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모처럼 남편과 함께 보낸 주말. 집 근처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했는데, 점원과 대화하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남편이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동안 일본어 진짜 많이 늘었네.
그렇다. 하루에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을 제외해도 일본어를 쓴 시간은 7시간 30분. 1년 반 남짓한 시간 동안 수많은 현지인과 전화로, 이메일로, 채팅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일본어가 안 늘래야 안 늘 수 없었다. 오히려 유학할 때 보다 일본어를 더 많이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일본어로 말할 때의 쭈뼛거림도 사라지고, 경어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그동안 월급을 받아가며 일본어를 공부했다고 생각하면, 이보다 더 큰 소득이 어디 있으랴.
일본 콜센터에서 상담원으로 근무하며 얻은 수확은 이뿐만이 아니다. 멘탈 회복을 위해 우울증과 관련된 책을 열심히 읽고, 몸 건강에도 신경 쓴 덕분에 생활 습관이 크게 개선됐다. 사실 스트레스는 사회생활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 다음 직장에서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콜센터에서 일할 때보다는 덜 흔들리리란 막연한 기대감이 든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콜센터 상담원을 접한다. 하지만, 실제로 몸담아 본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뉴스나 영화에서나 보던 직업을 직접 경험했다는 사실은 내 공감의 폭을 크게 늘려 주었다. 언젠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콜센터 직원을 등장시키리란 다짐도 해본다.
무엇보다 무직 상태였던 내가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타지 생활에 버팀목이 될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함께 고객의 고충을 처리한다는 동질감 덕분인지, 콜센터에서 만난 동료들과는 유난히 관계가 좋았다. 더 이상 그들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퇴사할 때 남는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이제는 상담원에서 고객으로 돌아가지만, 콜센터에서 근무한 520일간의 경험은 온전히 내 것이 되어 삶의 여러 순간에 나를 도우리라 확신한다. 지금도 고객의 문의에 성심성의껏 대응하고 있을 세상의 모든 콜센터 상담원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대표 이미지: Photo by Danielle MacInne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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