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가뭄 끝에
찾아온 불청객이
때 아닌 흙탕물 되어
맑은 계곡을 훑고 지나간다
온통 제 세상인냥
눈에 보이는 건 모두
발 아래 눌러 버리고
거침 없이 내닫는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계곡
누구 하나 나서지 않고
누런 황토물 뒤집어 쓴 채
하염 없이 떠내려간다
때마침
한 줄기 햇살이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장마에 찌든 구겨진 세상에
작은 등불 하나 밝힌다
철 지난 장마가
따가운 햇발에 밀려
아스라히 언덕 너머로 사라지면
따사로운 햇살이
우리를 환하게 밝히리라
세상이 참으로 엉망이 되어 간다.
온갖 오물을 뒤집어 쓴 괴물이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속인다.
언제쯤 이 장마가 끝이 나려나.
기약 없는 소망을 담아 강물에 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