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NI Nov 06. 2017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불안은 강렬하고도 사소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옆 사람의 체온에 묻어가고 싶은 계절이 왔다. 아직 낙엽이 되지 못한 나뭇잎도 드문드문 눈에 띄는데 언제 하나둘씩 떨어졌는지 거리엔 여문 잎 투성이다. 어느 날 발자국이 닿지 않은 첫눈 온 아침을 바라보는 것처럼 가을이 저물어 가는 모습도 갑작스럽다. 누런 은행잎이 한창 거리의 무법자 노릇을 하더니 바람이 꽤 차가워진 오늘 노을빛을 닮은 잎들이 발치에 닿는 소리로 가득하니 말이다. 따뜻한 차나 라테를 마시게 되고, 일 년 내내 손· 발이 따뜻한 편임에도 수면양말을 찾는 걸 보면 겨울이 조금씩 오고 있다는 증거다. 누군가 좋아하는 계절이 뭐냐고 물으면 가을이 아닌 10월을 좋아한다고 먼저 말한다. 그다음 말에 가서야 시월이 가을의 가장 예쁜 모습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이어진다. 시월은 참 짧다. 바삭하고 청명한 바람이 스민 가을 햇볕은 피부에 닿는 질감부터가 다르다. 지난 계절을 치열하게 살아낸 잎들은 후회 없이 바람에 스스로를 내던진다. 바싹 마른 잎부터 떨어진 지 얼마 안 된 선명한 잎이 섞인 길을 걸으면 절로 걸음이 느려진다.   


요즘 들어 갑자기 겨울이 들이닥친 기분이 들었던 이유는 최근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가끔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슬럼프 비슷한 증상이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건 핑계고, 해야 할 걸 뻔히 알면서도 온 신경이 작동을 멈춘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별 것 아닌 일에는 예민하면서도 정작 깊게 고민해야 할 일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편이다. 후자는 매일 안고 사는 일이라 정신의 일부가 된 셈이다. 평소라면 '어떻게든 되겠지', '방법이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고민을 긍정의 마음과 비등하게 두려 하는데, 의지와 상관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오고 만다. 늘 남겨두는 반쪽짜리 긍정이 잘 해야만 한다는 압박으로 바뀔 때 걱정의 부피는 급격하게 불어난다.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건 스스로가 만든 불안이 반쪽자리 긍정마저 희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럴 땐 한 번 해보자는 마음조차도 버겁다. 심신이 허약해진 탓에 잠을 자면서도 온갖 꿈을 꿨다. 마트에 들어서다가 갑자기 달려오는 카트에 부딪혔고 생전 꿈에 나오지 않은 엄마가 검정 구두를 신은 모습을 봤다. 검정 구두라는 사실이 찜찜했는데 꿈에 민감한 엄마께 전하지 못할 만큼 내 상황이 더 급했다(나중에 알고 보니 나쁜 꿈은 아니었다). 우연이겠지만 이런 때만 되면 주변 사람들 중 누구와도 크고 작은 싸움이 일어난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막장 드라마의 악덕한 조연으로 보인다. 연기로 얻은 미운 이미지만으로 길거리에서 아주머니들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한다는 연기자의 말처럼 사람의 본질은 보이지도 않고 온갖 미운 구석만 보인다. 연기도 아닌 실제 악덕한 인물은 나인데도 말이다. 드라마라면 재미라도 남겠지만 스스로를 막장으로 몰아가는 일은 힘만 빠진다.


인간의 몸이 참 신기한 게 극도의 정신적 괴로움이 몰려오면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한다.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 건강 체질인데도 며칠째 미열이 떨어지지 않고 온몸이 물기를 덜 짜낸 빨래처럼 축 늘어지면서 잠만 쏟아진다. 식욕도 급격하게 떨어진다(절대로 살은 빠지지 않는다). 몸의 반응은 사람을 더 약하게 만든다. '나는 아무래도 글렀나 보다'는 생각도 할 겨를 없이 산송장의 모습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럴 때는 매일 출퇴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이 아닌 삶을 살고 있다는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아플 시간도 없이 척척 업무를 소화해야 할 직장인은 대단하고 위대하다. 진이 빠져서 매일 달고 사는 책의 활자도 전혀 읽히지 않고 글씨가 있다는 것만 보일 지경이니 좋아하는 책 영화 음악 짧은 여행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온갖 꿈속을 헤매는 동안 자면서도 자고 있지 않은 몽롱한 시간이 흘렀다.


한 이틀이 지난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니 아무거나 하고 싶어졌다. '이거 좋은 징조인가?' 처음 시작하는 연인들의 '썸'처럼 썸인지 쌈인지 모를 감정이 반가웠다. 눈에 걸리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가까운 공원에 갔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깜깜해진 데다 사람이 거의 없어서 휑뎅그렁했다. 바짝 몸을 만 낙엽 몇 개만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공원은 처음이었다. 목덜미가 선득하고 손끝이 시렸다. 분명 겨울의 바람이었다. 추워서 이마를 만졌더니 미열 때문에 아직 따듯했다. 나는 잠시 어떤 해방감을 느꼈고 문득 시원하게 달리고 싶어졌다. 그래서 차가운 공기가 지배한 공원을 마구 질주했다. 아무도 안 봐서 정말 다행이었다. 웃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가로등 불빛이 어른거리는 호수의 물빛도 숨 막히게 아름다웠다. 집으로 돌아와서 몸에 남은 찬 공기가 원래의 체온으로 바뀌었을 땐 깨끗하게 씻고 싶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못난 주인을 만난 널브러진 책상과 책들도 눈에 띄었다. 아무도 모르는 막장 일인극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기로 했더니 아무거나 하고 싶어지는 기이한 현상이라니!


사실 우리는 살아 있다는 공포에 맞서 싸우며 하고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온갖 것에 별별 정의를 다 갖다 붙인다. 내 이름은 아무개이고 모모 회사에서 일하는데 그 일이 여차여차한 것이다, 라는 식으로.
그러는 중에도 불안이라는 놈은 숨어서 전복 활동을 계속한다.  「제비 일기」 중


그러고 보니 태풍에도 이름이 있다. 불안이 나라는 사람의 경로를 강력하게 한 방 때리고 지나는 동안 속수무책의 시간은 결국 지나갔다. 직접은 아니지만 걱정도 시간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사람은 시간이 있을 때 어떻게 불안이라는 놈을 관리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불안의 감정은 늘 함께 살아서 부패하지도 않고 잠복해 있다가 욕심을 부리거나 걱정의 부피가 커질 때를 보고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다. 불안의 증거는 내가 만든 우스꽝스러운 병명 안에서 초라하게 왔다가 사라질 뿐이었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걷고 뛰면서 느꼈던 사소한 행복이 불안을 의식 저 편으로 보내는 순간에도 또 언제 나타날지 때를 보고 있었을 거다. 그래도 고마운 녀석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다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병이 도질 때까지 순간순간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처럼 살고 있을 테니까.            



    



        




 




 

  


 



    

     






  

 





  












      







이전 12화 ok한 하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