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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Oct 25. 2022

올 지 모를 내일과 이별

내가 사는 시간만 남기기

좋아하는 게 뭐냐는 질문에 항상 잠시 고민하고 답한다. 제일 좋은 것을 꺼내려다 주춤하며 한쪽으로 미뤄둔다. 이걸 내보이면 당황할 상대의 뻔한 반응이 떠올라서. 무던한 사회생활을 위해 보다 이해하기 쉬운 소재만 줄줄 읊는다. 운동이랑요, 독서랑요, 기타 연주랑요, 글쓰기요. 맨 나중의 글쓰기에서 좀 의아한 눈빛과 함께 추가 설명 요청이 들어오곤 하지만 막아낼 비책이 있다. 열심히 쓰는 재미를 늘어놓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책을 냈다고 하면 된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녀석 진심이구나!'라고 물러나며 대화는 종료된다. 가장 아끼는 걸 숨겨 지켜내고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지만, 아쉬움에 입맛을 쩝쩝 다시기도 한다. 언제쯤 편하게 이걸 진짜로 좋아한다고 시원하게 말할 수 있을까. 예전에 했던 몇 번의 시도 경험이 썩 깔끔하지 못했다. 눈이 둥그렇게 커지며 '에이 설마'라는 속마음 말풍선을 선명하게 달고 쳐다보는 눈초리만 가득 쌓여있다.


 ‘그날 하기로    하기 사랑한다. 여기까지 읽고 절반이 빠져나갔을 테니 나머지 절반을 납득시켜보겠다. 정확히는 투두 리스트를 모두 틱한 순간에  빠져있다. 점검 시간은 잠이 들기 직전인데 모든 항목을 만족시키고 나면 황홀경에 돌입한다. 그날을 아름답게 채운 자신이 멋져 보이고 다음 날도 해낼  있을  같은 호랑이 기운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다 눈이 감긴다. 뭔가 빼먹은 날은  씻고 잠자리에 누운 것처럼 찝찝하다. 기분을 풀어보려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무더기씩 찾아가져 오지만  소용이 없다. 변명에  긋는다고 명분이 되지 않으니. 핑계쟁이는  포기하고 쭈그려 잠을 청한다. 그런 날은 유독  잠이  온다.  좋을  알면서도 이렇게 만든 본인을 추궁하느라 바빠서.


혹시라도 거창할 거라는 오해를 막기 위해 매일 하는 일을 언급해보겠는데 별 게 아니다. 먼저 생존을 위한 필수 행위는 제외다. 이를테면 먹고사는 벌이, 생명을 길러내는 육아, 삶의 터전을 관리하는 집안일. 0 순위로서 무엇보다 앞서며 예외가 없다. 그다음 순위부터가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일이다. 일이 없어 남는 시간의 활용, 그러니까 여가 시간에 뭘 하는지를 정한다. 사실 위에서 벌써 다 밝혔다. 운동, 책, 악기, 글. 여기서 집중해야 할 포인트는 굉장한 목록 작성이 아니다. 원하지 않는 일로 침범당해서 원하는 일 할 시간을 빼앗기는 걸 방어하는 게 중요하다. 침략자는 오래 잡히지 않고 있는 지명수배 명단을 참고하자. 뭔가 검색하려고 들어갔던 포털 사이트, 딱 한 판 하려 했던 게임, DM만 확인하려던 인스타, 나보다 날 더 잘 아는 유튜브 알고리즘.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눈을 떼고 밖을 보면 잘 시간이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럴까?'라며 자문자답의 시간을 다시 맞이하고 만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며 소중한 시간 갉아먹는 걸 방치하도록 든든하게 지원하는 방해 세력은 바로, ‘내일’이다. 전지전능한 이 녀석은 못 하는 게 없다. 그날만 되면 없는 의지와 끈기가 갑자기 생겨 나올 예정이다. 오늘 못한 일도 다음 날이면 분명 가뿐히 해치울 거라는 확신으로 눈을 멀게 한다. 넓고 빈 백지에 공상 만화를 그리듯이 뭐든 꾸며 넣을 수 있다. 기껏해야 24시간 이후인데도 천지가 뒤바뀔 변화를 예감한다. 등장인물과 배경이 변하지 않아 스토리가 달라질 까닭이 없음에도 기적을 믿으며 잠든다. 안타까운 일은 눈을 뜨면서 벌어진다. 내일의 힘은 오늘이 되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어제 겪은 하루와 똑같은 날이 그대로 이어진다. 한탄과 자책으로 뒤덮였던 모양과 한치도 어긋나지 않은 채.


언제나 내 것이라 믿던 내일과 손절한 건 내일이 없는 주변을 접하면서부터다. 나에겐 당연한 오늘을 갖지 못하고 영원히 눈 감은 사람을 떠나보내며 각오했다. 내일이 올 확률이 꼭 100퍼센트가 아닐 수 있다고. 오지 못할 다음날도 예상 시나리오에 넣어야 함을 깨닫고는 맹신을 거뒀다. 습관처럼 기대하던 내일은 안 올 수 있었다. 내일은 오늘의 내 것이 아니기에 탐내면 안 된다. 내일은 내일에 있을 또 다른 나의 소유니까. 현재 가진 시간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자에겐 염치없는 욕심이다. 가져 봤자 알맞게 다루지도 못하고 또 그다음 날을 기웃댈 게 뻔한. 내일을 놓아 버리자 아침의 풍경에 변화가 생겼다. 감사하며 눈을 뜬다. 뜨지 못했다면 맞이하지 못할 하루가 또 주어져서. 내일을 내 삶에 주어진 덤으로 인정하자 달라졌다.


잠들기 전 오르가슴을 전보다 훨씬 자주 느낀다. 빠짐없이 체크하고 지우며 완성하는 하루가 늘어났다. 나중이 없으니 미룰 수가 없다. 지금 하지 않으면 다시 할 수 없을 거라는 자각은 강력한 동기부여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라는 명언까지 가지 않더라도, 내게도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충분한 위협이다. 전엔 멋모르고 즐겼던 '오늘 할 일 다 했다!'에서 느낀 쾌감이 어디서 비롯된 건지 파악했다. 최후를 충만하게 채웠다는 뿌듯함이 후회를 남김없이 지웠기 때문이다. 지금 눈을 감고 다시는 뜨지 못하더라도 여한이 없기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 갑자기 떠날 때 "아, 이거 내일 하려고 했는데." 같은 안타까운 유언은 남기지 않을 테니.


아무리 죽기 전 마지막 날처럼 살아도 시간은 유한하다. 하루아침에 끝낼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하릴없이 분량을 나누어 앞날의 계획에 옮긴다. 양이 많아 꽤 오랜 기간이 필요한 웅장한 플랜도 요즘엔 겁이 안 난다. 오늘이 아니라면 걱정해도 쓸모없다는 걸 알아서. 지금 눈앞에 집중하면 된다. 그다음은 그때의 내가 그리하면 된다. 각자에게 주어진 오늘에 충실한 모습이 가질 수 있는 최대치다. 오늘의 나는 오늘 하기로 한 일로 채우고, 내일의 나도 그렇게 이어가고. 오롯이 현재의 내게 집중하면서 과거와 미래의 집착이 사라졌다. 돌아보며 후회하고, 기대하며 미루는 습관을 지웠다. 닿을 수 없는 또 다른 나에게 기대는 건 아무 의미가 없으니. 어느 순간의 나보다 철저하게 느끼고 있는 지금의 내가 좋아졌다. 지난날의 나보다, 다가올 날의 나보다 월등하게.


어느 날 아들이 슬램덩크의 강백호처럼 내게 물었다. 아빠의 인생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냐고. 지금뽕에 차오르던 난 지체 없이 대답했다. 바로 지금이라고. 너와 대화를 나누는 이 순간, 오늘치 운동을 마치고 난 직후, 곧 읽을 책을 생각하는 당장이 베스트 모멘트라고. 전혀 당황하지 않은 아들은 웃으며 자기도 그렇다고 했다. 동지를 만난 반가움에 어렵게 깨달은 진리를 구구절절 나누려고 시동을 걸자, 당연한 이야기 그만하라는 표정으로 아이는 슬쩍 자리를 피했다. 겸연쩍게 혼자 남아 상상했다. 만약 영광의 시대가 지금이 아니라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 잡을 수 없는 옛날이어도, 안 올 수 있는 훗날이어도. 아예 앞뒤를 살필 수 없는 눈가리개를 착용하고 만져지는 손 위와 발 밑만 느끼고 싶다. 지금의 내가 잡고 있는 이 찰나를 온전히 다음의 내게 고스란히 전하면서. 한눈팔지 않고 꾸준히 현재의 자신만 좋아하며 살고 싶다. 그런 그림을 귀하디귀한 지금을 조금 써서 그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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