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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정연주 Jul 08. 2020

덕분에 잘 먹겠습니다

한국어문기자 협회지 <말과글> '나니아 옷장 속의 대중음악사'기고문

  <임금이 나라를 지배하고 백성들의 신분은 양반 상민 노비로 나뉘어 있는 조선이란 이름을 가진 나라의 어느 시대. 이 나라에는 특별한 벼슬이 하나 있다. 바로 ‘시조 대판서’. 이 나라 백성들은 시조 짓기를 즐기며 풍악에 맞춰 시조를 읊조리고 모여 춤추고 노는 것을 고단한 삶의 낙으로 여겼다. 백성들이 짓는 시조에는 자연스레 그들의 삶이 스며들고 당연스레 그네들이 사는 세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한 불만이며 불평이며 바른 소리며 쓴소리가 녹아든다. 그러던 어느 날, 시조가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히고 이는 곧 나라 꼴을 약하게 만들고 말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 실력자가 나타나, 그와는 다른 신념을 가진 ‘시조 대판서’를 역적으로 몰아 내쫓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 곧 ‘시조 금지령’이 내려지고 이를 어기는 백성은 고초를 당한다. 더는 시조를 즐기기는커녕 읊을 수도 없게 된 백성들은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시조 없이 버틴다. 하지만, 어떠한 시기에도 반골 기질의 혁명가들은 있는 법, 시조 금지령에 반대해 시조를 지켜내고 백성들의 흥겨운 삶을 위해 몰래 시조 사랑을 이어나가는 ‘골빈당’이 그들이다. 뼈 골(骨), 빛날 빈(彬)을 써, 뼈까지 빛나는 흥이 있는 5인조 ‘시조 지킴이’라고는 하나, 어느새 백성들에게는 고루함으로 인해 외면을, 세력가들에게는 위험한 자들로 찍혀 쫓김을 당하는 처지의 빈약한 집단이다. 이들에게 그야말로 빛나는 인재가 한 명 나타난다. 전임 ‘시조 대판서’의 아들이자, 운율과 가락을 가지고 자유롭게 잘 놀 줄 아는 ‘홍단’이 그 주인공이다.

 “후레자식 내가 바로 망할자식/후레자식 매일 같이 무위도식/조선에서 내가 제일 씩씩”

하다며, 기존 시조가 아닌 자신만의 소리로 갑갑하고 답답한 세상에 새바람을 불러오고 싶다며, 그것이 바로 ‘조선수액’이라고 외친다. 홍단이 가세한 골빈당은 단이의 제멋대로인 희한한 가락과 리듬으로 ‘양반놀음’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게 되고, 이에 골빈당은 ‘시조 대판서’에게 맞설 힘을 다시 얻게 된다. 과연 골빈당은 ‘시조 대판서’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이상은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이라는 창작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여러 차례 공연을 볼 수밖에 없었던 어느 뮤지컬 팬 -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라고 밝힌다 - 이 해당 작품에 대해 단숨에 써 내려간 극 초반의 줄거리이다. 글로는 백 분의 일도 설명되지 않을 이 뮤지컬의 매력을 용감히 글로 옮겨보자면, 음악도 춤도 노랫말도 말 그대로 ‘동서고금’을 맛있게 잘도 엮어냈다. 시조와 랩이 어찌어찌하면 가까이 붙을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이리도 찰싹 붙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스웨그(swag)’를 ‘수액(水液)으로, ‘엠씨(MC)’를 ‘엄(嚴)씨(氏)’등으로 치환하는 가벼운 말장난부터, 부당한 일을 당연하다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과연 ‘당연’한 일인지를 묻는 묵직한 울림까지 그 재기발랄함의 진폭이 꽤 크다. 음악 역시 동서양 악기들의 구별이 불필요하게 느껴진 채, 익숙한 듯 낯선 듯 그저 잘 녹아버렸다. 신중현 선생의 <미인> 한 가락이 기타 소리로 훅 치고 들어오더니 이내 꽹과리가 화답한다. 잘 섞여 탄생한 창작 뮤지컬 덕분에 참 신명났다.     

뮤지컬 <외쳐조선 스웨그에이지>.   사진출처 더 뮤지컬 유튜브 영상 캡처

     그 감흥이 해당 공연이 끝나며 사그라질 즈음, 우연히 보게 된 한 온라인무대에서의 현란한 춤과 소리로 다시금 신명이란 것이 돋워지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판소리가 록을 만나고 ‘힙’한 댄스를 만나 귀를 사로잡고 눈을 홀리는 곡,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 렸다! 2020년 6월 25일 현재, 유튜브 영상 조회 수가 180만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음악으로 말하자면, 2019년 첫 등장 이후 클럽 등에서 수궁가의 한 소절을 관객들이 떼창하며 리듬에 몸을 맡길 수 있는 곡으로 자리매김을 하더니만! - 얼쑤 - 바이러스로 엄중한 이 시기에도 연일 화제에 오르며 대중음악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지 뭔가! - 좋~다 -     


“나 지금 이틀간 영상에서 못 벗어나고 있어. 호랑이 387 마리는 내려온 듯.”

“뭐지 싶은데, 엄청 끌리네.”

“토 선생 힘내세요.”


와 같은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진다. 일찍이 명창 박동진 선생께서 걸쭉한 음성으로 진심을 담아 광고에서도 말씀하셨던,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에 익숙한 세대부터 그 한참 아래 세대들에 이르기까지 판소리와 베이스 기타 리프와 드럼 연주와 EDM 등이 너무도 훌륭히 녹아든 음악에, 수궁가에 대한 창의적인 해석이 담긴 현란함 춤에 마음을 내어주고 있다.


판소리에 들린 哀歡 民族藝術의 復活 기대     

                                 동아일보 1972.06.29. 기사     


 肅宗때부터 全州에서 단오절마다 「대사슴놀이」가 열렸다. 二百년 동안 계속된 이 「놀이」는 요즘 말로 하면 판소리콩쿠르. 八名唱, 권삼득, 송흥록, 염계달, 모흥갑, 고수관, 김계철, 신만엽, 박유전과 近世 五名唱 김창환,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이 모두 여기 출신.     

이 「놀이」의 壯元名唱 칭호를 얻고 國王 앞에서 노래 부를 기회를 얻으면 國唱이 되었으며 生員 先達 同知 들의 벼슬도 받았고 大院君과 김병익 등 당대 勢道家의 후원을 얻었다.      

이 판소리 傳統韓末圓覺寺, 協律社로 이어졌고 日帝 때는 레코드 취입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특히 朝鮮聲樂硏究會가 결성, 順天甲富 김종익씨가 기증한 집에서 近世五名唱 들이 제자를 기르며 전수에 노력했다. 그러나 고령의 名唱死去하고 신진은 화려한 무대로 뛰어나가며 總督府의 탄압이 가혹, 쇠락해갔다. - 하략 -          




    판소리의 역사를 짚으며 민족예술로서 판소리가 부활하기를 바라고 있는 기사의 일부이다. ‘대중음악’(大衆音樂, popular music)은 대중이 즐기는 음악이라는 사전적 정의 외에도 학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는데, 미들턴(R.Middleton)의 『대중음악의 연구(Studying Popular Music)』에서는 ‘대중음악’을, 음악의 하위 장르의 하나로, 부정적으로는 예술 음악도 아니고 민속음악도 아닌 것으로, 사회학적 의미로는 특수한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것으로, 또는 매스미디어나 음악 산업에 의해 유통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들턴의 정의에 따르면, 1970년대 위의 기사 속 판소리는 대중음악이었을까? 일단, 민족예술로서의 부활을 기대하는 필자의 시선은 판소리를 예술 음악이요, 민음악으로 보았지 당시의 대중음악으로는 보지 않았던 듯싶다. 그로부터 반백 년이 지난 지금, 판소리는 어떤 음악일까? 우리가 흔히 음악계(界)에서 대중음악의 대척점이 있다고 할 순수음악이라 해야 할까? 판소리를 품은 록 음악은 우리 음악일까? 시조를 품을 랩은 어떠할까? 우리 음악이란 무엇일까? 우리 것이 좋다는데 오늘날의 우리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      



   <범 내려온다>를 만들어낸 ‘이날치’ 밴드의 리더인 장영규씨는 한 인터뷰에서 그들이 “조금 특별한 지금 시대의 댄스 음악을 한다.”고 했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얼터너티브 팝’이란다. 다만, 판소리가 지닌 원형의 장점을 고스란히 살리고 싶었다며, 대신 원래 판소리보다는 조금 더 빨리 노래하고 싶어 일부 구절을 재배치하거나 반복하는 정도의 변화를 줘봤더니 새로운 힙합, 록, 댄스 음악이 나왔단다.   

이날치밴드 <범 내려온다> 사진 출처: 온스테이지 유튜브 영상캡처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이나 <범 내려온다> 모두, 엄선한 재료를 듬뿍 넣어 조화롭게 잘 비벼낸 한 그릇의 맛있는 비빔밥을 먹은 느낌이다.

   이 과정에는 각각의 좋은 재료를 지켜내고 길러내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을 것이고, 그런 재료를 골라 담아낼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쌓은 실력자들의 안목도 들어 있을 터이고, 그를 조화롭게 비빌 수 있는 사람들의 손맛과 열정, 그리고 그에 반응하며 골고루 찾아내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나야 물론 맛있게 먹을 줄 아는, 그리고 맛있는 음식은 “오, 맛있어!”를 외치며 조금은 입소문도 낼 줄 아는 사람에 속한다.


   이런 내게 요즘 또 다른 호기심이 생겼다. 맛있는 비빔밤에 잘 버무려진 나물들 가운데, 이것은 콩나물이요, 저것은 시금치요, 요것은 고사리로다, 골라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굳이 그럴 일인가 싶다가도 각각의 나물 본연의 맛도 제대로 알아보고 싶어 고사리만을 따로 맛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던 차에 남원에 있는 국립민속국악원에서 가을에 열린다는 판소리 완창무대 소식에 마음이 간다.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 완창무대에 내 목소리도 ‘얼쑤’ 한 자락 걸치러 찾아가야겠다. 판소리 완창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뼈와 근육으로 듣는 것이라던데, 올여름에는 몸 좀 만들어야겠다.

이런 마음, 어찌 보면, <스웨그에이지 외쳐조선> 그리고 <범 내려온다> 덕분이다. 두루두루 참 고맙다.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사진출처 더뮤지컬 유튜브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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