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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학대식 Apr 24. 2020

첫사랑의 바랜 기억

제대로 기억해야할 4.15 총선

브런치라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목적은 (이미 예전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생각의 보전을 위함이다. 나이가 들며 변하는 생각들과 가치 판단들을 글자로 오로새겨 시간이 지나 과거를 무조건 본인에게 유리한 것으로 회상하는 추한 늙은이가 되지 않기 위함이다. 인간은 누구나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한다. 생각은 그렇지 않다. 생각은 늘 ing이지만 기억은 늘 과거형이기에 현재 진행형인 생각은 주위 환경에 방해를 받는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져도 맘먹은 생각대로 살기가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슬프지만 말이다. 하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언제든 조작이 가능하다. 과거에 벌어진 사건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그 결과를 바꿀 수 없지만 사건을 어떤 식으로 기억하냐는 완전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구나에게 한 번씩은 있었을 첫사랑은, (물론 대부분의 유부남에게 첫사랑은 지금의 배우자라고 세뇌했기에 언뜻 생각이 안 날지 모르겠으나) 분명 우리의 기억 속에 있다. 물론 이것을 기억해 내는 데에는 꽤나 까다로운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특히나 남자에게는 말이다. 첫사랑의 그녀를 길에서 마주치는 일 ,아니면 적어도 그녀를 꼭 닮은 처자를 우연히 발견하는 일,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그녀로 추정되는 여성이 간밤에 꾼 꿈의 주인공 정도는 되어야 이 까다로운 소환 조건이 충족된다 하겠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 유부남들은 희미한 옛 시간을 추억하는 이유와 그리할만한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너무나 슬프지만 그 기억은 희미하기 짝이 없다.


첫사랑의 흐릿한 모습을 기억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의 기억이란 쉽게 조작이 가능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다시 본인의 희미한 경험을 몇 자 적어보자면, 나는 분명 그녀에게 차였다. 그리고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헤어짐의 이유는 절대적으로 본인에게 있었다 기억한다. 뭐 바람을 피운 것이 아닌 이상 한 사람의 일방적인 잘못이 이별의 절대적인 이유가 되지는 못했겠지만 아무튼 본인은 친구들에게 길었던 첫사랑의 소회를 그렇게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얼마 전 문득 생각해보니 진짜 내게 이유가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 든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헤어짐의 결정적인 이유를 본인에게서 찾을만한 근거를 기억에서 끄집어내기가 어렵다. 그때 쓴 글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런 글이 있음직한 본인 세대가 열광했던 싸이월드는 이제 서비스를 하지 않고 서비스 종료 전 예전 기억들을 백업받지 못했기에 그저 본인의 기억만이 유일한 증거이니 답답할 노릇이다.


얼마 전 4.15 총선을 치른 대한민국은 정말로 두 동강이 난 듯 보인다. 예전에는 지역을 기준으로 아군과 적군을 구분했다면 이제는 연령이 피아식별의 기준이 되었다. 대한민국 헌정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투표율은 물론이고 선거전의 예상보다 훨씬 큰 거대 야당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 결과의 중심에 본인과 나이가 비슷한 30-40대가 있다. 그들이 캐스팅 보드를 주고 뜻을 관철해낸 것이다. 그들이 열광한 이 정권을 또 한 번 믿어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이것이 못마땅하다. 앞뒤 분간을 못하는 잘못된 선택이라 혀를 차며 한심해 한다. 뭣도 모르는 것들이 벌인 참극이라며 무시를 일삼는다.


그들의 비아냥에 동감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기에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며 일방적으로 척을 지는 것은 올바른 대처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가. 동방예의지국의 자랑스러운 아들, 딸이 아니던가. 예의 바른 우리들이 이런 일을 대승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를 비웃는 사람들을 그저 쓸모없는 존재라 폄하하는 것은 분명 삼가야 한다. 동방예의지국은 차처하더라도 내가 좋아하고 인정하는 사람들과만 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니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길 진정으로 바란다. 그저 색이 다른 그들의 모습을 반면교사 삼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의 분열은 없어야 한다.


물론, 이번 선택의 책임은 30-40대의 우리들이 져야 한다. 정치성향이랄 것도 없는 사람이지만 본인은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우경화되어있다고 판단한다. 투표권이 주어진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진보성향의 정당을 지지해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지 모르겠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도 본인은 지금의 대통령이 아닌 (비록 사표가 되었을지언정) 본인이 원했던, 당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후보에게 투표했고 이것에 후회는 없다. 물론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태어나 처음으로 진보정당의 의원에게 한 표를 행사했지만 여전히 본인의 정치적 포지셔닝은 오른쪽에 치우쳐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본인조차도 어쩔 수 없이 이번 선거에는 집권여당에 한 표를 행사했다. '최악보다야 차악이 나은 것 아닌가'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 본인과 같은 생각으로 권리를 행사한 사람 역시 상당수임을 확신한다.


기실 이번 정부는 그 전 정부의 덕(?)을 보았다. 후보자의 비전과 정책 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그저 그 전과 다르면 되었다. 그걸로 선택의 이유는 충분했다. 그렇게 세워진 이 정부는 슬프지만 기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자세한 것을 얘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분명 꿈꾸던 모습은 아니었다. 전 세계 경제상황이 어려워지고 국내 정책들이 문제점을 나타내어 지지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는 찰나 코로나 19가 한국과 전 세계를 덮쳤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번 선거에서 집권당은 이 전세계적 재난의 덕(??)을 봤다. 전 세계에 모범이 되는 방역 케이스를 만들어냈다며 [K방역]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신조어를 만들어 선전해 이탈했던 지지자들을 결속함으로 거대 여당을 만들어낸 것이다. 심지어 본인과 같은 우경화된 사람들의 표까지 흡수해서 말이다.


이번 4.15 총선은 분명 우리 30-40대가 내린 인생의 가장 큰 정치적 결정이다. 그리고 분명히 이 결정으로 책임을 질 날이 올 것이다. 모두가 기대하는 좋은 결과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나 싶다. 솔직히 이번 결정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체질이 변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되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돈을 버는 것이 힘들어지니 국가가 이 상황을 타개하는 것을 포기하고 문제 유발자를 지목한다. 그리고 현재의 대한민국은 이것을 재벌이라 타깃 지은 것처럼 보인다. 좀 더 과장하자면 부자들을 암적인 존재로 몰아세우는 듯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의 대척점에 정부가 위치해 자애로운 말투로 속삭인다. 복지라는 이름으로 가리운 공짜를 미끼로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정치인들이 공짜를 공약한다. 이것도 주겠다. 저것도 주겠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담보로 자신의 지지를 호소한다. 기실 따지고 보면 그들의 것이 아닌데 자신의 것인 양 말한다. 고단한 현실에 지친 사람들은 안타깝지만 이런 공짜들에 혹한다. 문제는 공짜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공짜를 그저 예상치 못한 행운 정도가 아니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상식의 변화가 진짜 문제다. 열심히 돈을 버는 것과 가만히 앉아 복지라는 허울좋은 이름의 독약을 마시는 행위에 경제적 보상의 차이가 크지 않다면,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노력을 하지 않은 자와의 삶의 질에 큰 차이가 없다면, 결국 우리는 근면이라는 인간의 고귀한 가치를 잃게 된다. 오직 형이하학적인 자아와 생리적 욕구에만 반응하며 후진 인생을 사는 것이 당연시되는 것이다. 개 돼지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된다는 말이다.


시간이 흘러 지금의 30-40대, 우리들은 이번 결정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궁금하다.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추한 민낯을 보인 대통령 탄핵위에 세워진 정부 그리고 질병의 창궐을 기회삼아 다시 한번 그들에게 든든한 기반을 다지도록 만든 우리 30-40대가 앞으로 20년이 지나 2020년을 기억할 때, 혹 본인의 첫사랑의 소회와 같이 결국은 원하는 쪽으로 기억이 나는 것들만을 조합해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내가 원하는 색깔로 각색해 과거의 행동에 면죄부를 주는 일은 없어야겠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각색의 필요성이 없는 해피엔딩이겠다. 그리고 이 해피엔딩을 위해 우리 모두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인들이 하는 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겠다. 그저 사느라 바빠 남의 일처럼 방치한다면 이번 선택과 결과는 예전의 그것들돠 별 다를 바가 없으리라. 눈을 부릅뜨고 합리적 의심을 거두지 않으며 살아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야 하는 소중한 우리나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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