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곳을 고를 수 있다는 충격

by 초록Joon
후회하지 않아?

3년 반 만에 고국 땅을 밟기가 무섭게 귓가를 때리던 질문. 애초부터 답변자의 대답은 필요 없던 모양인지 기다려주지 않고 충고와 조언이 적절히 버무려져 줄줄이 쏟아진다. 열심히 공부해서 간 대학과 어렵게 들어간 회사가 아깝지 않냐고. 힘들게 일궈놓은 걸 모두 포기하는 건 손해 아니냐고. 순간적인 일탈은 이 정도로 충분하니 다시 돌아오는 게 낫지 않겠냐고. 남들은 가지려고 애쓰는 걸 일부러 놓아버리는 건 잘못된 판단 같다고. 수학처럼 답이 정해진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견해 차이는 좁힐 수 없다. 물어보았지만 응답할 수 없는 상황이랄까. 그들 눈에 바보 같은 선택을 한 우리에겐 해명할 기회는 없다.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어야만 끝나는 질책 같은 의문 앞에 서성댈 뿐이다.


순수한 시도가 전혀 없진 않다. 철없어 보여도 있는 그대로 알아주길 기대하면서. 정확히 이해할 순 없지만 얘네의 사정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식으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기쁘고, 주위의 경쟁과 압박이 없어 자유롭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있어 좋다며 느낀 대로 늘어놓아 본다. 아니라고도 안 하지만 그렇다는 대꾸도 없이 '그래도...'로 이어지는 대화는 속에 닿지 못하고 겉을 돌고 돈다. 변화된 상황을 살아가는 우리가 전보다 행복하다는 설명이 부족하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납득이 되지 않으면 존중은 어려운 일인 건지. 때론 오지랖까진 아니더라도 우릴 위해 진심으로 건네는 걱정을 비치기도 한다. 살아보니 괜히 다수가 좋다는 걸 따르는 게 아니더라는 삶의 교훈을 안기는 행위가 그렇다. 우르르 몰려가며 따라 하던 인생이 싫어져 떠난 속사정도 모르고.


계속되는 답정너 화법은 버티기 쉽지 않다. 설득은 고사하고 느낌을 전하기도 버거워지면서 점점. 발언권이 있는 우리 부부의 간증에 가까운 고백을 듣던 상대방은 말꼬리를 엉뚱한 곳으로 튼다. 결정권 없이 따라다녀야 하는 아이는 무슨 죄냐며 논의 대상이 해맑은 친구로 황급히 넘어간다. 당황과 황당 사이에서 잠시 주춤하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제일 좋은 건 이 친구라고 외친다. 빡빡한 입시 제도 속에 눌려 뺑뺑이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되고, 자연에서 뛰어놀며 배우고 싶은 걸 체험하는 놀라운 유년기를 보내는 중이라고. 그제야 상대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잠잠해지지만, 흔쾌히 끄덕이는 자세는 아니다. 오히려 갑갑한 사람 앞에서 답답한 내가 참고 말지에 가깝다. 우린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게 더 잘 맞는다는 걸 왜 믿지 못할까. 생긴 것만큼 모두 다른 삶을 산다는 게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제인 건지.


처음으로 일 년 넘게 한국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았다. 햇수로는 4년 차. 적응의 동물이라 타지가 익숙해지는 바람에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곧잘 잊었다. 태어난 곳이 아닌 장소에서 살아보려 했던 초심은 희미해지고, 당장 눈앞의 하루를 사느라 눈만 껌벅거리다 깜박하면서. 묵혔던 감각은 오랜만에 고향을 만나며 살아난다. 반가운 만큼 이질감이 풍기는 시간은 떠나던 시절의 고민을 꺼내 펼친다. 분명 했다고 믿었던 대답은 헷갈리고, 그땐 젖혀두었던 해묵은 의문이 기를 편다. 양쪽을 경험한 지금에야 비로소 마주한 주제도 있다. 살아왔던 나라와 살아갈 나라 사이에 있는 복잡한 나에게, 어디가 더 살기 좋냐는 간편한 물음이 던져진다. 말도 안 되는 단순화에 놀라 달아나려 하지만 놓아줄 본새가 아니다. 입으로는 어버버하며 머리로는 저 멀리 마음속으로 향한다. 우리는 정말로 왜 이곳을 떠나게 된 걸까.


대한민국을 떠나는 현상이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해외로 나가 90일 이상 장기 체류한 국민은 점점 증가한다. 반대로 입국해서 그만큼 머문 사람은 급격히 줄고 있다. 글로벌 시대이니 자유롭게 오가는 게 당연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쳐 보이는 건 확실하다. 마음먹고 해외살이를 결심한 사람 중 모국이 그리워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해외이주 신고를 하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신고하는 영주귀국자. 어쩐 일인지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다. 밖에서 정착해 만족하고 사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증거다. 다른 나라에서 먹고살 만한 능력을 갖춘 우리나라 사람이 돌아오지 않고 머문다는 건 인력의 유출이다. 안타까운 인구 감소 걱정이 민망하게도 어쨌든 ‘탈(脫)한국’은 진행 중이다. 나 혼자서 하는 망상이 아닌 통계청과 외교부의 사실을 전하는 목소리다. 드러나 깔린 여러 숫자 중에 우린 어디쯤일까. 안과 밖 중 어느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려나.


끝없는 선택의 집합체, 인생을 살아가면 피할 수 없이 마주치는 개념이 기회비용이다. 결정을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지 따져보는 짓인데, 부질없다고 믿는다. 후회를 준비하는 쓸데없는 방법이라 원래도 무시하지만, 특히 이번에 강요받은 핵심 논리라서 미움이 더 심해졌다. 대체로 멀쩡하게 지냈더라면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아끼고 모았을 거냐는 식으로 흘러간다. 한창 자산을 늘리고 노후를 준비해야 할 시기에 괜한 딴짓을 해서 귀한 시간을 낭비했다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면서. 사라진 돈 쪼가리를 쫓는 건 현재의 가치에 주목하지 못해서다. 떠나기 전에 우린 참담했다. 지금을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올지 안 올지 모를 미래의 행복을 부채처럼 늘려갔다. 쌓이는 통장만 바라보며 버티던 악순환을 끊고 새로운 시간을 가졌다. 오늘을 충만히 채우며 내일을 기대하며 지낸다.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길도 가보며 꿈을 현실로 가져온다. 놀라운 경험 가운데 그깟 얼마라는 숫자놀음이 낄 자리는 없다. 이미 그 값을 상회하는 물건을 받기도 했고.


세상을 보는 방향이 다른 이에 지친 건 맞다. 그럼에도 펜을 질질 끌고 와 잡기로 한 이유가 있다. 직접 나가 살기 전까진 아무것도 몰랐다. 알고 싶어 찾아봐도 정보와 후기가 부족했다. 혼자 지내서 가벼운 싱글의 워킹홀리데이 스토리는 많지만, 우리 같이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의 시도는 접하기 어려웠다. 또한 더욱 필요했던 건 단순한 자료나 지식이 아니었다. 결심의 동기와 지내며 겪는 불안과 만족 같은 겉보단 안에 담긴 마음이 궁금했다. 그때 그 결핍의 갈증을 기억하며 바깥 세계의 시간이 쌓인 지금까지의 우리를 담기로 했다. 어느 나라에 아무개가 이민한다는 뻔한 한 토막 기삿거리는 싫다. 한 가족 구성원인 남성과 여성과 아동이 삶의 배경을 바꾸는 도전이라 말하고 싶다. 난 곳이 아니라면 감히 다른 곳에서 살 거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지만, 이젠 어디서라도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으니.


용기 가득 묻은 첫걸음을 알리려 하니 우린 뭔가 좀 다르게 보일까 봐 스스로 우습다. 세상에 둘도 없는 겁쟁이 무리가 우리 가족인데. 무엇 하나 새롭게 하려면 온몸이 쪼그라들어서 정하는데도 하세월이고, 어렵게 정한 뒤 부딪히는데도 날이 쉽게 바뀐다. 가끔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는 놀라움 섞인 질문을 받으면 셋 중 누굴 둘러봐도 하나같이 쫄보라서 기가 막힌다. 담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너와 나의 유약한 얼굴을 보며 신기할 따름이다. 아무런 시도 없이 땅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답답해봤자 별수 없다며 하던 대로만 지내던 우리가 도대체 어쩌다. 참다 참다 꽉 막혔던 게 터진 게 아닌가 싶다. 꾸준히 이런저런 시도를 해왔다면 오히려 한꺼번에 확 바꿀 일이 없었을지도. 변화에 느려터져서 쑥쑥 자라기만 하는 변명, 핑계와 합리화의 습관을 잘라낼 우연한 위기와 맞닥뜨렸다. 도망갈 길이 없어 받아들였을 뿐이다. 다소 허무한 계기일 수 있지만 정말 그랬다. 살아오던 길의 앞이 보이지 않아 방향을 틀었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해방의 늘어놓음을 전할 것이다.


어떤 강연자의 손쉬운 해답처럼 다른 나라로 탈출하기가 정답이라 말하지 않는다. 다른 곳에 산다는 건 수많은 길 중 하나의 선택이다. 말하자면 음식을 고르는 취향이랄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다른 이가 즐기는 메뉴보다 나은 건 아니니까. 다만 차림표를 가림 없이 제공해야 한다고 믿는데, 누구에겐 없는 메뉴를 추가하는 목적으로 쓴다. 몰라서 못 고르는 건 막자는 취지로. 빠져있는 줄 모르고 먹던 것만 먹던 시절엔 질려도 대안이 없었다. 안 먹으면 배고프니 입맛에 맞지 않아도 꾸역꾸역 배를 채워야 했다. 우발된 주문으로 타지의 생활을 맛보곤 뒤늦게 삶을 살펴보았다. 살아온 지난날과 살아갈 방향을 바라보는 기회를 가졌다. 고를 수 없었던 태어난 곳과는 다르게 사는 곳은 마음대로 골라볼 수 있다는 충격은 컸다. 왜 한 곳에서 계속 살다 죽으려고 했을까. 누구도 그러라고 안 했지만 그래야 하는 줄만 알았다. 요람과 무덤이 꼭 같은 장소일 필요는 없는 건데.


이어지는 글은 혼자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세 가족이 각자의 분량을 맡아 자신의 목소리로 털어놓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직접 펜을 잡는 일은 없을 테다. 쓰는 사람은 나지만 화자가 바뀔 뿐. 대담이나 취재 형식이 아니고 삶의 반경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본인인 양 그대로 담겠다. 글이 부족하다면 가까운 가족을 덜 이해하는 좁은 마음을 가진 나의 한계다. 물론 내가 나를 쓰는 것과 내가 남을 쓰는 것이 무척 다를 거라 머뭇거리기도 했다. 고민 끝에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결론을 무심코 내렸다. 나를 내가 쓰면서도 잘 모르거나 부족하거나 빼먹거나 깨닫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남을 내가 쓴다 해도 어차피 비슷하지 않겠냐는 얄팍한 판단을 앞세웠다. 혹시 정말 거리가 먼 부분이 있더라도 책임은 쓴 나에게 있다. 먼저 하면 장땡이라는 억지처럼 쓰는 권리와 맛도 내게 있듯이.


나라 밖의 삶을 생각지도 못했거나, 조금이라도 고민한 적이 있거나, 하염없이 미뤄둔 어떤 경우라도 우리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얻어가는 게 정보든 용기든 웃음이든 걱정이든 뭐든지 간에. 마지막에 가서도 여전히 우리를 향해 끄덕이지 못해도 상관없다. 꾀거나 구슬리려 한 글이 아니니까.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싶은 마음만 전해도 좋겠다. 언젠가 바라는 지점이 맞닿아 돌아보게 된다면 더 좋고. 변화가 목마른 이에게 메아리를 기대하지 않고 외치는 야호랄까. 가감 없는 솔직한 외침이 당신에게 투명하게 전해지길. 행여 움직이는 순간에 우리가 떠오른다면 기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