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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Aug 25. 2022

꾸준함을 유지하는 비밀

무관심과 냉대와 삐딱한 시선 이용하기

사람인지라 알릴 거리가 생기면 인정받고 싶다. 무턱대고 시도 때도 없이 러진 못하니 여러  고민한다. 소식을 받는 이가 부담스럽지 않게 최대한 가볍게 정리한다. 전하기 전에 반드시 갖춰야  자세는 스스로 접어놓는 기대. 한없이 펼쳐놓다간 기대 이하의 반응에 무차별하게 상처받아 찢어지고 쪼그라든다. 부탁하거나 도움을 청할 때와 같은 원리다. 철저히 준비해야   다름 아닌 실망하지 않을 마음가짐. 전하는 자세가 이래야만 받는 이도 편하게 반응할  있다. 아무런 기대 없이 알리고, 아무런 부담 없이 듣는다. 다행히 칭찬하고 축하하면 고마운 거고, 혹시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하며 넘어간다. 주는 이와 받는 이는 다른 이니까. 아쉽게도 교과서에만 나오는 이야기다. 현실은 다르다. 아무리 기대를 숨겨도 멋대로 날아오는 오만가지 대꾸에 휙휙 무너진다.


흔한 반응은 '무관심'이다. 아무 대꾸가 없다.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으니  수가 없다. 나쁘게 생각해도 무시고 좋게 생각해도 무시다. 답답하지만 별수가 없다. 서운하다고 해봤자 무관심할  뻔해서다. 다른 반응은 '냉대'. 정성을 들이지 않고 아무렇게나 대꾸한다. 거의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에 가깝다. 상처의 크기는 커도 쉽게 구분이 돼서 좋다. 명확히 걸러내야 하는 관계를 알려준다. 흔하지 않지만 대처가 어려운 반응은 '삐딱한 시선'이다. 대놓고 뭐라 하진 않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불편해진다. 분명히 제대로 이해한  같으면서도 묘한 방향으로 해석한다. 결국 듣고 싶은 대로 마구잡이로 꽂혀서 당황스럽게 만든다. 처음엔 어떻게 수습해볼까 덤벼들어 보지만, 받아들일 의지가 없는 자를 설득하는  어렵다. 곁에 머물수록 옭아매어지는 기분이다. 차라리 싫다고 욕을 해주면 편하게 돌아설 텐데, 말을 길게 섞을수록 마음오묘하게 더러워진다.


지나가는 사람처럼 생전 처음 보는 이에게 알리는  아니다. 이야기할만하다고 판단을 내린 최소한의 관계 의 인연이다. 편하게 다시   사람이라면 깔끔하다. 어떤 식으로든 엮여 있어서 댕강 잘리지 않는다. 솔직히 기운이 빠진다. 기쁜 일을 전하며 응원받기를 원하는 소망이 이리도 욕심이었을 줄이야. 가까운 사이일수록 별생각이  든다. 그동안 고만고만해서 어울렸을 뿐인데, 괜히 이것저것 시도하며 다르게 사는 모습을 어색해하고 낯설어하며 부담스러워하나 싶다. 좋은 일로도 힘을 받지 못하는데, 어려울  힘이   있을까. 나쁜 , 힘든 일도 아닌데 싫은  팍팍 내고 눈치를 준다. 큰일이라도 생기면 제일 먼저 돌아설  같다. 무심한 이도 차가운 이도 멋대로인 이도 전부.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기분만 나쁘고 마는  아니라 움직일 힘도  빼놓는다. 힘을 받아 기운 내보려던 희망이 처절하게 짓뭉개진다.


너무 억울했다. 실망 가득한 반응 자체보다도,  나아갈 동력을 잃어서 안타까웠다. 알리지 말았더라면 최소한 기운은 빼앗기진 않았을 텐데. 극도로 가라앉으면서 고민을 거듭했다. 예측이 불가능하니 아예 아무와도 관계하지 않고 지내는  낫겠다는 극단으로 치닫기도 했다. 불현듯 밝은 빛이 머릿속을 관통했다. 이용해 먹을 방법이 떠올랐다. 무시하고 내던지고 곡해하는 반응을 완전히  것으로 써먹기로 했다. 이해할  없는 그들의 모습에,  화가  있었다. 절대 기대하지 말자는 점잖은 포장으로 감싸고 있었지만, 속은 열불이 나고 있었다. 터질듯한 뜨거움을  안에 감싸고 있느라 힘들었다. 쏟아낼 곳이 필요했다. 적절한 사용처를 만들어냈다.


어이없는 반응이 오면 이번에 마련한 '분노의 주머니' 넣는다. 괜히 속에 넣고 삭히느라 용쓰지 않는다.  안엔 기분 나쁜 말도 있고 이상한 표정 들어있다. 어쩔  사람이 통째로 들어있다. 뒤죽박죽 섞여 뜨거운 기운이 용솟음치는 주머니의 사용법은 이러하다. 하기 싫고 무기력할 때가 가끔 찾아온다. 계속해오던 일도 유난히 정이 떨어질 때가 있다. 이게 뭔가 싶고 도대체 해서 뭐하나 싶고. 아무도 몰라주는  혼자 낑낑대는 모습이 초라하고 불쌍하고. 바로 이때 분노의 주머니가 힘을 발휘한다. 안을 들여다보고 적절한 대상을 정해서 꺼내 든다. 눈앞에 마주하고는 그때  화남을 기억하고 외친다. '이놈 보고 있나? 생각 없이 던진 그따위  듣고 포기할  알았지? 절대 아냐. 덕분에 악에 받쳐  걸음    있어. 고맙다!' 효과는 만점이다.


쏟아부을 과녁을 앞에 두고 열띤 다짐을 한다. 절대 무너지지 않겠다고. 발목 잡힐 뻔한 상황을 발판 삼아 나아간다. 기가 막힌 발상의 전환이다. 가끔 희생양이 되는 사람이  안쓰럽 하지만. 심심한 위로를 전하한편으로는 많이 감사하다. 놀랍게도 사라졌던 의욕이 바로 충만해져서. 전투력이 높아진 느낌이다. 마치 드래곤볼의 사이어인처럼 죽다 살아나서  강해진 듯이. 그들이 마구 뱉은 말이 이렇게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다. 힘이 되지 않는 관계는 무용해서 잘라내려 했는데 이러고 보니 필요한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시험받고 무너지고 좌절할  적절한 분노가 유용하다. 포기하고 싶을  다시 일어설  있으니. 무관심과 냉대, 그리고 삐딱한 시선을 던진 그들에게 나중에  듣고 싶은 말이 있다. ",  자식 아직도 하고 있네? 징하다 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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