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은 리더의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리더는 세상의 어떤 문제를 인지하고 이를 해결한 뒤의 세상을 비전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이를 함께 해결할 사람들을 규합하여 조직으로 만들고 비전이 구현될 때까지 이끌게 된다. 이처럼 리더십(leadership)은 멤버들이 다 함께 문제를 해결하도록 이끄는 능력이다.
뚜렷한 비전은 조직 구성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영감을 제공한다. 역사적으로 봐도 비전이 강한 리더가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조선의 세종대왕과 신하들은 태평성대를 강력하게 염원한 끝에 그 뜻을 이루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부하들은 신대륙의 막대한 보물을 꿈꾸고 포기하지 않은 결과 아메리카에 도착했다. 나폴레옹이 외친 위대한 프랑스는 지금까지도 프랑스인의 자긍심으로 남아있다.
세상의 큰 문제를 해결해서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작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현대에 이르러 기업에서는 사업, 조직, 프로젝트, 기간 등 다양한 단위로 큰 문제를 세분화하여 해결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리더가 바로 팀장급 리더인데, 실제로 팀원과 함께 실무를 진행하여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중심이기 때문이다. 이번 글을 통하여 팀장이 팀원과 함께 업무를 진행할 때 필요한 리더십의 핵심기술 다섯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팀장의 문제의식과 팀원의 해결방향을 안내하는 디렉팅
팀원이 가져온 대안 중 최적의 안을 고르는 의사결정
팀원이 자율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범위를 정의해주는 위임
팀장의 문제의식과 팀원의 이해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피드백
팀원의 문제해결 방식에 관여하는 매니징
리더십의 기술 다섯 가지는 각각 고유의 특징을 가지며, 쓰는 상황도 다르다. 목수가 망치, 톱, 드릴, 대패 등 다양한 도구로 나무를 잘 다루듯이, 리더 역시 다양한 기술을 시의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능동적이고 효율적으로 조직을 리드할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리더들이 이 기술들의 중요성과 사용법을 몰라서 자신의 리더십을 망친다. 디렉팅을 해야 할 자리에서 매니징을 하고 의사결정할 때는 엉뚱하게 피드백을 주기도 하고 위임해 놓고 외면하기도 한다.
디렉팅(directing)은 'di(dia=완전히)'와 'rect(straight=똑바른)'가 결합되어 '완전히 똑바른'이라는 어원을 가진다. 어원 그대로 디렉팅은 팀원에게 업무의 목적과 방향을 지시하고 이 방향을 벗어나지 않도록 독려하는 기술이다. 리더십의 기술 중 가장 중요한 기술이며, 훌륭한 디렉팅은 그 뒤의 의사결정, 위임, 피드백, 매니징의 기준이 되어 원할한 리더십 과정을 만든다.
1. '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팀장의 문제의식을 밝히는 디렉팅
바람직한 디렉팅을 만드는 첫 번째 조건은 바로 팀장의 문제의식이다. 실무자에게 업무를 지시한다는 건 다른 말로 문제를 규정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이 순간 디렉팅의 '의도'를 말해주기만 해도 좋은 디렉팅이 될 수 있다. 한 마디로 '이 일을 왜 하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흔히 실무자는 다음과 같은 업무지시를 접하게 된다.
중장기 목표, 연간 목표, 분기 목표, 개인KPI 등 기간별 목표 수립
신규 제품, 신규 서비스, 신규 브랜드 등 무에서 유를 만드는 런칭
홈페이지 리뉴얼, 제품 페이스리프트, 리브랜딩, 시스템 개편 등 기존 것을 갱신
그 외 상부의 지시로 생성되는 모든 기획, 계획, 보고 등의 업무들
이런 지시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여기에 디렉팅의 배경상황이나 의도 등 팀장이 가진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해주면 훨씬 퀄리티가 높아진다. 의도를 밝히는 행위는 팀장이 문제를 정의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외부환경의 변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실무진이 문제해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사인을 주는 것이다.
"이벤트를 기획해주세요. 이번 달 매출 목표가 미달될 것 같아서 보완이 필요합니다."
"남성회원 비중을 늘리는 방안을 기획해주세요. 앱에서 판매하는 남성용품의 판매량을 늘리고 싶습니다."
"CRM 시스템을 개편하고 싶습니다. 기존회원의 재구매율을 늘려야 순이익이 더 확보될 듯 합니다."
볼드 처리한 뒷말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아마 팀원 입장에서는 업무를 '통보'받은 기분일 것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종족이다. 내가 하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여기면 의욕이 사라진다. 반대로 내가 하는 일이 어디에 기여할 수 있는지 의미를 알게 되면 디렉팅에 능동적으로 대응한다. 더구나 의도를 밝히지 않은 디렉팅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다음 대화를 통해 더욱 자세히 알아보자.
팀장 "이번 상반기 마케팅 전략을 짜 보시겠어요? 비비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해보세요."
(며칠 뒤)
비비 "2021년 상반기 마케팅 전략입니다. 기존에 하던 대규모 광고캠페인의 규모를 줄이고, 대신 고객 체험을 지속적으로 유도하는 이벤트 횟수를 대폭 늘렸습니다. 예산도 늘었습니다."
팀장 "음, 좋은데 이렇게 하면 매출이 줄지 않을까요? 매출액은 작년보다 더 늘어야 하는데요."
비비 "이번 전략은 매출보다는 브랜드 경험을 통한 시장점유율 증대가 목적인데요. 만약 작년보다 더 큰 매출을 원하신다면 작년보다 더 큰 규모로 광고캠페인을 전개하는 게 제일 안정적입니다."
팀장 "뭔가 새로운 걸 원했는데...아쉽네요. 예산이 늘었는데 매출액도 늘지 않으면 곤란할 것 같아요. 예산은 작년 수준 유지하면서 매출액을 더 늘릴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요? 매출이 제일 중요해요."
팀장 "만약 처음부터 예산은 그대로 하되 매출이 중요하다고 의도를 분명하게 말씀주셨다면 좋았을 텐데요. 쓸데 없이 시간만 낭비했네요."
팀장 "아니, 매출이 중요한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이런 기본적인 건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고 일부러 말을 안 한거죠"
비비 "......"
만약 팀장이 '작년 상반기 대비 매출상승'이라는 의도를 밝히며 마케팅 전략을 요구했다면 상황은 훨씬 나아졌으리라. 여기서 팀장이 자기 의도를 밝히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그 의도에 실무자가 제약을 받아서 더 좋은 생각을 할 가능성을 놓칠까봐.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걸 티내고 싶지 않아서.
첫 번째는 디렉팅의 역할을 팀장이 잘못 알고 있는 경우다. 디렉팅은 제약이 아닌 가이드다. 팀장이 가이드로 외부환경 변수를 최소한으로 줄여서 다른 길로 빠지지 않게 올바른 길을 잡아줘야 실무자가 온전히 문제해결에 집중할 수 있다. 가이드는 오히려 창조성을 극대화시킨다.
두 번째에 해당하는 팀장을 만난 실무자는 불행하다. 이 경우 팀장은 기획안을 보고 나서야 기준을 잡고 자기가 뭘 원하는지 감을 잡는다. 팀장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기획안은 통과되지 않고 마음에 들면 운 좋게 통과된다.
문제는 팀장이 왜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실무자가 공감을 못할 때이다. 주어진 방향에 위배된다면 실무자도 할 말이 없겠지만, 실무자가 팀장이 주지 못한 방향까지 다 잡아서 만든 기획안을 거절당하면 동기부여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의도 없는 디렉팅을 받으면 팀원은 '팀장의 마음을 추측하고 맞춰야 하는' 불필요한 노동을 해야 한다. 흔히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하는 상황인 것이다. 당연히 팀장과 팀원 양측에게 마이너스다
2.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팀원의 해결방향을 안내하는 디렉팅
디렉팅은 내비게이션과 같아야 한다. 내비게이션이 교통현황을 파악하여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의 최적화된 경로를 안내하는 것처럼, 디렉팅 역시 회사 상황을 고려하여 팀원이 문제를 효율적이고 능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업무경로를 안내해야 한다. 디렉팅은 다른 말로 방향, 가이드, 질서, 관점, 계획, 기준, 지침, 정책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파생되지만 본질은 같다.
최대한 명확하고 디테일한 디렉팅이 필요하다. 가령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자', '바닷가로 가자', '남쪽으로 가자'라고 했을 때 팀장 입장에서는 모두 부산을 표현하는 말일 수 있지만 이는 듣는 사람 입장에서 모두 다른 디렉팅이다. 수용자가 서로 다른 해석을 할 여지를 주지 말고 접하는 모두에게 같은 방향을 생각하게 만드는 기술이 명확한 디렉팅이다.
만약 팀장이 부산을 염두에 두고 '바닷가로 가자'라고 했다면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본인이 목적지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면 그만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반대로 본인은 그저 '바닷가'면 어디든 좋다는 마인드라면 나머지는 조직 구성원들이 대안을 가져올 때까지 맡겨야 한다.
다만 선택의 기준이 없다면, 나중에 조직 구성원들이 '강릉', '부산', '여수'라는 대안을 가져왔을 때 고를 때 난항이 예상된다. 따라서 바닷가라는 포괄적인 디렉션을 줄 때는 '서울에서 가까운', '다들 안 가봤던'이라는 세부 가이드가 있어야 선택이 용이하다. 나중에 의사결정 편에서 밝히겠지만, 디렉션이 명확하지 않을 수록 그 뒤의 모든 업무는 그만큼 꼬이게 되어 있다.
혹자는 팀장의 너무 디테일한 디렉팅은 실무자의 할 일을 없애고 동기부여를 떨어뜨릴 수 있지 않냐고 걱정하기도 하는데, 이는 디렉터와 실무자의 역할을 잘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우려다. 목적지까지 이르는 길을 안내하는 건 디렉터의 역할이고, 그 길을 걷는 건 어차피 실무자다. '부산 가서 맛집 투어하고 오자'라는 명확하고 디테일한 디렉팅을 하더라도 그 여행에서의 이동, 숙박, 맛집 선정, 그 외 놀거리 등 할 일은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의 콘티북을 직접 제작하는 걸로 유명하다. 직접 제작하는 것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사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화의 동선, 조명, 소품, 시점 등 콘티북 내용이 너무나 세세하고 실제 영화도 콘티북과 거의 일치한 것이다. 영화 제작은 콘티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렇게 명확한 콘티는 명확한 예산과 행동범위를 낳는다. 따라서 업무의 오차가 최소화되고 그만큼 시간과 비용이 최소화된다.
"봉준호 감독 머릿속엔 완벽한 편집본이 이미 들어 있다. 찍고 편집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 편집본대로 찍는다. 집을 지으면서 '못 한 포대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못이 53개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급이 다른 천재다." 배우 크리스 에번스가 봉준호와 '설국열차'를 찍고 나서 한 말이다.
나는 봉준호 감독과 같이 일한 사람들이 할 일이 없고 동기부여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만약 그랬다면 오늘날의 봉준호 감독은 없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근로기준법'을 지키면서 퀄리티 있는 영화를 만든 근본이 바로 차원이 다르게 명확하고 디테일한 디렉팅에 있다고 생각한다.
디렉팅이 명확할 수록 실무자들은 넘지 않아야 할 선을 인지하며, 그 선 안에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동기를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같은 미래를 상상하기 때문에 효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이득이다.
물론 억울해하는 팀장도 있으니라. 팀장은 경영진과 실무진 사이에 낀 신세다. 중간에서 조율하다 보면 사건사고도 많이 터진다. 경영진과 협의해놓고 업무를 지시했는데 갑자기 임원이 결정사항을 뒤집는다던지, 실컷 기획해갔는데 딴소리를 한다던지, 갑작스러운 변수는 충분히 생길 수 있다. 게다가 자기라고 뭐든지 다 알겠는가? 더 전문성 있는 실무자에게 전권을 주고 그를 서포트하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장은 계속 적극적으로 양측을 조율해야 한다. 경영진과 방향을 맞추면서 실무자에게 해결할 문제를 분할하여 정의해줘야 한다. 리더는 앞장서서 이끄는 사람이다. 리더가 실무자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것보다 그냥 그 실무자가 리더가 되는 게 더 낫다.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실무자에게만 기대는 리더는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이 글을 읽는 실무자라면 리더가 '당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세요. 당신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라는 말에 절대 속지 않기를 바란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방해하고, 나를 막는 사람은 리더다. 디렉팅 없는 자유는 방종일 뿐이다. 다른 글 가짜 프리패스를 제시하는 리더에서 밝혔듯이, 실속 없는 권한에 취해서 결국 토사구팽 당하는 건 실무자 당신이다. 의도 없는 디렉팅은 없다. 다만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리더에게 디렉션을 받는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의 의도를 알아내야 한다.
디렉팅은 뒤이어 소개할 의사결정, 피드백, 매니징, 위임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잘 설정해야 한다. 일관적이지 않은 디렉팅은 즉흥적인 의사결정, 업무에 방해가 되는 피드백, 부실한 매니징, 의미 없는 위임을 부르고 결과적으로 조직 구성원들의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여 비전으로 가겠다는 동기부여를 깎기 때문이다. 상술했듯이 명확하고 디테일하며 의도가 있는 디렉팅이 있어야 나중에 리더와 조직 구성원들의 헛수고를 줄일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의사결정에 대해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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