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다.
이도 저도 아닌 기분에 모든게 그저 그렇고 삶이 시시하게 느껴지는 때. 웃는 자에게 복이 온다느니,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느니 하는 말들을, 머리로 애써 이해하려면 할 수는 있으나, 가슴으로는 진부하게 느끼며 도통 공감하기 어려워 썩(은 미)소를 날리게 되는 때. 어떤 어휘로든 감정을 규정할 수 없고 잘라낼 것인지 풀어낼 것인지 도통 감도 안잡히는 얽힌 실타래 같은 마음상태가 느껴지는 때.
그럴 때 보통은 자버린다. 자버리려 한다.
그러나 보통은 자버릴 수 없는 상황에 '그럴 때'가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그럴 때 만나 내 감정 상태가 그대로 '묵사발'이 되어버리게 만든 연극이 있으니, 바로 트릴로지 시리즈 중 처음 만난 <카포네 트릴로지>다.
3부작을 뜻하는 트릴로지(trilogy)시리즈는 각기 20세기 초,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3부작의 '카포네',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3부작의 '벙커', 미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3부작의 '프런티어'로 이뤄진 연극으로 영국 제스로 컴튼(Jethro Compton)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김태형 연출의 손을 거쳐,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신선한 연극으로 평가받으며 2015년 국내 팬들을 만난 이래 매 회 객석을 '90% 이상 채우는' 인기 연극의 반열에 오른다. (객석 수가 워낙 적은 것도 한 몫을 하긴 했다.)
처음으로 만난 카포네 트릴로지의 무대였던 시카고 렉싱턴 호텔 661호(로 꾸며진 공연장)에 들어가 앉을 때만 해도, 연극 <사이레니아>에서 이미 경험하고 학습을 한 덕에 '그러려니' 했다. <사이레니아>의 음습한 등대 안을 배경으로 했던 무대가, 호텔방으로만 바뀌어진 것 정도로 생각됐다. 무대와 관객석의 구분이 거의 없는, 호텔방에 빙 둘러 놓여진 100여개의 의자가 바로 관객석인, 호텔방이 바로 무대인 것에 바로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왠 걸, 호텔방이라는 낯선 듯 익숙한 공간에서 세 명의 배우들이 손닿을 거리에서 펼치는 70분짜리 연기는 적응할 만한 무언가가 아니었다. 너무도 가까운 그들과의 거리는 부담스러웠고, 한껏 끌어올려져 있는 그들 감정의 밀도는 숨막혔다. 이야기를 쫓아가기도 전에 내 감정 상태는 말 그대로 기진맥진했다. 이도 저도 아닌 기분과 얽힌 실타래 같은 마음상태로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던 머릿 속과 가슴 속의 무언가가 압축이 되다되다 짓이겨지다 터져버렸다. 빠앙!
지척에 있는 배우들에게 누[누:]가 될까, 나란히 앉은 관객들에게 폐[폐:]가 될까 걱정도 되었지만, 내가 살고 볼 일이었다. 심호흡을 연신 해야 했다. 아직 극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한 채 상기된 얼굴로, 혹은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관객들에게 인사하며 커튼콜을 받는 배우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에도 심호흡을, 아니, 한숨을 쉬어댔다. 박수를 보내고는 있으나 힘겹다. 이게 뭐지 싶은데 공연 시작 전의 내 감정상태와는 확실히 다름을 느낀다. 기분이 좋아졌다거나, 정돈됐다거나 하는 식의 단순한 표현은 역시 불가하나, 70분 전의 그것은 확실이 아니었다. 한껏 압축되었다가 소멸되었다는 것이 그나마 가장 가까운 표현일 듯 하다. 이런 걸 '카타르시스'라고 한다고 했던가. 머리로만 익숙했던 개념을 드디어 처음으로 체득하는 순간이다.
이후 트릴로지 시리즈를 기다리는 관객의 한 사람이 되었고, 총 9가지의 이야기를 2년에 걸쳐 모두 봤다.
첫 경험 만큼 모든 에피소드에서 강렬함을 맛보았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좁은 공간에서 주어지는 밀도감과 집중력에 힘입어 70분간 쫄깃거리는 심정을 9번 더 느낄 수 있었다. 운 좋게도 각 시리즈의 배우들과도 인터뷰 할 수 있었고, 관객의 한사람으로, 그들에게 '경의'를 직접 전할 수도 있었다.
그들에게 조금 뒤늦은 고백을 이렇게나마 전한다.
"오, 그대들! 그대들은 진정 내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