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달아준 훈장
하루가 길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 피곤해서 버스 안에서
병든 닭처럼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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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물먹은 수건처럼 무거웠고
체온계를 재보니 38.5도를 가리켰다.
해열제 하나를 먹고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리고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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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얼마간 쉬었다고
몸도 마음도 안정이 생겼다.
늦게 귀가한 딸 온유는 내 모습을 보고
아빠가 아프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 모습이 귀엽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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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필요한 것 있느냐는 말에
아빠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따뜻했다.
그리고 누워 있는 내 몸에
자기 몸을 깔아 뭉개고는 그동안의
일들을 조잘거리며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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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았던 일과 그렇지 못했던 일,
그 속에서 고마웠던 일, 깨달았던 일들..
온유가 처음 좋아했던 연예인이 가수 지코였다.
그래서 온유는 지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놀 것 같지 생겼지만 별로 그렇지 않아.
술도 서른 살이 넘어 먹었고, 담배도 피우지 않아.
책도 많이 읽어서..."
자기 나름대로 생각한 지코가 가진 매력을 들려준다.
그래서 지코가 자기의 롤 모델 중 한 명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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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닮고 싶은 롤 모델이 몇 명 있어.
그 중에 아빠도 닮고 싶은 내 롤 모델이야.
멋있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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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아이가 남긴 따스한 기운이 방안에 가득했다.
무척 고마웠는데 나는 온유의 말에
뭐라 답도 하지 못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편지를 써야 하는 날
고마웠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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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가슴에 훈장을 달아 주어 고맙다고,
다시 기운을 내게 만드는 말과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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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풍경 #15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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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 #노래하는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