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나 역시 자잘한 흠이 많은 어린이였다.
물론 지금도 많지만.
불안감, 스트레스 지수가 굉장히 높았다.
(태생적인 것+외부영향)
초등학교 저학년 때 원인 모를 원형탈모에 걸려서 엄마 손잡고 병원에 주사를 맞으러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분명 붕어빵 사주겠다 해서 철석같이 믿고 갔는데, 길고 뾰족한 주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을 통틀어서 그렇게 큰 주사기는 처음 봤다. 그땐 엄마가 너무 미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속상하셨을지 상상이 잘 안 간다. 그래도 오는 길에 붕어빵 사주셔서 결국 해피엔딩을 끝났었다.)
그렇게 아이의 손에는 늘 아토피가 함께였고, 감기와 폐렴, 천식은 친구처럼 달고 살았다. 천식용 흡입기가 장난감처럼 생겨서 나는 그게 진짜 장난감 비슷한 건 줄 알았다. 그때는 다른 사람도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ADHD 기질도 있지만 현재는 일부러 판정까지 받지 않았다.
완벽히 판정이 나면 내가 지는 기분이랄까.
(그냥 똥고집이다. 아직 살만해서 그런 거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주기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고 있고, 직장생활 5년 차 갖은 병충해를 이겨내며 나름 단단해졌다. 필요하신 분은 반드시 병원으로 달려가시길. 그리고 글이 조금 뒤죽박죽 이더라도 양해 주시길. )
다른 일화로 한날은 아토피 때문에 국소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갔다.
*국소주사란?
국소부위(=특정부위)의 표피층에 맞는 스테로이드 성분의 주사다. 단기적으로 맞을 때는 즉각적인 효과가 있지만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장기적 치료로는 부적합하다.
나는 손마디에 아토피가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과 학습지 수업을 하듯이 나란히 앉아서 내 손을 보며 주사를 맞았었다. (표피층에 맞기 때문에 깊지는 않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다시는 맞고 싶지 않다.)
주사를 맞을 때면 가려운 것보다 너무 시원해서 오히려 행복하기까지 했다.
그때 선생님이 눈이 동그래지면서 나에게 "너 얼마나 가려웠길래 이 주사 바늘이 시원한 거야?"라고 하시며 눈가가 촉촉해지셨다.
근데 진짜 가려워 본 사람은 안다.
가려움이 사람 미치게 할 수도 있는 거.
덤으로 부정교합도 있었기에 학창 시절 때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다. 나는 스트레스를 미술로 풀었었다. (미친 사람처럼 닥치는 대로 그렸었다. 그래서 나름 학창 시절 국내, 해외를 가리지 않는 미술상 수집가였다.)
그러다가 가정의 붕괴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어렵게 잡고 있던 멘탈이 도미노처럼 멈출 줄 모르고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방문 판매원처럼 틈틈이 찾아오는 '무기력'과 '우울'에 끝도 없는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언제부터 무너지기만 했던 인생이 변화하기 시작했을까.
"매사에 감사하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런 말들을 정말 혐오하던 때가 있었다.
애초에 감사할 게 있어야 감사하는 거 아니냐고.
구질구질한 인생에 감사라는 단어가 나와야 말이지.
억지로 하는 게 도움이나 되겠냐고.
애석하게도 지금은 이게 맞다는 결론이 나온다.
앞만 보고 산을 오를 때는 미친 듯이 힘들고
곧 숨이 끊어져 죽어버릴 거 같은데
멈춰서 뒤를 돌아보면
그제야 탁- 트인 시야가 눈에 들어온다.
올라가야 아름다운 풍경이 보인다.
나는 지금 정말 감사하다.
이게 주관적으로 내가 일종의 정신승리를 해버려서
도출된 결론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아토피, 우울로 인해서 얻은 것들을 소개해본다.
1. 식단관리
2. 욕구조절
3. 운동습관
4. 심리공부
1. 식단관리
=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말 먹고 싶은 대로 다 입으로 직행했다. 망설임은 없었고 그 덕에 독소로 가득했던 몸의 소유자였다. 지금과 몸무게가 별반 차이 나지는 않지만 운동을 한 뒤로 외/내적으로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요즘은 내가 아토피에 걸렸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오히려 피부가 왜 이렇게 좋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또 엄청 좋지도 않지만, 아무튼 진짜다.
보통 자유에서 얻는 즐거움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나치게 자유로운 상태에서는 오히려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이러한 이중성은 인간의 본질에 가깝지만 평소에는 자각하지 못하고 계속 밑도 끝도 없이 자유만 외쳤었다.
ex) 나는 아토피라서 저런 거 못 먹어
ex) 왜 나만 이런 병에 걸린 거야
해결될 수 있는 것에 에너지를 써야 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절제된 식단 그 안에서 나만의 자유를 찾아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것들 중이 어떤 것을 먹어야 심리적인 만족과 영양소를 골고루 가져갈 수 있을지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만의 레시피들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당분, 염분, 자극이 환상의 콜라보를 이루는 배달음식이 과연 영양소를 고려해서 만든 식사일까.
당연히 아니다.
그런데 대중적으로 너도나도 먹는 것처럼 보이니 익숙해지고 무뎌진 것뿐이다. 여기에서부터 구멍이 뚫린다.
( 그리고 이 구멍은 거대한 블랙홀로 발전된 가능성이 아주 높다.)
아예 배달음식을 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배민은 못 끊는다.) 그래도 횟수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예를 들자면 나는 한 달에 한 번만 월급 받을 때 치팅하는 날로 정했다.
그 이외의 시간에는 탄, 단, 지를 고려하면서 먹는다.
매 끼마다 어떻게 그걸 고려하냐고 하지만.
나는 한다.
건강에 대해 절박하면 하게 된다.
그 대신 건강이라는 확실한 보상을 얻을 뿐이다.
2. 욕구조절
= 회사에 간식이 들어올 때, 주변 지인들과 식사를 할 때, 아니면 호르몬의 변화로 눈이 돌아버릴 때 등등 욕구를 참기 힘들다. 그때는 감정이 널뛰기하듯 폭주할 때가 있다. 그때조차 나는 브레이크가 걸리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초콜릿을 먹어도 단백질 초콜릿을 먹는다
-과자를 먹어도 유탕처리 제품을 먹지 않고 구운 걸 먹는다
- 배달 음식을 먹어도 야채와 같이 곁들여 먹는다
- 술을 먹고 난 다음날은 무조건 운동 2시간으로 땀을 뺀다
등등 나만의 작은 브레이크들이 나를 폭주하지 못하게 막아준다. 물론 더 관리를 철저하게 하시는 분들은 간식을 아예 입에도 대지 않겠지만 나는 이 정도가 적절하다.
한순간의 자극, 도파민이 지나가면 그제야 알 수 있다.
그 도파민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그냥 한순간의 욕구해소 용이었는지.
담배는 끊어도 술을 못 끊는 사람이라 대신 1년에 주기적으로 금주기간을 가진다. (하지만 역시 쉽지는 않다. 그냥 하루하루 도장 깨기 할 뿐이다.)
3. 운동습관
=내가 미친 듯이 사랑하는 최애의 도파민이다. (나는 도파민 중독자다. 폭죽놀이처럼 아주 팡팡 터지는 걸 좋아한다.)
그동안 맛본 도파민 중에 감히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다.
운동을 할 때는 진짜 죽을 것처럼 이 악물고 한다.
(당연히 유지만 위해서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나는 변하는 내 모습을 꽤 즐기는 편이다.)
그렇게 하면 진짜 변하고 성장한다.
피부도, 체력도, 멘탈도.
이 삼박자가 고루 변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체력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가끔 정신이 녹아내리듯이 아플 때 건강한 몸뚱이가 철근 뼈대처럼 단단히 버텨준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다.)
4. 심리공부
= 아토피가 왜 고칠 수 없는 병일까.
나는 스트레스, 체력, 식습관 등등이 고루 잘 뭉쳐진 복합적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개개인별로 상황이 다르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부분/ 강한 부분이 다르다.
그래서 평균적인 답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다는 건 살기 위해 스스로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공략집 따위는 없는 게임을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요즘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운동, 심리, 재테크가 범벅이 되어있다. 심리적으로 가난한 부자가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불평할 시간에 행동으로 배우는 중이다.
중간에도 한번 언급했지만
인생은 등산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한 번에 정상에 오르는 스펙터클한 마법은 이 세상에 없다.
내가 갑자기 정신개조가 되어서 지금의 루틴을 가지고 살고 있을 리가 없다. 죽을 것 같은 고비를 무수히 많이 넘겼고, 앞으로도 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별것 아닌 내 과거를 첫 화에 기록하는 것은
그 과거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말은 진정한 사실이다.
다만 어떤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볼 것인지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불편, 불안을 즉각 제거해 버릴 수 없다면
현재의 내가 그 안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뭘지
깊게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즉각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잡아먹힌다.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데
내가 가지게 되는 특별한 시작은 뭘지.
당신만의 이야기에 집중해 보길 바란다.
그게 본인만의 뾰족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운동이야기 하겠다고 해놓고 과거 이야기만 해서 실망하셨다면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헬스를 미친 듯이 좋아하지만 그 본질 안에 깊숙이 들어있는 핵 같은 알맹이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기록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읽어준 당신에게 앞으로 써 내려갈 글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목적 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