스무디에는 요구르트나 우유가 들어가지만, '비건' 스무디볼인만큼 아몬드 우유를 준비했습니다. 스무디 식감을 내기 위해 바나나는 있는 편이 좋지만, 다른 토핑용 과일은 입맛 대로 고르시면 됩니다. 든든하게 드시려면, 견과류를 듬뿍 올려도 좋겠지요. 입맛 없는 아침, 식사 대용으로도 손색이 없고, 나른한 오후를 깨울 간식으로도 안성맞춤입니다.

 

재료(1인분 기준): 아몬드 우유 약 2~3 숟갈, 바나나 1개, 망고 1개, 딸기 3개, 키위 반개

1. 망고는 씨를 가운데 두고 세로로 3등분을 한다. 씨가 없는 양쪽 과육에 벌집 모양으로 칼집을 낸 뒤,  과육이 드러나도록 뒤집어 눌러준다.

2. 토핑용 10조각을 제외한 나머지 망고 과육과 바나나 1개, 그리고 아몬드 우유를 믹서기에 갈아 스무디를 만든다.

3. 딸기는 꼭지를 떼고 세로로 슬라이스 한다.

4. 키위는 껍질을 벗긴 뒤, 한입 크기로 얇게 썬다.

5. 스무디(2)에 토핑용 망고(1)와 딸기(3), 키위(4)를 올려 스무디볼을 완성한다.


이전 07화 떠먹는 초밥, 연어와 연어알 덮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