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그것
어느 날 한 한인 가족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알고 보니 이런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예전에도, 또 그전에도 한인 가족이 사라지곤 했었다. 이곳에서는 한국의 '나쁜 그것'이 없을 줄 알고 지냈는데, 어딜 가도 남아있어 진저리를 치며 떠나간 것이다. 같은 민족, 고향 사람으로 어울리며 얻을 수 있는 정서적 안정보다 고질병인 ‘나쁜 그것’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 가족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적은 없지만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우리도 한국에서 넘어온 ‘나쁜 그것’으로 평가받고 시험당하고 검증받고 하지 않았을까? 불편한 의혹이 진하게 남아있다. 요 며칠 매우 찜찜하다. 세상에서 가장 마주하기 싫어하는 ‘나쁜 그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온 ‘나쁜 그것’은 바로 <비교>, <질투>, <패 가르기>, <거짓말>이다. 좁고 얕은 한인 사회에서 만연하고 있었다.
남의 사정을 되도록 많이 알고 싶어 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여기에 어떤 상황과 마음으로 왔는지 궁금할 수 있다. 사정을 아는 것은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그러나 ‘나쁜 그것’을 가지고 있는 이는 평가를 하기 위해 상태를 체크한다. 비교의 한 가지 전형적인 예를 들어보자. 한국에서나 질문을 받을 법한 어느 대학 출신인지가 왜 궁금할까? 한국 대학교 졸업장은 이곳에서 아무 쓸모도 없다. 본인이 어지간한 대학교를 나온 탓에 어깨에 힘을 좀 잡아보려고 남의 출신 학교를 궁금해하는 것이다. 우습기 그지없다. 이곳에서 다들 새 인생을 계획하고 꾸려가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데 본인의 해묵은 영광을 굳이 꺼내서 어쩌자는 건가? 조금이라도 남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싶어서다. 호주에서도 대학교 서열 매기는 인종은 우리나라 사람들뿐이라던데.
* 공감을 '강요'받는 이 시대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 (우리의 책에서 만나요!)
『공감받지 않고, 공감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