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정연주 Dec 29. 2017

당신과 나의 거리

"두렵죠. 내가 혼자 떠드는 것이 될까봐. 관객과 소통하지 못하는 순간, 벽이 쳐져버리니까.

 제가 너무 루즈하게, 또는 혼자 너무 딥하게 가버리면 관객은 못 따라 오는거죠."

 

연극이 시작됨과 동시에, 등장하자마자 자신이  있는 무대 위 공간 한 켠을 4.5m x 5m 크기의 감옥이라 관객들에게 설명해야하는 한 남자의 말이다.

연극 <M.버터플라이>에서 '르네 갈리마르'를 연기하는 김주헌. 첫 장면, 홀로 방백으로 극을 여는 그의 두려움이 짐작된다.  관객석에 앉아  아직은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그의 첫 대사로, 연극 속 상황으로 데리고 들어와야 한다. 그것도 훅 빨리! 그것을 위해 그는 어떻 어떤 마음으로 대사를 내뱉어야할 지 항상 고민이다.


타인과의 첫 만남.

누구나 조금은 떨린다. 아니 정확히는 '불편하다'.  상황이 어떠하든 관계가 어떠하든 둘 사이의 어색함은 당연하다. 어색함을 뚫고 시선으로 상대방을 탐색한 뒤 드디어 말을 섞기 시작한다.  말은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징검다리를 하나 둘 놓아 준다. 대화 내용에 따라 말의 느낌에 따라 상대방의 생김과 호흡과 음성에 따라 징검다리의 간격이 촘촘해지기도 하고 발을 떼기도 두려울 만큼  한없이 벌어지기도 한다.


무대 위 배우, 정확히는 연극 속 등장인물과 무대 아래 관객석의 내가 만나는 첫 장면. 나는 기꺼이 등장 인물의 이야기를 들어 줄  준비가 되어있다. 그의 모든 것에 몰입할 자세가 되어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내게 말을 건네는 것임에도, 무대 위 그의 떨림은 한결같단다.  


'나'  혼자 연극 속에서 떠드는 것이 아니라, 무대 아래 '당신'과 같이 호흡하기 위해, 무대 위 그는 조심스레 그러나 단호하게 방백의 첫 대사를 꺼내 발화한다.  


"이 감옥소 반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이렇게 김주헌은, 아니, 르네는 관객을 향해 자신에게 다가올 수 있는 징검다리를  꿋꿋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꽤나 성공적으로, 훌륭히.


살다보며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어떤 이와는 순식간에 징검다리가 놓이기 시작하더니 그 간격이 촘촘해져 점차 나와 그와의 사이에 안정적인 다리가 놓이는 감격스러운 순간을 느끼게 된다. 그런 이들과 달리 어떤 이들과는 그게 그렇게 어렵다. 가까이 갈 준비가 되어있지도 않은 내게 징검다리를 위한 돌을 너무 힘차게, 그것도 너무 큰 돌을 던져, 엄청난 물을 튀기며  나를  당황스럽게 하다가는 이내 이 쪽이 아닌갑네 하며 더 이상의 다가옴에 인색해진다. 혹은 내가 거꾸로 상대에게 그런 존재가 되기도 한다.  


나와 당신의 거리. 그 거리를  좁혀줄 징검다리. 돌의 간격, 그리고 각자에게 향하는 돌의 크기가 어떻게 좀... 적당한가? 그리고  적절한가?




   

이전 02화 그럴 때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