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밴드 영화기 (2) - The doors
내가 사랑하는 이 영화를 언급하기에는 세 가지 고백이 필요함을 미리 말하고자 한다. 첫 번째 고백. 당시의 학생들이 비슷했지만 나 역시 대학 입학 후 오랫동안 방황했다. 출석을 한 수업보다 안 한 수업이 훨씬 많았고 허송세월하며 나를 잊어갔다. 그러다가 우연히 보게된 영화가 <도어즈>였다. 영화 초반 UCLA 영화과에 재학 중이던 짐 모리슨이 수업 시간에 제출한 짧은 영상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저런 영상을 찍어보고 싶다는 하게 되었고 영화에 푹 빠져버리게 되었다. 이후로 <도어즈>는 내가 사랑하는 영화 중의 한 편이 되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보게 된 그 영화.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왠 중2병 걸린 청년이 철 없는 짓거리를 영화 내내 저지르고 다니고 있지 않은가. 영화는 그대로일텐데 내가 나이를 먹어 꼰대가 되어버린 것인지,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머리 속이 복잡해졌고 이 영화에 대해 다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 번째 고백. 내가 보고 느낀 것 보다 알게된 사실을 더 많이 전달하게 될 것 같다. 타이틀은 <도어즈>이지만 이 영화는 주연 발 킬머의 신들린듯한 연기로 ‘도어즈’의 보컬 짐 모리슨의 일대기를 그린다.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자라왔는지 영화에서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짐 모리슨은 영화 내내 자신감 또는 자만심이 지나치게 넘치는 모습을 보인다. ‘도어즈’의 멤버인 레이 만자렉과 처음 만나는 UCLA 영화과 수업 장면을 보라 (교수로 연출자인 올리버 스톤 감독이 출연). 철 없는 10대가 찍은듯한 영상을 발표하면서도 득의만만한 표정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반한 레이 만자렉과 밴드를 결성한 짐 모리슨은 ‘위스키 어 고고’에서의 초창기 공연 때도 공연장 관계자를 무시하고 음반레이블 관계자에게도 오만방자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한국의 하길종 감독과 UCLA 영화과 동기인 짐 모리슨은 영화와 달리 실제로는 밴드 초창기에는 굉장히 수줍음 많은 소년이었다고 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폭주한다. 히피 문화의 상징이 된 짐 모리슨은 마약은 물론이고 비밀 사교에 심취한다. 녹음실, 공연장 언제 어디서든 술병을 들고 다니며 다자 연애를 즐긴다. 특별한 이유가 영화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유일한 이유로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이 어렸을 적 뉴멕시코 하이웨이에서 목격한 인디언의 죽음에서 파생된 죽음의 공포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도 인과의 고리가 약하다. 각본가 출신의 올리버 스톤 감독이 이렇게 개연성 없는 영화를 찍게된 이유가 무엇일까.
27세에 사망한 짐 모리슨은 3J로 전설이 된 인물이지만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잊혀진 인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짐 모리슨은 그의 UCLA 동기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에 삽입된 ‘도어즈’의 ‘The end’라는 곡이 빌보드 챠트16위까지 오르면서 재조명 되었다. 이에 전기작가 제리 홉킨스와 도어즈 전문가 대니 슈거맨이 ‘ No one here gets out alive’ 라는 ‘도어즈’ 전기를 발표함으로써 영화화가 기획되기에 이른다. 이 프로젝트는 1981년 브라이언 드 팔마부터 <프렌치 커넥션>의 윌리엄 프리드킨, 데이빗 린치, 알렉스 콕스, 마틴 스콜세지, 존 세일즈 등의 감독을 거쳐 <JFK>를 찍던 올리버 스톤 감독에게까지 제의가 들어오게 된다. <JFK>를 혼신을 다해 제작 중이던 그는 마지막 법정 씬의 구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도어즈>의 제의를 받고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 시나리오이지만 <JFK>를 위한 실험용으로 괜찮겠다는 생각에 승낙을 한다. 그래서 <JFK>와 <도어즈>의 스텝은 같으며 드라마 없는 사건 위주의 전개에 다수의 카메라로 한 번에 찍어 편집으로 이어붙이는 등 <도어즈>의 콘서트 장면을 고스란히<JFK>의 법정 장면에 반영한다. <JFK>의 촬영을 위해 <도어즈>는 촬영일 수를 14주로 제한하였으며 심지어 스텝들은<JFK>의 암살극에서 피크닉 나간 기분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할 정도였다. 그렇게 <도어즈>는 철저히 <JFK>를 위한 모르모트였던 것이다.
<도어즈>가 왜 이렇게 허접한 내용의 영화였는지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러나 세 번째 고백을 하자면,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애정을 바꿀 마음은 없다. <도어즈>는 에너지의 영화다. 도입부에서부터 엔딩까지 발 킬머의 에너지가 폭발한다. <탑건>의 발 킬머는 손톱만큼이나 생각나지도 않을 만큼 짐 모리슨에 완벽히 빙의된 발 킬머는 밴드 버전의 <스카페이스>를 이끌어냈다. 감독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영화를 찍었는지를 발 킬머가 당시에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열연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또 ‘Light my fire’를 비롯한 도어즈의 숱한 스코어들을 짐 모리슨이 불러주는 착각 속에서 영화내내 듣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더 솔직히 이런 마음을 갖는 이유를 얘기하자면 <도어즈>를 좋아했던 지난 날을 부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