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좋을 때예요
어지간하면 둔하게 지내려 한다. 남이 내게 하는 소리를 싫어해서 대충 귀 뒤로 넘긴다. 여전히 수양이 덜 된 탓인지 가끔 귀에 걸려 머무는 말이 있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세요!
지금이 좋을 때예요!
흔한 말이다. 예전엔 나도 자주 썼을 그렇고 그런. 이젠 듣고 싶지 않다. 행여 누가 들을까 뱉지도 않는다. 그만큼 내 곁에서 사라지길 바라는 말이다.
우선 안타깝다. '지금은 좋아 보이지만 그거 엄청 짧아요. 나중엔 아주 힘들어서 절대 못 즐겨요. 진짜는 아직 시작도 안 되었어요. 곧 지옥을 맛볼 거예요.' 이런 뜻이기 때문에. 얼마나 힘들길래 멀쩡히 즐기고 있는 내게 그런 경고를 하는 걸까? 도대체 얼마큼 지금의 삶이 싫어야 타인을 향해 고약한 예언을 하고 싶어지는 걸까? 의심이 꼬리를 문다. 그의 과거에는 좋은 날이 있었을까? 늘 지금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그때보다 더 예전을 돌아보지 않았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현재를 아끼고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면 무용한 말을 던지지 않았을 테니. 만약 지금을 살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나중에 어떤 일이 닥쳐도 지금처럼 잘 지낼 수 있다고 격려하지 않았을까? 내 소중한 시간이 곧 지나가 버린다는 저주 같은 말이 싫다. 더욱 이를 악물고 계속 지켜나가고 싶다. 혹시 이런 강한 반발심을 끌어내는 것이 숨겨진 의도였으려나. 그런 거라면 칭찬할 수밖에.
또 다른 삐딱함은 인생 선배라는 우월함에 대한 거부감이다. 모두 겪는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일생의 단계를 그저 먼저 지났다고 다 아는 것처럼 내뱉는다. 지금은 별거 아니고 나중엔 정말 힘들다고 끝없이 겁만 주는 이유를 모르겠다. 지구상에 몇 안 되는 독특한 삶을 살았다면 귀가 쫑긋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너도나도 나이만 먹으면 당연히 거치는 일에 대해 안 힘들고 넘어갈까 봐 조마조마하며 던지는 말투가 별로다. 인생에 도움 안 되고 자기만 편하겠다는 말은 반사한다. 나름 좋은 의도도 있을 테다. 해본 사람으로서 조심하라고 신경 쓴 이도 있을 거니까. 그렇다면 태도가 잘못되었다. 진짜 인생 선배는 조심스럽게 전한다. 진짜배기는 자신에게만 한정된 경험이라며 거듭 강조한다. 느끼고 배운 걸 정리된 상태로 세세하게 알려준다. 끝까지 나의 경우는 다를 거니 참고만 하라고 신신당부하면서. 해봐서 안다며 막 던지는 말과는 전혀 다르다. "지금은 웃지? 나중엔 개고생할 거야~ 많이 웃어둬~"에는 써먹을 만한 게 전혀 없다.
뭐가 이리 다를까? 자신의 지금을 못 즐기기 때문에 남의 지금이 못마땅해서일까. 혹시 이러다 계속 안 힘들고 즐겁게 지내면 배가 너무 아플까 봐 으름장을 놓는 건지. 아쉽게도 막 던지는 입장이 되어 보았기에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다. 수능이 끝나고 나서 수험생을 바라볼 때, 군대 다녀와서 입대를 앞둔 후배를 바라볼 때, 입사하고 나서 취준생을 바라볼 때, 짬바(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차오르면서 갓 입사한 신입사원을 바라볼 때 그랬다. 더 일찍 태어나서 먼저 해봤다는 이유로 헛소리가 쉽게 나왔다. 담담하게 준비하며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그들을 보면 꼰대 본능이 터져 나왔었다. "좋을 때야 좋을 때. 곧 닥쳐올 더 큰 고통도 모르고 말이야. (난 벌써 다 겪었지롱~ 고생 좀 해봐라~)"
지금 웃는 그들이 최소한 나만큼은 힘들어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남 잘되는 꼴을 보기 싫어하는 것과 남이 힘들어하지 않는 꼴을 보기 싫어하는 건 결국 같은 모자람이었다. 위에서 내게 던져대는 그런 말이 싫어지면서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도 다르지 않았다. 알아채곤 입을 닫기로 했다. 스스로 느끼는 지독한 불쾌함을 알기에 남에게는 그러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하며.
이제는 좀 변했다. 알면 알수록 뭔가 판단하고 싶어지고, 참견하고 싶어져서 본능적으로 자제한다. 아예 모르면 뭐라고 할 수 없으니 최대한 모르려고 노력한다. 잘 모르고도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사람이 어디에나 있긴 하지만. 어쩌다 알게 되더라도 먼저 나서지 않도록 스스로 꼭 잡아맨다. 상대가 원하는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으면 남의 일에 말을 꺼내지 않는다. 내가 싫은 만큼 상대방도 그럴 수 있기에 모험하지 않는다. 혼자 깨닫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어서 가능성 없는 일에 내 기력을 쓰고 싶지도 않다. 남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고, 심지어 변화를 유도하는 건 불가능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피한다. 남에게 한마디 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다.
가끔 어려운 상황이 찾아온다. 내가 먼저 겪은 것을 알고는 어떤 이가 의견이나 조언을 구할 때. 마냥 외면하기 어렵다. 감사한 마음 반, 괴로움 마음 반으로 고민한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수억만 가지의 경우 중에 내가 유일하게 경험한 것을 느낀 그대로 전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이랬고 무엇을 느꼈다고. 최대한 담담하게 전한다. 당신은 나와 다를 게 분명하니 잘 결정하길 바란다고.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당신의 옳은 선택이니 후회 안 하면 좋겠다고. 다 다른 길을 가는 것뿐이니.
서로의 인생에 아무 말 없이 살아가는 세상을 원한다. 물론 진심 어린 공감과 이해, 걱정과 축하가 오가는 이상향도 환영이다. 하지만 남의 인생을 엿보다 보면 결국 내 것과 비교하게 된다. 비교는 스스로 불쌍하거나 우월하거나 둘 중 하나로 귀결되고 만다. 누군가는 서로 인생은 다른 것이라며 모두 품어줄 수도 있겠다. 난 그럴 자신이 없다. 그래서 무관심하기 위해 노력하고, 말을 꺼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산다. 내가 이러느라 유독 남이 내게 뭐라 하는 말이 힘들다.
지금이 힘든 사람은 혼자 힘들면 좋겠다. 멀쩡하게 행복한 사람에게 시비 걸지 말고, 예언 능력이 없다면 오지도 않은 미래를 더럽히지 않길 바란다. 가끔 내가 좀 심한가 싶다가도 이렇지 않으면 나의 귀중한 지금이 싫어질 것 같아 어쩔 수 없다. 힘듦이 확정된 앞날을 가진 지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지금은 늘 좋았으면 좋겠다. 난 그러려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