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Sep 11. 2020

다른 이의 사정이 궁금하다

험담과 뒷담화의 시작, 남 이야기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남 이야기’를 듣기 싫어한다. 회사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누가 그랬다더라, 누가 어쨌다더라’. 주변에서 전해주는 ‘이 집은 이렇다더라, 저 집은 저렇다더라’. 흔히 말하는 ‘가십’을 주고받고 나누는 것에 많이 인색하다.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듣기 싫다고 화를 내거나 그랬다는 건 아니다. 그저 관심을 덜 주고 흘려듣거나, 주제를 돌리고자 노력한다. 원래도 남이나 주변에 관심이 별로 없는 성격 때문에, 굳이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대화를 나눌 때 남 이야기를 빼면 할 말이 없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 ‘내가 아는 사람은, 내 친구는, 내 지인은 말이야'를 생각해보면 정말로 그러하다. 현장에 없는 이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추측하고 마음대로 생각하다 보면 나름 즐겁게 시간이 흘러간다. 그러고 나면 뭔가 공허한 것도 사실이다. 직접 만난 이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고, 내 이야기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남 이야기’를 본능적으로 피하는 이유는 결국 우리의 가치판단이 들어가서 그렇다. 다른 이의 행동과 말이 입에 담는 각자의 인생관, 가치관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고 심할 경우에는 욕을 먹기도 한다. 그런 과정과 행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게 싫다. 나도 남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식으로든 그것에 대해 평가하고 판단하여 내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러고 나면 도대체 이 시간과 과정이 내게 무엇을 남겼는지 허망한 순간들이 많다. 차라리 네이버 영화 평점을 주며 리뷰를 남기는 게 보다 훨씬 가치 있다고 느껴질 정도다. 왜 이리 우린 남 이야기에 열광하는지 그 자리에 껴서 신나게 재미를 느끼고 나서야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남 이야기’, ‘가십’이 항상 재밌고 즐거운 건 이유가 따로 있었다. 



* 공감을 '강요'받는 이 시대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 (우리의 책에서 만나요!)



『공감받지 않고, 공감하지 않고』 


이전 28화 ‘다름’과 ‘틀림’은 다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