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면옥〉 당신의 평양냉면을 뽑아주세요.
대외적으로 평양냉면을 좋아한다고 말하니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듯한 질문을 받기도 하고, 날카로운 느낌의 시험을 당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왜 이런 질문을 받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주변에 평양냉면에 관심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침을 튀어가며 열과 성을 다해 평양냉면에 관해 이야기해도 아무도 귀담아 들어준 적이 없었기에 이런 관심이 좀 낯설고 무서웠다.
평양냉면을 향한 사랑을 담아 얇은 책을 만들어 팔았던 적이 있는데 책을 들고 북마켓에 나가면 10명 중 9명은 비슷한 질문을 했다. “어디 제일 좋아하세요?”와 “거기는 가보셨어요?”. 일단 어딜 좋아하냐는 질문은 그나마 쉽게 답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제일 좋아하는 곳을 이야기하면 되니깐. 근데 나중엔 그 대답에도 탄식하며 거기보다는 어디가 더 맛있다는 둥 기어코 나보다 한 수 위로 이야기가 끝을 맺어야 그 사람과 안녕을 고할 수 있었다. 어디를 가봤냐는 질문은 큰 공포감으로 다가오는데, 평양냉면을 주제로 글을 쓸 주제가 되느냐 마느냐를 판단하며 나를 낭떠러지 앞으로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새로 생긴 냉면집을 이야기하며 거기는 먹어봤냐는 질문을 시작한다. 사진을 보여주고 여기가 어딘지 맞춰보라는 식의 정말 시험을 당하기도 했다. 평양냉면을 어느 정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 냉면집의 역사를 줄줄이 읊으며 내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
대답은 어떻게 했느냐. 처음엔 하나하나 답변을 했지만 그래 봤자 돌아오는 건 의심의 눈초리였다. 평양냉면을 먹는 사람들은 본인이 제일 잘 안다고 착각하는 거 같기도 하다(나를 포함해서). 그렇지만 질문의 범위는 생각의 범주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니 대부분 유명하다는 냉면은 나도 먹어봤고, 사진 역시 대부분 맞출 수 있었다. 답을 못하는 순간까지 질문을 이어가다 그제야 본인이 나보다 낫다며 자기가 써야겠다는 소리를 하고 사라진다. 그 뒤로 누군가 관심을 보이면 괜히 바쁜 척 딴짓을 하기도 했다. 평양냉면을 좋아할 뿐인데 좋아할 주제가 되는지 판단은 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남들이 해주는지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평양냉면이 좋다. 누가와도 막을 수가 없다.
평양냉면을 좋아하며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즐거웠던 순간들은 더 많다. 공통의 관심사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이토록 열광하는 데에 궁금증이 생겨 묻고 묻고 또 묻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순간이다.솔직히 먹을 때 제일 즐겁다.
그때도 비슷한 질문이 나온다.
“당신의 원픽을 뽑아주세요.”
순간 머릿속에 냉면들이 나의 픽을 받기 위해 주르르 나열된다. 어디에 한 표를 던져야 할지 고민하고 고민하다 굳은 결심으로 한 군데를 집어 올린다.
“충무로에 있는 <필동면옥>이요.”
딱 한 군데만 골라 달라고 하면 꼭 <필동면옥>을 이야기한다. 사실 어떤 날은 다른 곳이 더 맛있기도 하고, 어떤 해에는 <필동면옥>이 아닌 다른 곳이 계속 생각날 정도로 맛있기도 했으며 <필동면옥>이 아닌 곳을 더 많이 찾기도 하지만, 꼭 한 군데만 뽑아야 한다면 <필동면옥>이다. 단도직입적으로 <필동면옥>. 뭐든지 간에 처음과 끝을 중요시 생각하는 편이다. 평양냉면은 아직 끝을 맺진 않았으니 처음이 중요한데, <필동면옥>을 처음 먹었던 그 순간이 뇌리에 박혀 잊히질 않는다.
심야 라디오를 자주 청취하는 라디오 키드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들어왔는데, 정점은 고등학교 때 찍었다. 아무래도 공부가 하기 싫어 그랬던 거 같다. 덕분에 꿈이 ‘라디오 작가’이기도 했는데,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혼자서라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조금은 이루지 않았나 싶다(고 본다). 당시 유명한 심야 라디오는 잘 청취했는데 대학교도 졸업하고 나니 시험기간이 없어지고, 핸드폰이 스마트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라디오와 멀어졌다. 그래도 자기 전, 좋아하는 DJ나 프로그램은 굳이 찾아서라도 들었는데 2010년대는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과 ‘성시경의 FM 음악도시’가 내 밤을 지배했다. 그나마 가장 최근(?)인 ‘성시경의 FM 음악도시’는 밤과 찰떡궁합인 DJ 성시경 님의 목소리도 좋아했지만, 토요일 코너인 노중훈, 이현주 작가님의 ‘음식도시’를 정말 좋아했다. 두 작가님이 주제에 맞는 식당을 소개하는 코너였는데, 야밤에 맛있는 음식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식탐 꾼인 나는 늘 곤욕이었다. 듣기만 하면 다행이지만 음식은 듣는 것으로 끝낼 수가 없어 사진을 꼭 찾아보고 입맛을 다시다가 배고파져서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많았다. 심야에 음식 코너를 배치하다니, 정말 방송국 사람들이 미웠다. 현재는 팟캐스트에서 다시 듣기가 가능하니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들어도 좋다. 아마 누군가는 잠 못 자고 검색창에 음식점 찾기 바빠질 것이다. 들어보면 알 테지만 두 작가님의 맛 표현은 정말 일품이었다. 작가님들이 말로 풀어내면 고스란히 내 머릿속에 들어와 음식이 훤히 그려졌다. 심지어는 맛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DJ 성시경과 노중훈, 이현주 작가님은 종종 ‘평양냉면’ 이야기를 했다. 노포 이야기를 하던 날이었는지, 해장 이야기를 하던 날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평양냉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때 성시경 DJ가 “저는 <필동면옥>이 1등인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기억해두었다가 바로 <필동면옥>을 찾았다. 물냉면을 시키고 이내 도착한 냉면을 긴가민가한 얼굴로 국물 한 입을 들이켰는데, 그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그렇게 나에게도 <필동면옥>이 1등이 됐다.
사실 익히 들어 알고 갔지만도 첫인상은 신기했다. 티 없이 맑은 국물에 파가 송송 썰려있고, 고춧가루기 흩뿌려져 있는 모습이 생경했는데 국물을 한 입 마시는 순간 1등을 찍고, 아직 순위 변동 없음이다. <필동면옥>은 한때 영화의 메카였던 충무로 ‘대한극장’ 뒤편에 있다. 친구들을 데리고 가면 이런 곳에 그렇게 유명한 냉면 집이 있냐는 소리를 듣는다. 차가 다니는 도로로 가도 되는데 일부러 ‘대한극장’ 옆 작은 샛길로 들어가서 듣는 소리다. 뭔가 몸을 좁혀 꼬불꼬불하게 간 뒤, 코너를 휙 도는 순간 나타나는 <필동면옥>의 위엄을 더 드라마틱하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랄까.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이 심정, 남자 친구도 아닌데 <필동면옥>을 소개하는 자리는 늘 떨린다.
<필동면옥>은 1·4 후퇴 때 남한으로 온 평양 출신의 할머니가 연천에서 개업 후 의정부로 자리를 옮기고, 할머니의 두 딸이 현재 <을지면옥>과 <필동면옥>에서 같은 스타일의 냉면을 선보이고 있다. 그래서 원조 격인 할머니를 필두로 이 같은 냉면 모습을 두고 ‘의정부파 평양냉면’이라고 일컫고 있다. 송송 썬 생파가 고명으로 올라가 있고, 붉은 고춧가루가 뿌려져 있는 ‘의정부파 평양냉면’. 면도 다른 곳들보다 얇아 두꺼운 면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런대로 잘 먹는 편이었다. 생경했던 첫인상의 파와 고춧가루는 아주 매혹적이었고, ‘의정부파 평양냉면’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곰탕을 먹는 듯한 느낌도 여기서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파와 고춧가루는 ‘의정부파 평양냉면’에서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하다. 고춧가루는 메밀의 차가운 성질을 매운맛으로 조금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보다도 느끼할 수 있는 고기 육수에서 살포시 매운맛을 올라와 밸런스를 잡아주는데 혀에서 조화가 이루어지는 순간 환상이 느껴져 냉면을 먹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더불어 마지막에 육수와 면이 다 넘어가고 퍼지는 파 향 덕에 많은 사람은 밥까지 비벼 먹고서야 한 그릇을 끝낼 수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차가운 냉면 그대로가 좋아서 따뜻한 밥을 말아 먹지 않고 바닥이 보일 정도로 육수를 마시는 것을 선호한다.
어디서든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면 내가 냉면을 픽미업 할 게 아니라 냉면이 나를 픽미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히 내가 맛있는 냉면을 고르다니 싶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한 군데만 골라야 한다면... 다른 냉면들의 귀를 막고 <필동면옥>이라 말해본다.
ㅇㅏ ㄴㅓ 무ㅇㅓ 렵 ㄷ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