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직장인 헬린이로 벌써 4년 차에 접어들었다.
나는 솔직히 유산소를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무게 치는 걸 좋아한다. 특히 근육 찢는 맛. ) 그래도 양심상 대사순환을 위해서(혹은 체중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 유산소를 강제로 해주는 편이다. 그럴 때는 보통 천국의 계단(=스텝밀, 트레드밀)을 이용한다.
이 기구는 짧은 시간 내에 고칼로리 소모가 가능하다. 하체 근육 강화, 심폐기능 향상에 특화된 운동기구로 취하는 자세에 따라서 타겟할 수 있는 부위가 다르며 코어강화까지 챙길 수 있는 말 그대로 “영양만점” 운동이다.
다만 강도가 높아 운동 중에 극심한 피로감을 받아 마치 천국에 도달하는 느낌을 준다고 하여 보통은 '천국의 계단'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전에 극단적으로 체중을 조절했을 땐 하루 2시간(출근 전, 퇴근 후)도 탔었지만 요즘은 평균적으로 주 1회~2회. 한번 탈 때 1시간씩 탄다. 다만 컨디션이 정말 좋지 않을 때, 혹은 시간이 넉넉하지 않을 때는 비슷한 생활 운동을 찾아서 유산소의 양을 채운다.
욕심이 있는 나는 10분을 타도 최고의 효율로 타고 싶어서 짱구를 굴리기 시작한다. "이 기구는 어떻게 타야 목표하는 시간을 채우고, 효과적으로 운동할 수 있을까"
그렇게 틈틈이 나만의 꿀팁을 적용해 보고 변화시키면서 지금의 루틴을 만들었다.
운동을 하는 친구들에게 내가 사용하는 방법을 말해주면 "그런 방법으로 타면 나도 해볼 수 있겠다."라고 말하고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쉽다는 건 아니다. 공중부양 기술 같은 거 아니다. 그저 약간의 자잘한 꿀팁들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실제 도움을 받고 해낼 수 있는 걸로 보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 좋지 않을까 한다.
고문기구 같은 천국의 계단을 한 시간이나 탈 수 있는지 나름의 꿀팁을 기록한다.
먼저 설명하기 전에 기구에 대해서 이해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천국의 계단은 19세기 초 영국 감옥에서 실제 죄수들의 고문기구로 사용되었다. 난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어쩐지 진짜 고문당하는 것처럼 죽겠더라.)
그러다가 1983년 운동기구로 상용화되었다.
"당연히 죄수는 중노동을 해야 한다"라며 징벌 도구용의 트레드밀을 개발한 사람. 기구 밑에 곡식을 빻거나, 물을 기르는 구조를 만들어서 생산적인 노동까지 시켰다. 분명 악마와 천재가 반반 섞여있는 것 같다.
아무튼 우리가 타야 하는, 넘어야 하는 이 계단은 고문 기구로도 사용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시작해야 한다. 그만큼 힘든 게 당연하다는 거다. (사실 모든 운동 기구가 그런 것 같지만.)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고문기구와 큰 차이가 있다.
고문기구와 가장 큰 차이점은 "시작과 끝을 본인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언제든지 내려올 수 있지만 본인의 의지, 고집에 의해서 버티는 것뿐이다. 정해진 시간을 채우고 온전히 내 힘과 의지로 해냈다는 걸 느끼게 되면 그것이 바로 극강의 성취감이 된다. 목표한 시간을 해내고 나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다. 이게 바로 인생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정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함 그 자체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느낀 희열 중에서 가장 효율적+안정적이고, 성취감을 주며 무엇보다 사랑스럽다. 게임을 하지는 않지만 아마 같은 원리가 아닐까 한다. 레벨 1부터 시작해서 본인의 힘으로 아이템을 하나하나 얻으며 성장해 가는 게 성취감이지 한 번에 레벨 100을 얻게 되면 특별한 감동이나 재미는 없을 것이다. 이 재미를 찾기만 한다면 누구나 천국의 맛을 볼 수 있다.
시작할 때부터 "오늘은 꼭 1시간 탈 거야!"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숨이 턱-하고 막히면서 힘이 빠진다. 목표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이다. 그럴 땐 나무를 보는 전략(=한놈만 패는 전락)이 필요하다. 보통은 나무가 아닌 숲(큰 그림)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명확한 목표가 정해지고 나서는 집중공략이 필요한 단계다.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하나씩 격파하기만 하면, 언젠가 숲을 이룰 수 있는 루틴을 만드는 것이다. 목표로 잡은 시간을 쪼개서 반을 나누고, 다시 반으로 나눠서 먹기 좋은 한입크기(?)의 작은 목표로 만든다. 그게 내가 쓰는 3,3,3 전략이다. 나한테 맞춰진 루틴이기 때문에 본인의 취향대로 변형해서 적용하면 더 좋을 거 같다.
방법은 우선 딱 10분만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리 헬린이, 기초체력이 없어도 10분은 해낼 수 있다. 그 시간을 3분, 3분, 3분, 1분(휴식)으로 나눈다. 그리고 처음 3분은 고강도(속력 10)로 탄다 > 중간 3분은 엉덩이를 타겟하여 2칸씩 올라간다 (속도 6~8) > 마지막 3분은 다시 고강도 or 신체리듬에 맞춰서 적절하게 조정한다. (속도 6~10 선택) 마지막 1분은 속도를 낮추고 짧게 휴식한다. (속도 4~6) 이렇게 1세트로 구성을 이룬다. 물을 마시는 시간도 중간중간 정해두고 마시면 최적의 리듬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본인만의 게임이 시작된다. 1세트를 하고 내려와도 되고, 그 이상을 해도 된다. 오로지 본인의 선택이다. 일단 눈앞에 있는 10분만 이기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무섭거나 두려움의 문제가 아니다. 약간의 오기도 생기고, 조금 더 해볼까? 욕심도 난다.
특히 시작하고 나서 1세트를 제일 심도 있게 집중해서 탄다. 1분은 곧 1시간이 될 가능성의 씨앗이다. 1세트를 버텼다면 이미 반쯤 성공해 버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10분을 6번만 반복하면 그만이다. 그 안에서 물먹는 타이밍, 자세를 바꾸는 타이밍은 본인 입맛에 맛게 구성하면 된다. 목표가 쉬워지면 성공이 쉬워지고, 작은 성공들이 모이면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에너지가 된다.
운동을 할 때 다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각자 다양한 표정들로 집중을 하고 있는데 그 속마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금 웃기지만 나는 운동을 하면서 동시에 “끝나고 집 가서 편하게 누워있는 나”를 상상한다. 혹은 “이미 운동을 끝내고 샤워실에서 따듯한 물로 씻고 있는 모습”을 생각한다. 특히 뜨거운 물로 지지듯이 씻는 걸 좋아해서 그 장면을 반복적으로 이미지 트레이닝한다. 각자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상상해도 좋다. 운동을 끝내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가는 것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보면 뭔가 힘이 난다. 이미 정신에서 "나는 운동을 해내 버렸고 그 이후에 뭐 할지 생각 중이야"라고 하니 몸은 자기도 모르게 생각을 따를 뿐이다.
운동할 때 땀이 나면 그 안에 “내 몸에 있었던 노폐물들과 찌꺼기 같은 오래 묵은 감정들이 다 몸 바깥으로 빠져나간다”라고 생각한다. 땀을 흘리면서도 나 스스로가 정화된다고 암시를 거는 거다. 특이 이 생각은 꼭 한번 해보길 추천한다.
내가 계획한 일정을 다 채우지 못하면 너무 화가 났었다. 혹시라도 예상에 없던 변수가 생기면 참을 수가 없었다. 욕심도 많고, 승부욕도 있어 하루에 채우고 싶은 목표치가 항상 높았다. 24시간을 48시간으로 늘리고 싶었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현실과 욕심의 괴리가 누적되다 보니 외부와 단절되는 생활패턴만 고집하게 되었고, 타인과의 관계가 점점 불필요해져 버렸다. 한동안은 정말 그렇게 살았다. [회사, 헬스, 집] 이 루틴으로만 살고 주말은 헬스를 다녀와서 도서관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나만 생각하다 보니 편하기도 했지만 점점 사회와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런 생활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현재가 괜찮다고 미래에도 좋을 거란 가능성이 없었다.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면 틈틈이, 꾸준히 투자를 해야 하기에 내 루틴에 대한 강박을 다른 방식으로 채워주기로 했다. 만약 주말에 지인과 약속이 있다면 평일에 미리 운동 횟수를 채워두거나 혹은 약속 전에 일찍 운동을 다녀왔다. 운동을 못할 것 같은 날이면 점심시간에 계단을 이용해서 유산소를 채우고, 퇴근할 때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갔다. 미리+틈틈이 시간을 쪼개서 해치워버리니 강박에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지금 쓰고 있는 글도 평일에 출퇴근시간에 틈틈이 적어둔 걸 다듬어서 업로드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한다면 포기하기 전에 방법을 찾아주자.
포기가 늘어나면 본인의 색깔이 흐릿해지고 점점 옅어져서 나중에는 형채도 잘 안 보이게 된다.
그냥 의무적으로 하는 운동일 수 있다. 성장이 끝나는 나이가 되면 실제로 생존을 위한 싸움이 된다. 몸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하고 고쳐서 사용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거라면 즐길 방법만 찾아줘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다. 뭐든 재미가 있으면 오래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