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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정연주 Oct 16. 2017

뜨겁지 않아도 좋아

"인터뷰어가 너무 리액션이 크대요.손짓, 웃음. 이런게 시청자들한테 방해가 된대요."

"응, 나도 모니터해보면 그럴 때 있더라. 조심해볼게요. 근데 나 뭐가 그리 항상 웃기니? 웃음이 왜 그리 많지?"

(누가 누구에게 묻는거니?)

"그리고, <공연에 뜨겁게 미치다>인데 안 뜨겁게 느껴진대요.그래서 고민이에요."

"....그건 생각해볼 문제네....나도 생각해볼게."

"그래서 이런저런 장치들을 해볼까 생각중이에요."

"응, 나도 고민해볼게요. 안...뜨겁구나...보는 사람들에겐."


남들에게만 길었던 추석연휴를 보내고 촬영을 위해 스태프들과 함께 대학로로 향하는 차 안은 적당히 진지했고, 적당히 뜨듯했다. 내 머릿 속도 적당히 복잡해졌다.

제목대로 간다고 공연에 뜨겁게 미쳐 <공연에 뜨겁게 미치다>(공.뜨.미) 속 '정연주의 뜨거운 인터뷰'를 진행해오고 있다. 아직은 '듣보잡'으로 여기는 시청자들이 많아도 우리는 꽤나 열심히 '뜨거웠는'데, 보는 이들은 뜨겁지 않다 하니, 어허.... 아트원시어터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데 날도 꽤나 차갑다. 젠장...    


오늘 만날 배우들은 연극 'ORPHANS'의 손병호, 장우진, 김바다. 스케줄이 맞지 않아 공연을 미리 못 챙겨봤다. 눈과 마음을 다해 공연을 미리 보고 인터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이렇게 촬영부터 덥석 해야하는 상황에는 배우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그래도 손병호 선배님을 믿고(!) 뻔뻔하게(!?!) 인터뷰 시작!


무대 위 소파에 나란히 앉힌 세 배우들과의 대화가 무르익어 갈 무렵, 손병호 배의 작고 매섭게 느껴졌던 눈매 속 눈빛이 무척이나 검고 깊게 보이기 시작한다. 카메라 여러 대가 뻗치고 서 있는 상황이 낯선 듯, 이야기 초반 손의 떨림을 감추지 못했던 장우진 배우는 인상 깊은 장면을 얘기하며 나머지 배우들의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그 만의 깊이 있는 해석을 들려준다. 막내 김바다 배우는 어떤 작품이든 하나씩 배움을 쌓아갈 수 있음에 스스로 대견해하고 감사히 여기고 있단다. 그의 음색이 무척이나 예쁘다.     

왼쪽부터  김바다 손병호 장우진 @연극 ORPHANS 무대

"어떤 얘기의 연극인가요? 고아들..?"

"음... 한마디로 격려에 대한 연극이에요. 헤럴드가 하는 대사 중에 '우리에게 필요한건 엄마가 아니었다. 그저 격려였다'는 말이 있어요. 그게 이 연극의 다예요. 고아들 뿐 아니라 누구나 결핍은 있거든요. 그 결핍을 서로 어떻게 채워주고 할지에 대한 얘기에요."

"....아, 네.."

초반부터 너무 훅 들어온 대답에 잠깐 갈팡질팡하다 '글로 봤던' 연극 이야기로 살을 붙여 대화를 이어갔다.   

 

"2회 연속 공연이 있는 날,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으세요?"

"체력적으로 힘들기 보다 스스로 식상해질까봐 두려워요. 기계적인 반복이 될까 경계하게 되고."


"무대가 왜 그리 좋으세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다시금 깨닫게 된 건데, 난 격려받는 것 때문에 계속 무대에 서는 것 같아요. 격려받는 그 기쁨을 누릴 수 있어서 무대를 포기할 수 없어요."

                                                                                                                                                              - 손병호


"무대에 있을 때 완벽하게 살아있는 것 같아요. 연극 마치고 분장실에서, 작품 마치고 일상생활에서 허탈함이 꽤 큰 편이라 무섭기도 해요. 그래서 온전히 살아 있는 그 시간에 집중하게 되고 그래서 무대 위가 좋기도 하고 집착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 장우진

  

"선배님들이랑 같이 무엇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자랑스러워요. 앙상블 때도 그랬고, 작품 하나하나 할 때마다 제 안에 쌓이는게 느껴져요. 이번에도 손병호 선배님 보면서 많이 느끼고 배워요. 평상시에도 헤럴드가 되셔서 저희를 격려하고 이끄시는데 그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매번 감동받아요."   

                                                                                                                                                               - 김바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내가 보고 있는 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화면으로도 잘 전달되었음 하는 마음을 품으며 인터뷰를 마쳤다. 문득 국민게임 '손병호게임' 이 떠올라 툭 튀어나온 오글거리는 나의 끝인사에도 배우들이 크게 웃어들 주시니 어찌나 감사한지...


"오늘 인터뷰 맘에 안드는 사람, 손가락 접어...!"

손가락... 접으신 게 아니라, 그저 '쁘이'!'승리의 '쁘이'다!

촬영팀과 헤어져, 다음 인터뷰가 악속된 작품을 보러 대학로의 어두워진 골목을 혼자 걷는다. 한시간 사이 꽤 떨어진 기온과 불어오는 바람에 무의식적으로 목도리를 둘둘 두르다가, 잠시 풀어헤치고 그대로 뒀다. 차갑기보다 시원했고 상쾌했고 부드러웠다.


 됐다 이만하면.


짧다면 짧은 시간, 배우들과 충분히 눈빛 나누고 교감하면서 무대 위 그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인사치레라 할지라도 촬영 시간이 너무 빨리 가버렸다고,  낯가림에 불편해하던 기색이 역력하던 배우가,  먼저 악수를 청하고 고맙다고 얘기하는 걸 들을 수 있으면 됐다. 그들의 떨림, 서로를 보듬는 시선, 무대에 대한 질문을 받으며 더욱더 웅숭깊어지는  눈빛을 엿볼 수 있으면 됐다. 그 몰입의 시간을 느낄 수 있으면 됐다. 그 시간에서 빠져나오며 찬 바람을 이렇게 상쾌하게 맞을 수 있으면 됐다. 일단은.

뜨겁지 않게 느껴져도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로 스스로를 다독이고 격려한다. 일단은.

오늘수고했어.      

대학로의 이 한적한 골목을 좋아한다. 살짝 보이는 빙수가게 이름은 '내리SNOW'. 왠지 이 날 따라LET IT BE 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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