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갔다 와?”
“답답해서 시내에서 걷다 왔어요.”
“연락도 안 되는데 말은 하고 가야 할 거 아냐.”
“내 기분에 관심없어 보여서 조용히 생각하러 나갔지.”
화가 많이 나서 그랬을까? 남편은 말했다.
“니가 너희 부모도 별거했다고 했지? 너도 엄마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더니, 너도 니네 엄마랑 똑같네.”
가슴이 저리고, 숨이 막혔다.
‘갑자기 왜 우리 부모를 이야기하는 거지?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내 마음의 깊은 이야기를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싸워도 할 이야기가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가 있지 않나? 믿고 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이건 자기가 불리하다 싶을 때 그걸 약점으로 이용하는 거잖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 갑자기 남편이 손을 높이 들어서 나를 내리치려 했다. 나는 온몸이 덜덜 떨며 겁에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고 남편은 화를 내며 방에서 나갔다.
밤새 여러 생각에 뒤척였다.
‘이런 모습이 또 나타날 건데. 무섭다. 나중에 태어난 아이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우리 가정이 건강하지 않을 텐데. 내가 무엇을 하면 이런 모습이 바뀔까? 한국에 가서 이혼해야 하나? 한국에 가면 무엇이 달라지나? 혼자 아이를 키울 자신도 없고, 경제적으로 준비된 것도 없는데. 엄마는 어떻게 봐.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배가 아파 허리를 펼 수 없었다. 더럭 겁이 났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긴 건가?’ ‘스트레스 받으면 아이가 탯줄을 목에 감는 일도 있다는데 그러면 안 되는데.’ 밤새 식은땀을 흘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시험을 90점 이상 받으면 피아노학원을 보내준다고 해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100점을 받고도 피아노학원을 보내주지 않았던 그 날.
오빠의 야구 생활을 위해 나에게까지 지원해 줄 수 없어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던 날.
그때와 같았다. 온 몸에 힘이 빠져 느티나무처럼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상황에 맞춰 살아야지, 뭘 애써서 힘들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습된 무기력이었다. 남편은 옆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먼 이국땅에서 남편과 정겹게 반듯한 가정을 만들어 보겠다는 꿈도 이제 여기까지인건가 싶었다. ‘이제 남편에게 내 마음 속이야기를 하면 안되겠어. 이런 식으로 또 듣게 되면 내가 너무 힘들어지니까. 내 속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남편에게는 적당한 만큼만 해야지.’라고.
그러면서도 실낱같은 희망도 놓을 수 없었다. ‘사람이 사랑받으면 변한다고 하지. 내가 충분히 사랑해 주면 이런 행동이 줄어들 거야. 평소에는 장난치고, 이야기를 잘하잖아. 사진을 봐. 이렇게 행복한 부분도 있잖아. 칠형제에 여섯째면 자기 기분이나 마음을 말해본 적이 없어서 그럴 거야. 영국에서의 생활이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런 것도 있어. 아이가 생겨 책임감에 스트레스가 생겼을 거야. 내 꿈이 현모양처니까, 가장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지 말고, 이해하고, 사랑해 주자. 언젠가는 사랑해 준 마음이 잘 전달되고 대화할 수 있을 거야.’
혹시 내 마음이 다시 약해질까 싶어 뱃 속 아이에게도 이야기해주었다.
“아가야, 어제 놀랐지? 아빠가 스트레스가 많았나 봐. 엄마가 너를 보호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