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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키너 Sep 10. 2018

소시지의 세계 식탁 점령기

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요즘 가장 좋아하는 수업은 '가드망저(Garde manger)'라고 하는 차가운 요리를 만드는 수업으로 서양식 차가운 요리들, 예를 들면 수제 소시지와 수제 햄, 파테와 테린 등을 만드는 시간입니다.

그중에서도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실습은 수제 소시지를 만드는 시간인데, 처음 접하는 육중한 육가공 기계와 기구들을 다루고 소시지 케이싱에 유화된 포스 미트(force meat)를 넣고 삶는 '유화형 소시지(emulsified sausage)'를 완성하는 신기한 첫 경험을 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고기를 육절기에 넣고 갈아 보기도 하고, 소시지의 향신료와 식품첨가물을 넣고 고기를 곱게 갈아 포스 미트를 만드는 과정도 배우고,  소시지 충진기를 이용하여 케이싱에 통통하게 '소시지 소'를 채우는 것도 경험하고... 80도씨에 맞춘 뜨거운 보일러 안에서 10분간  소시지를 삶아내고 나면,  쫀득하고 찰지며 신선한 돼지고기와 허브향을 가득 담은 '치폴레타(Chipolata)'라고 불리는 조식용 소시지가 완성됩니다.

본인들이 방금 만든 소시지를 꺼내어 소시지를 맛보는 순간이 이 수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인데, 학생들의 표정에서 보이는 따끈하게 갓 삶은 수제 소시지의 맛에 대한 놀라움이 담겨 있습니다.


90년대 초 저의 대학시절, 독일에서 '마이스터 자격증'을 따오신 지도교수님의 육가공 수업에서 그때 처음 맛 본 수제 소시지가 기억이 납니다. 돼지고기보다는 어분(魚粉) 비율이 높은 질 낮은 소시지를 도시락 반찬으로 하던 그 시절, 교수님의 소시지는 '새로운 세상의 맛'이었습니다. 얼마전 찾은 모교에서 지도 교수님을 다시 뵈었습니다.

40대 초반의 나이에 임용되어 우리들과 처음 수업을 하시던 젊은 청년의 모습이셨던 교수님이 정년을 앞두고 흰머리와 주름진 얼굴을 한 '소시지 장인'의 모습으로 마지막 학기의 수업을 열정적으로 하시는 모습을 마주하니, 만감이 교차 합니다.



마침 옆 교실 제빵 수업에서실습을 마친 학생들이 갓 구운 바게트를 가져다 주어 방금 삶은 소시지와 겨자를 곁들여  한입 먹어봅니다. 따끈하게 발효되어 갓 구워진 빵과 함께 뜨거운 물에서 삶아진 육질의 풍미와 허브향을 머금은 소시지는 음식이 가장 신선할 수 있는 순간의 맛을 선물해 줍니다.    

음식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순간입니다.  


A Meat Stall with the Holy Family Giving Alms, Pieter Aertsen, 1551


도살된 가축의 남은 고기와 육류 부산물을 장에 채워 조리한 소시지의 역사는 이집트 시대에 벽화로도 남아 있기도 하며, 고대 중국부터 로마시대까지 인류에게 오래된 음식의 역사로 전해 옵니다. 그리스 시인 호머 (Homer)는 오디세이(Odyssey)에서 일종의 피소세지를 언급했으며, 로마시대에도 인기 있는 음식으로 전해지며, 15세기에는 영어 sausage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아 소시지는 전 유럽에서 인기 있는 음식임을 증명합니다.

유럽의 소시지 사랑은 독일보다는 못하지만 각 나라별로 유명한 소시지가 존재합니다. 독일은 바이스 부어스트(weiss Wurst, 흰 소시지)와 윈너 소시지(훈연 소시지)를 비롯한 수많은 소시지 레시피를 자랑하고, 프랑스는 안두이 소시지(큐민이 첨가된 유명한 소시지)와 치폴레타 소시지, 이탈리아에서는 살라미와 페페로니 등을 비롯한 건조 소시지로 유명합니다.

동유럽에서는 폴란드의 키엘바사((kiełbasa)가 소시지를 일컫는 보통 명사로 불리우며 러시아를 거쳐 북한까지의 소시지를 통칭합니다. 이소시지의 통칭 '키엘바사'가 러시아에서 '킬바사'로 불리며 그 어원에 따라 소시지가 북한에서는 '칼파수'라고 쓰이고 있습니다.


The meat chopping machine, seydelmann, 1886

프랑크푸르트 소시지와 비엔나 소시지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독일 지방을 이름을 딴 소시지가 있을 정도로 독일인들의 소시지 사랑과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독일은 소시지에 있어서 소시지 순결 법(bratwurst purity law, 1432년)을 정할 정도로 소시지 생산 관리에 관하여 엄격한 법률을 제정한, 소시지와 맥주를 사랑한 나라입니다. 독일에서는 돼지가 행운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낙농과 양돈으로 유명한 독일의 소시지는 1200여 가지의  레시피를 자랑하기도 하는  독일의 대표음식입니다.

독일 소시지가 세계화된 것은 독일 이민자들의 소시지가 미국에 퍼진 이유도 한 몫하겠지만, 독일의 세계 최초의 육가공 기계 생산 회사인 세이델만(Seydellmann)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독일의 알렌 지방에서 안드레아 세이델만이 창립한 회사인 세이델만은 농업기계를 만드는 회사로 출발합니다. 이후 1886년 독일 세이델만사는 세계 최초의 meat chopping machine(고기 분쇄기)를 생산합니다.

안드레아의 아들 루이스 세에델만은 세계 최초의 육가공 기기를 제작하여 사업을 시작합니다. 기계공학자 출신인 루이스 세이델만의 지휘 아래 세이델만사의 육가공 기계들은 발전을 거듭하여 1910년 세계 최초로 분당 800회전을 할 수 있는 소시지 '유화 작용(emulsification)'이 가능한 소시지를 생산할 수 있는 육가공기계 '보울 커터(Bowl Cutter)'를 발명합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기기로 단백질과 지방 물을 빠른 속도로 반죽하여 현대적인의 '유화형 소시지'를 생산하기에 이릅니다.


 

소시지 보울커터(Bowl cutter) 고기와 지방, 얼음을 고운 반죽으로 유화시켜준다.


흔히 육가공 업계에서는 소시지는 '물장사'라고 이야기 합니다.

소시지는 일반적으로 고기 50%, 지방 25%와 물 25%의 비율로 만들어집니다. 고기 50kg로 소시지를 100kg을 생산하는 사업입니다. 물과 지방의 함량이 높을수록 소시지 사업가에게는 이익이 많이 돌아가는 사업입니다.

이 물과 기름이 섞이는 현상을 식품업계에서는 유화 작용(emulsification)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마요네즈도 달걀노른자와 식초가 유화된 식품이고, 빵과 케이크, 캔커피까지 유화제가 들어가 있습니다.

소시지는 이런 자연적인 유화 작용을 이용한 식품이지만, 지방과 물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소시지 조직의 '유분리'(육류 단백질이 지방과 분리되는 현상)와 '수분리'(물과 지방이 분리되는 현상)등의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유화가 잘 되기 위해서는 물과 지방 단백질을 완벽하고 빠르게 섞어줄 수 있는 기계가 필요한데 이것을 보울 커터라고 부르는 소시지용 육가공 기계가 만들어 줍니다. 이를 세계 최초로 만든 회사가 세이델만(seydellmann)입니다. 세이델만은 정육점을 중심으로 한 가내 수공업식의 소시지 산업을 현대 육류 가공의 기계화된 공장형 소시지 업체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현대에는 미국의 호바트(Hobart)와 스페인의 마카(Mainca), 그리고 독일의 세이델만(Seydellmann)이 3대 육가공 설비 업체로 발전합니다.


 핫도그 웨곤에서 핫도그를 사먹는 아이들(1947년), 과거에는 레드핫(Red Hot)이라고 불리웠다.  

1800년대 후반 미국의 독일 이민자가 많은 위스콘신 주로부터 브랏 부어스트(brat Wrust, 브랏 소시지)가  미국으로 상륙하여 미국인들에게 인기를 얻습니다. 각 지역마다 정육점에서 소시지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미국에도 소시지는 달걀과 함께 꼭 필요한 침식사 메뉴로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콜롬비언 박람회에서 그 유명한 '핫 도그(Hot Dog)'가 데뷔를 합니다.

처음에는 '레드 핫(Red hot)'이라고 불리며 닥스훈트 소시지(Dachshund sausage)를 빵에 끼워 먹는 핫도그는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고, 곧 핫도그는 미국의 메이저리그 야구장까지 점령하기에 이릅니다.

 핫 도그의 어원은 미국에서도 UFO의 진실 공방만큼이나 설도 많고, 구전도 많이 있지만 미국의 유명한 만화가인 테드 도간(Tad Dorgan)이 독일어인 닥스훈트 소시지의 철자를 몰라 '핫 닥스훈트(Hot Dachshund)'를 '핫 도그(Hot dog)'라  표현했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소시지는 미국의 각 지방의 정육점을 거쳐 미국의 대형 마트 체인의 역사와 함께 소용돌이치며 진입합니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각 지역의 슈퍼마켓과 정육점에서 팔리던 소시지들이 대형 마트 체인의 발전과 함께 대형 마트에 필요한 소시지를 공급 할 전국적인 유통망을 지닌 거대 소시지 회사를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존슨빌 소시지 창립자 Ralph와 Alice Stayer 정육점 사진 1954년

육가공 기계와 기구의 발전과 식품첨가물의 발달, 대형 마트라는 거대 유통망의 탄생은 소시지의 초 대량 생산이라는 임무를 부여합니다. 독일 이민자들의 음식이었던 소시지는 공장 생산화된 엄청난 생산력과 함께 아시아와 남미, 아프리카까지 전 세계에 가장 유명한 육가공 식품으로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2018년 현재 세계 최대의 소시지 회사는 미국의 소시지가 탄생한 위스콘신주에 위치한 존슨빌 소시지(Johnsonville sausage)입니다. 세계 최대의 소시지 회사답게 매일 3400마리의 돼지를 도살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40개국에 수출합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1945년, 위스콘신주의 작은 정육점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1600명의 직원이 근무하며 다양한 제품군의 소시지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대대적인 소시지 방송광고와 공장을 확대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존슨빌은 미국의 대형마트에 다양한 제품을 납품하고, 특히 미국 최대의 체인인 코스트코와 월마트 등에 공급하며 전 세계에 소시지 시장의 매출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식품 가공업계의 백색의 하얀 가루들, 아질산 나트륨과 인산염


식품가공의 역사에서 인산염과 아질산나트륨은 의학계의 아스피린과 페니실린의 발명과도 같아서 이 두 가지 물질은 육가공 식품인 '소시지'에 항상 첨가됩니다.

인산염은 산도 조절제로 불리며 PH값을 조절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우리가 아는 '방부제'중 하나로 불리는 물질입니다. 인산염은 산도 조절제로 불리며 빵의 탱탱한 촉감과 찰기를 만들어 주고, 튀김에는 부서질듯한 바삭함을 제공하기도하며, 탄산음료의 쏘는듯한 탄산감을 증가시키고, 육류 가공품에는 소시지와 햄류의 유화를 도와 탄탄한 육질과 쫄깃거림을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식품 가공업계에서는 없서서는 안 될 '위대한 첨가물(?)'이지만 인체에는 칼슘의 흡수를 방해하며, 신장기능의 원활한 활동을 방해하고 피부 자극을 유발하기도 하는 이면이 있습니다.


아질산나트륨은 식품계의 페니실린으로 대부분의 식중독 균인 그램(Gram) 양성균들의 세포벽 성장을 방해하여 식중독균들의 증식을 억제합니다. 특히 보툴리누스(clostridium botulinum)라고 불리는 치명적인 식중독균의 발생을 억제합니다. 식육을 빨간색으로 염색하여 시각적으로 맛있어 보이게 하는 발색제의 역할도 하고, MSG와 같은 향미 증진제의 효과도 볼 수 있어 육가공 업계에서는 최고의 식품 첨가제입니다. 하지만 아질산나트륨은 육가공 식품을 재 가공 할 때 아민이라는 1급 발암 물질을 생성하기도 합니다.

맛있고 영양 많은 소시지이긴 하지만 이 두 가지 물질을 피해가기는 어럽습니다.


수업에서는 아질산나트륨과 인산염을 첨가하지 않고 소시지를 만들어 보기도 하지만 소시지가 유, 수분리가 되고 보관성이 좋지 않아 부득이 하게 최소 적정량을 첨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시지를 먹을 때 물에 데쳐서 먹거나 채소를 많이 먹는 것만으로도 아질산나트륨과 인산염의 부작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소시지와 햄이 아무리 맛있어도 하루에 수치상으로 100kg 이상 먹으면 안되는 이유는 아질산 나트륨 치사량인 5g을 먹는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질산 나트륨 과다 복용은 죽음에 이르게 할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일인당 소시지 1년 평균 섭취량은 4kg이고, 미국인은 40kg입니다.


소시지는 한국인의 식탁에 올라도 어색하지 않고, 일본인의 식탁에도 자주 볼수 있으며, 미국과 유럽인의 바베큐에서도 자주 보이고, 남미의 작은 레스토랑의 접시에도 어울리는 세계인이 사랑하는 맛입니다.


세계인이 반할 만한 맛이고, 아마 외계인이 지구에와서 맛 본대도 공감할 만한 '맛'일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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