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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ix Jan 08. 2023

새 구경이 주는 위안

저녁의 비행

 나에게 언제부터 새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는지를 물어본다면, 단연 9살 때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 이사 간 동네는 환경이 그다지 좋지는 않은 빌라촌이었다. 집 부근의 풍경은 '자연'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었지만, 동네가 산자락에 걸쳐있었고 근처에 논도 있어서 다양한 종의 새들을  볼 수 있었다. 시계소리가 아닌 진짜 뻐꾸기 울음과 밤의 소쩍새 울음을 처음 들은 곳도 그 동네에서였다. 내가 살던 에서 언덕을 따라 내려가면 보호수로 지정된 고목이 있었는데 구멍의 소쩍새가 낮에 나와 눈을 끔뻑기도 하였다. 쌀이 쌀나무에서 나는 줄 알던 시절이 있던 나의 모친에게는 곤혹스러운 환경이었다. 새라고는 참새, 까치 밖에 모르는 당신에게  한참 호기심이 많을 나이인 자식이 저 새의 이름은 무엇인지를 물어봤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의 모친은 자식들의 호기심을 억누르기보다 장려하는 쪽이라 서점에서 우리나라에 사는 새들에 대한 아름다운 문고본 책을 사 왔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새 박사로 유명한 윤무부 교수가 지은 책으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이름은 이 책들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새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게 되자 지나가는 새를 알아보는 것은 즐거움이 되었다.

어린시절 새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 줬던 추억의 책

 이런 나에게 있어서 "야외도감에서 보았던 이런 생명체들의 이름을 익히게 되었다면, 그건 신학기에 우리 반 친구들의 이름을 꼭 알아야 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그랬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동물학자 헬렌 맥도널드를 알게 된 것은 필연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나는 새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에 비해, 실제로 탐조활동을 본격적으로 나가거나 관련된 책을 찾아 읽는 편은 아니었다. '저녁의 비행'이란 책을 손에 넣게 된 것은 우연의 산물이다.   페이스 북 포스팅에서 그녀의 첫 작품인 '메이블 이야기(H is for hawk)'를 극찬 것을 은 것이 헬렌 맥도널드를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포스팅을 올린 분도 '메이블 이야기'를 우연한 기회에 게 됐는데, 이웃이 잘못 주문한 한국어 판 책을"너는 한국인이니깐, 읽을 수 있지?"라며 게 된 것이다. 우연히 얻은 책이 마침 훌륭했을 뿐더러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널리 퍼뜨렸기에 내가 '저녁의 비행'을 읽을 수 있었다.  경우는 '저녁의 비행'을 려준 책을 돌려받지 못한 대가 얻었다. 받을 책을 무엇으로 정할지 고민하다 '메이블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 그 보다 같은 작가의 작이 주는 입장에서 더 편할 것 같아 저녁의 비행을 받게 되었다.


 영국으로 오기 전 마지막 몇 달은 한국에서 쌓아둔 책을 독파하는데 많은 시간을 썼다. 좋았던 책도 있고, 책은 좋았으나 번역이 나쁜 책도 있었고, 다들 좋다고 했지만 이걸 굳이 시간을 들여 읽어야 하나 싶은 책도 있었다. 쌓여있는 책 중 두 권은 배낭에 챙겨 왔는데 하나는 부친께서 준 'Crying in H Mart'고 다른 하나가 '저녁의 비행'이다. 저녁의 비행은 처음부터 비행기에서 읽으려고 남겨두고 있었다. 비행을 하면서 저녁의 비행을 읽는 게 뭔가 그럴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행기의 이륙시간은 낮이었지만 어차피 기내식을 먹고 나면 소등이 되어 어두컴컴하므로 야간비행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 15시간의 비행시간에도 전부 그 책을 읽진 못했는데 헨리 8세를 빼닮은 영국 남자의 옆자리에 끼여오느라 책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땅에 내려와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밤을 뜬눈으로 보내며 읽어 내 되었다.

 

 당신이 만약 그저 자연을 지켜보기를 좋아한다면 이 책을 읽으며 완전한 이해를 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에서는 작가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철저한 고독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으면서 상했던 작가의 어린 시절의-십중팔구로 따돌림을 당했을 것 같은-모습이 책의 후반부에서 실제였다는 것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헬렌 맥도널드는 자연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인간관계를 쌓는데 서투른 필연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고, 외롭기 때문에 자연을 더 온전히 느끼는 사람이었다. 나 역시 외톨이 내력이 만만찮 작가가 아름답고 구체적인 단어로 자신의 슬픔을 묘사하는 것에 공감할 수 있었다. 외로운 사람들은 책을 읽으면서 왜 사람들이 야생 동물을 넋을 잃고 그냥 바라보게 되는지를 전적으로 이해. 우리는 외롭기에 우리 이외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새나 다른 야생동물이 있는 걸 봄으로써 세상에 우리 말고도 다른 존재가 함께한다는 확인할 수 있어서 우리는 자연을 사랑하고 또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확실히 엔진소리로 시끄러운 비행기보다는 숲을 산책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그날 본 어치를 떠올리며 읽는 게 더 어울리는 책이다.

도심에서 발견한 새들


 저녁의 비행의 일부 에세이에서는 인간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 대부분 나쁜 쪽이지만- 자연에 대해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룬다. 나는 영국에서 삶을 공백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환경 경제학 녹색금융 석사과정을 지원해 뒀다. 나의 두 번째 석사 지원서에는 온통 금융시장 관점에서 자본가가 말하는 지속 가능성이 뻔한 말로 점철되어 있다. 새로운 전공을 공부하기 전에 '저녁의 비행'을 읽고 조금 더 근본적인 부분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운명처럼 갖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처음 살기 시작한 나라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는 게 이틀째다. 공항에 내려서도, 새 거주지에 짐을 풀면서도 영국에 왔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집을 나서서 바닥에 떨어진 단풍나무의 종자가 한국보다 훨씬 커서 큰 곤충의 날개같이 보이는 것을 보고, 보도에 잠깐 내려앉은 새가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새인 것을 보니 외국에 나왔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결국 익숙한 자연과 야생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니 타향에 온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새 방에서 글을 적어 내려 가며, 작가의 한마디를 다시 생각해 본다. "지금은 집을 다르게 생각한다. 집이란 단순히 고정된 장소가 아니라 내면에 품은 공간이다. 아마도 새들이 그 점을 가르쳐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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