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상의 창작자
소재와 경험의 부족, 표현력의 한계.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다. 어떤 날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또 굴을 파고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무언가를 표현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늘 투명한 벽을 앞에 두고 사는 기분이 아닐까. 자의적 글쓰기를 하는 나조차도 늘 마음에 따라 명암을 달리하는 불안의 벽이 존재한다. 다들 어떻게 영감을 얻어서 창작을 하는지 모르겠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불안에 휩싸이지 않으려고 글을 찾아 읽고,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듣는다. 일상이 영감의 재료라고 생각하고 꼬투리 하나라도 잡으려고 안달이 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저마다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들을 보면 호기심부터 생긴다. 작가부터 크리에이터, 댄서, 일러스트레이터, 기획자 등 직업에 따라 표현 방법은 다르지만 하나로 묶으면 결국 창작을 통해 나를 알리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요즘 세상에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말도 다 옛말인 거 같다. 유가 있어야 결국 유의미한 결과물을 낼 수 있다. ‘유‘는 노력, 재능(영감), 경험 같은 것인데 사람들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얼마 전 남편과 술을 마시다가 레드불에서 주최하는 춤 경연 대회(BC One)영상을 보았다. 2명 이상이 함께 추는 팀배틀이라 아이돌처럼 정해진 음악에 군무를 맞춘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어떤 음악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춤을 추는 거라고 했다. 이야기가 나온 건 영상 제작자인 남편이 지난해 BC One 촬영・편집했기 때문인데 나는 춤의 ‘ㅊ’도 모르는 사람인지라 호기심에 이것저것 묻게 된 것이다. (호기심을 빙자한 영감 취조가 시작되었다)
경연을 준비하는 댄서들은 음악에 따라 합을 맞추는 일련의 동작인 ‘루틴‘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운동선수의 경우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기 전에 순서에 맞춘 워밍업을 하는 루틴이 있을 수 있듯이 미리 여러 상황에 대비해 안무를 짜는 것이다. 어쩐지 디제이가 갑자기 음악을 바꿔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까지 지으며 즐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루틴이 있다 해도 얼만큼 음악에 어울리고 새롭게 표현될지는 모험에 가까운 일이다. 경연이라는 특성이 심리적인 부담을 주는 만큼 변수를 가능성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정확한 루틴이 많을수록 좋다.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도 댄서의 표현 방식이다. 상대편이 춤을 출 때 주의 깊게 보면서도 허리에 손을 얹거나 한 손을 위로 올리며 “별 것 아닌데? “, “그거밖에 안 돼?”라는 듯 기선 제압을 하고, 상대를 밀쳐내는 제스처를 하며 관심 없다는 표현을 한다. 영상을 계속 보다 보니 그들의 제스처는 상대편에 대한 기선제압, 누가 먼저 춤을 시작할지에 대한 신호, 또 자연스러운 춤의 일부이기도 했다. 댄서가 몸으로 음악과 감정을 표현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몸이 자신을 표현하는 제2의 언어라는 점이 새로웠다. 또 유의미한 루틴을 만듦으로써 춤이 완성된다는 건 단지 댄서에 국한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표현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자신만의 장르가 되기 위해서는 심심한 노력과 습관이 따라 줘야 하기 때문이다. 춤에 관한 재밌는 실험이 있다. MBC <시리즈 M>의 ‘별의별 인간 연구소’라는 리얼리티 방송에서 ‘왜 어떤 인간은 몸치일까?’라는 주제로 여러 실험을 했다. 그중 같은 동작을 댄서들에게 해 보게 하고, 몸치라고 밝힌 실험자들에게도 똑같이 시켰는데 전자는 한 번에 동작을 기억하고 표현하는 반면 후자는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듯 어색했다. 왜 다른가 했더니 과학적인 이유가 있었다. 평소 해 보지 않은 동작을 할 때 우리 뇌에서는 새로운 신경 회로가 작동하는데, 댄서들은 연습을 반복하기 때문에 동작에 대한 신경 회로가 잘 형성되어 있지만 일반 사람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한 번에 습득이 어려운 것이라고.
‘인간의 두뇌가 경험에 의해 변화되는 능력’을 말하는 ‘신경 가소성’은 ‘뇌의 신경 경로가 외부의 자극, 경험, 학습에 의해 구조 기능적으로 변화하고 재조직화되는 현상‘ (위키디피아 참조)인데 인간의 신경 회로도 새로운 자극에 적응하고 그것에 맞게 진화되기 위해서는 결국 행위를 계속하는 수밖에는 없다는 걸 증명한다. 실제 몸치는 인구의 1.5프로 밖에 되지 않는다는 수치와 함께 ‘몸치는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진다’고 전하는 실험이다. <예술하는 습관>은 작가, 배우, 디자이너, 아티스트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평소 어떤 루틴을 갖고 사는지를 묶어 놓은 책이다. 일어나고 밥 먹는 시간, 작업하는 방식, 일과 생활의 경계에서 예술을 지키는 사소하고 주관적인 습관들이 상세하게 나열되어 있다. 사실 18세기부터 현대를 아우르는 131명의 루틴을 꼼꼼하게 소화시키기는 어려웠다. 습관에는 정석이 없으니 말이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그 다양성에 혀를 내두르게 될 때 얻게 되는 교훈은 결국 예술이 될 수 있는 생활을 꾸준히 반복하는 일로 수렴되었다. 또한 예술하는 습관은 공통적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열망하는 자세를 기반으로 할 때 작용했다. 결국 루틴이다. 춤의 사례가 재밌게 느껴진 건 표현 방식에만 있는 게 아니라 그걸 가능케 하는 루틴의 재확인에 있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쓰는 글을 써서 표현하는 사람이다. 영감을 얻기 위한 자료 조사도 하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날카롭게 귀를 기울이기도 하지만 결국 표현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창작한 것이라 볼 수 없다. 낯설고 막막해도 일단 키보드를 두드려야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제는 읽고, 일기를 쓰고, 수첩에 적어둔 소재를 빈 화면에 표현하는 일이 어느 정도 루틴이 되었다. 신경 가소성이라는 용어처럼 나의 뇌도 쓰는 사람의 신경 회로로 진화 중이다. 그럼에도 좋은 영감과 자극을 얻기 위해 누군가의 표현 방법이나 창작의 원천을 직・간접적으로 알고 싶은 욕심은 계속되고 있다. 춤에서의 루틴은 연습과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원인 값이기 때문에 잘만 활용하면 실전에서 창의력이라는 시너지로 발휘된다. 어쩌면 춤이나 여느 예술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만들고 있는 사소한 루틴도 그럴 것이다. 남편이 말해 준 춤 이야기가 노트를 꺼낼 만큼 흥미로웠던 까닭이다. 편도로 흘러가는 일상과 삶을 일구어야 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에 있다. 모든 사람이 삶의 창작자로 살아가는 한 루틴은 언제나 중요한 화두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