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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방이 Oct 09. 2023

소유가 아닌 풍경으로 살기

<월든>을 읽고

‘내 생에 최고의 책’, ‘이 책을 읽고 독서광이 됐어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책’, ‘법정 스님, 간디, 마틴 루터 킹이 사랑한 바로 그 책!’


이렇게 많은 찬사가 붙은 책에는 신화가 생긴다. 엄청난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신화. 신화는 절대적이다. 재밌어야 하고, 교육적이어야 하고, 특별해야 한다.


지인 5명과 함께 <월든>을 읽었다. 모두 각자의 신화 속에서 엄청난 기대를 한 모양이다. 앞부분을 조금 읽은 3명이 재미없다고 한다.


“이게 왜 인생 책이래요?”


책을 넘기자마자 무릎을 탁 치는 인생의 묘수 같은 것을 기대한 모양이다. 신화는 절대적이지만, 책은 상대적이다. 읽는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모두 다르다. 간디에게 좋은 책이 꼭 나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책을 읽을 때는 자신이라는 필터를 거치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동영상의 발달로 독서 습관도 많이 바뀌었다. 자극적이고 즉각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읽을 수 있다. 참을성이 없어진 현대인들에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책은 읽기 힘들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책도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요약 영상이 많다. 그마저도 빨리 감기로 감상한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책의 내용과 지식을 빠르게 얻을 수 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무척 효율적이다. 그런데 뭔가 아쉽다. 동물원에서 호랑이는 못 보고 호랑이에 대한 안내판만 보고 온 느낌이다.        


베스트셀러 분야도 시대마다 다르다. 20년 전에는 ‘소설’, ‘사회과학’ 등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요즘은 '자기 계발'이나 '돈 버는 방법'에 관한 책들이 주를 이룬다. 지식도 소유하려는 사회다. 소설은 시간 낭비로 여겨지기도 한다.


책 <월든>은 천천히 읽는 책이다. 작가 소로가 소개해 주는 숲과 호수, 그리고 동식물들을 함께 보고 느끼고 상상하는 책이다. 그저 숲 속의 월든이라는 호수를 가만히 관찰하는 것. 그게 <월든>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효용이다. 의미는 그다음이다.


숲에 펼쳐지는 빛의 변화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 계절의 변화를 천천히 음미하는 것. 호수에 작은 배를 타고 낚시하는 상상을 하는 것. 평화와 여유가 내 안에 깃드는 것. <월든>을 읽으면 마음이 정화된다.


사르트르는 인간을 자유에 처형된 존재라고 했다. 오늘날 인간은 돈에 처형된 존재다. 돈은 결국 소유의 문제이다. 좋은 차, 좋은 가방, 좋은 집을 갖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늘 불안이 걸려 있다.      


3포, 5포, N포 세대가 속출하는 시대다. 연애 포기, 결혼 포기, 출산 포기, 내 집 마련 포기, 심지어 대인 관계까지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유는 돈이다. 돈이 뭐길래, 우리는 인생의 행복을 팔고 있는 걸까.


“나 자신이 뭇 새들의 이웃이 되었다. 내가 새들을 잡아두어서가 아니라 내 보금자리를 그들 곁에 만듦으로써 그렇게 된 것이다.” - 월든 중에서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소유에 대한 집착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책조차도 느끼고 감상하기보다 '앎'의 형태로 소유하려 드니 말이다. 소로는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기보다 우리 스스로 풍경으로 살아가길 권고하고 있다. 숲에서 살라고 한다.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독자들은 당혹스럽다. 갑자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숲으로 가 오두막을 짓고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엄마, 나 이제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 숲에 들어가서 살게요.”

“여보, 우리 앞으로 여생을 숲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자. 내가 꿩 잡아 올게.”     


엄마의 욕설과 아내의 한숨이 들려온다.      


“나가 이 새끼야.”

“아이고, 인간아~.”     


소로는 숲에서 살기를 강권하는 것 같지만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나침반대로 살라고 한다.     


"나는 이 세상 사람들이 가능한 한 다양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단,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이웃 사람의 방식이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 따르라고 밀해 주고 싶다."    


다행이다. 숲에서 사는 것만이 진리가 아니라니. 엄마와 아내에게 면목이 생긴다. 다만 돈의 노예로 살지 말고, 소유욕을 버리고 진실을 추구하며 살라고 한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 진실을 추구하며 살라는 말이 대체 무엇인가. 알쏭달쏭한 이 오묘하고 달콤한 명제에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이런 걸 생각하고 있는 것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지는 21세기다. 먹고살기도 빠듯한 세상, 그냥 술이나 마실까?    


"나는 사람들이 동경하고 추구하는 별에서 살았으며, 진실을 추구하며 살았다." - 월든 중에서  


책을 읽는 동안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있다가, 책을 덮고 나면 여러 생각들이 교차한다. 인생의 큰 줄기는 바꾸지 못하더라도, 삶을 대하는 태도는 바꿀 수 있다. 그리하여 필자는 이번 추석에 달구경 갈 때 카메라가 아닌 막걸리를 옆에 끼고 어느 시골 툇마루에 앉아 두보의 시를 읊었다. <월든>을 읽고 달 구경 갈 때 챙겨야 할 물건이 달라졌다. 소유가 아닌 풍경으로 남기 위해. 달빛 아래 막걸리 한잔 기울일 수 있는 낭만을 느끼고 싶은 분께 <월든>을 권한다.


"향기로운 안개에 아름다운 머리 젖고

맑은 달빛에 고운 팔이 차가우리.

어느 때나 얇은 휘장에 기대어

둘이서 달빛 받아 눈물자국 말리리."

-두보의 시, ‘달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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