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죠. 내가 혼자 떠드는 것이 될까봐. 관객과 소통하지 못하는 순간, 벽이 쳐져버리니까.
제가 너무 루즈하게, 또는 혼자 너무 딥하게 가버리면 관객은 못 따라 오는거죠."
연극이 시작됨과 동시에, 등장하자마자 자신이 있는 무대 위 공간 한 켠을 4.5m x 5m 크기의 감옥이라 관객들에게 설명해야하는 한 남자의 말이다.
연극 <M.버터플라이>에서 '르네 갈리마르'를 연기하는 김주헌. 첫 장면, 홀로 방백으로 극을 여는 그의 두려움이 짐작된다. 관객석에 앉아 아직은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그의 첫 대사로, 연극 속 상황으로 데리고 들어와야 한다. 그것도 훅 빨리! 그것을 위해 그는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대사를 내뱉어야할 지 항상 고민이다.
타인과의 첫 만남.
누구나 조금은 떨린다. 아니 정확히는 '불편하다'. 상황이 어떠하든 관계가 어떠하든 둘 사이의 어색함은 당연하다. 어색함을 뚫고 시선으로 상대방을 탐색한 뒤 드디어 말을 섞기 시작한다. 말은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징검다리를 하나 둘 놓아 준다. 대화 내용에 따라 말의 느낌에 따라 상대방의 생김과 호흡과 음성에 따라 징검다리의 간격이 촘촘해지기도 하고 발을 떼기도 두려울 만큼 한없이 벌어지기도 한다.
무대 위 배우, 정확히는 연극 속 등장인물과 무대 아래 관객석의 내가 만나는 첫 장면. 나는 기꺼이 등장 인물의 이야기를 들어 줄 준비가 되어있다. 그의 모든 것에 몰입할 자세가 되어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내게 말을 건네는 것임에도, 무대 위 그의 떨림은 한결같단다.
'나' 혼자 연극 속에서 떠드는 것이 아니라, 무대 아래 '당신'과 같이 호흡하기 위해, 무대 위 그는 조심스레 그러나 단호하게 방백의 첫 대사를 꺼내 발화한다.
"이 감옥소 반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이렇게 김주헌은, 아니, 르네는 관객을 향해 자신에게 다가올 수 있는 징검다리를 꿋꿋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꽤나 성공적으로, 훌륭히.
살다보며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어떤 이와는 순식간에 징검다리가 놓이기 시작하더니 그 간격이 촘촘해져 점차 나와 그와의 사이에 안정적인 다리가 놓이는 감격스러운 순간을 느끼게 된다. 그런 이들과 달리 어떤 이들과는 그게 그렇게 어렵다. 가까이 갈 준비가 되어있지도 않은 내게 징검다리를 위한 돌을 너무 힘차게, 그것도 너무 큰 돌을 던져, 엄청난 물을 튀기며 나를 당황스럽게 하다가는 이내 이 쪽이 아닌갑네 하며 더 이상의 다가옴에 인색해진다. 혹은 내가 거꾸로 상대에게 그런 존재가 되기도 한다.
나와 당신의 거리. 그 거리를 좁혀줄 징검다리. 돌의 간격, 그리고 각자에게 향하는 돌의 크기가 어떻게 좀... 적당한가? 그리고 적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