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의 사정>
난 아빠와 엄마의 사랑으로 태어난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어. 진짜 이름이 붙기 전까지 귀엽게 줄인 '뽁이'로 불렸고, 지금도 종종 그렇게 불리곤 해. 물론 두 분이 기분이 좋을 때만 말이야. 아닐 땐 정직한 내 이름으로 단정하게 불리면서 잔소리가 시작되지. 얼마나 말이 길어지는지 정신이 혼미하다니까. 아무리 딴생각을 해도 끝나지 않아서 요즘엔 속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버티지. 아,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면 안 되지.
내가 기억하는 처음은 어린이집에 가서 다른 친구들을 만났을 때쯤이야. 오래된 추억이라 첫 선생님 얼굴이나 친구 이름은 까먹었지만, 엄마 아빠랑 헤어진 슬픔은 똑똑히 기억나. 집에서만 편안하게 지내다 낯선 곳에 가느라 얼마나 놀랐던지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응급실에 갔어. 시간이 지나 몸과 마음의 놀람은 가라앉았고 곧 적응해서 잘 먹고 잘 놀았지. 아마 그때부터 집보다 밖에서 더 많이 보냈던 것 같아. 해가 뜰 때 나가서 해가 지면 돌아왔지. 부모님이 안 계신 집에 혼자 있을 순 없었으니까.
두 분 중 한 분은 꼭 내가 깨기 전에 나갔어. 또 두 분 중 한 분은 꼭 내가 자고 나서 들어왔고. 회사라는 곳에 둘 다 꼭 나가야 했는데 우리가 먹는 음식과 입는 옷, 그리고 사는 집도 다 거기 덕분이라고 했어. 제일 중요한 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도 살 수 있고. 어쩌다 회사에 가지 말고 나랑 놀아달라고 떼를 썼는데 그때마다 나보다 더 슬픈 표정으로 엄마 아빠는 그렇게 설명했지. 그들도 정말로 가고 싶어서 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왜냐하면 파란 날이나 빨간 날이면 엄청나게 신나는 게 느껴졌거든. 검은 날에는 보기 힘든 미소도 많이 볼 수 있었고. 세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날이 늘 기다려졌어. 아침마다 오늘은 무슨 날인지 물었지. 대부분 검은 날이라 자주 아쉬워했지만.
가끔은 둘 다 나와 함께하지 못하는 날도 있었어. 날 맡아주는 처음 보는 이모가 오거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어 주기도 했어. 주말이라고 부르는 파랗고 빨간 날도 항상 지켜지진 않았어. 두 분은 번갈아 가면서 얼굴을 찡그리며 검은 날에만 간다던 회사에 가기도 했거든. 어른의 세계를 모르는 나는 이상했어. 이럴 거면 날을 색깔로 나눌 필요가 있나 싶었지. 지켜지지 않는 달력의 약속이 미웠어. 날 두고 나가는 엄마 아빠도 별로였고. 집은 커졌지만 함께하는 날은 어쩐지 계속 줄어만 갔어. 엄마 아빠가 엄마 아빠의 엄마 아빠와 더 이상 같이 살지 않는 것처럼 이제 나도 그렇게 되는 거라는 착각을 할 만큼.
어느 날부터 두 분이 말이 많아졌어. 어딜 멀리 길게 간다는 것 같았는데 그게 이사인지 여행인지 모르겠더라. 둘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듣고 있으면 차근차근 천천히 설명을 해줬지. 추운 겨울이 없는 곳에서 지내려고 한다는 둥, 회사를 오래 쉬려고 한다는 둥, 새로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둥 내겐 온통 어려운 내용이었어. 그저 확실하게 느낄 수 있던 건 엄마랑 아빠가 많이 들떠있다는 것. 이따금 찾아오는 따뜻한 동남쪽 나라로 휴가를 보내러 가기 전이랑 좀 비슷했는데, 그 정도가 훨씬 컸어. 중간중간 내가 나중에 가는 학교에 관한 계획도 나왔어. 새롭게 옮긴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신나게 지내고 있는 내겐 와닿지 않는 소리였지. 영원히 그곳에서 형님들, 동생들과 놀 줄 알았거든. 지금도 그렇듯이 난 오늘만 좋기를 바라느라 내일엔 좀 관심이 없어.
하루는 분명히 검은 날인데 아침에 일어나니 세 가족이 모두 집에 있었어. 회사를 쉬기로 했다며 어린이집에도 직접 데려다주고, 끝나고도 함께 데리러 왔어. 곧 멀리 어떤 나라에 여행을 길게 갈 건데, 놀러만 가는 게 아니고 그곳에서 살 수 있을지 보러 간다고 했어. 거긴 여기보다 더 많이 따뜻하고 다른 말을 쓴다네. 나도 가족 중 한 명이니까 나중에 여행이 끝나면 느낌을 알려달라 했어. 그땐 다른 나라에 사는 게 무언지 잘 몰랐어. 아기 때 살던 집을 떠나 이사 온 새집에서 지내는 것과 크게 다른 건가 싶었지. 아무튼 우린 비행기를 정말 오래 타고 날아갔어. 지구가 그렇게 큰 줄 몰랐네. 답답한 탈 것에서 빠져나오며 '호주'라는 곳에서 태어난 뒤 했던 가장 긴 여행이 시작되었지. 어땠냐고? 끝내줬지!
하늘이 그렇게 깨끗하고 파랗더라. 한국 어린이집에서는 미세먼지가 심하면 바깥마당에 나가지도 못했거든. 거긴 그런 게 없어서 매일 맑음이래. 새로운 밥이랑 간식도 먹고, 신기한 동물도 만나면서 즐거운 순간이 계속되었어. 처음 듣는 영어가 불편했지만 아직 많이 어린 내겐 모두 친절했어. 가끔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했지만 나도 그들이 신기해서 마찬가지였지. 어딜 많이 다녔는데 사실 다 기억나지 않아. 요즘도 가끔 엄마랑 아빠가 그때 사진을 보여주면서 여기저기 갔던 거 기억나냐고 묻는데, 모른다고만 하면 실망하는 것 같아서 생각나는 척하면서 넘어가기도 해. 나도 사는 법을 배웠거든. 아무튼 이거 하나는 확실해. 그때가 좋았던 건, 언제나 우리가 함께였기 때문이야. 여행을 마치고 내 소감을 물었을 때도 그곳에 살면 좋겠다고 했어. 바다니 날씨니 이유를 대긴 했지만, 진짜는 붙어 있는 시간이 행복해서였어.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늘 옆에 있을 수 있다면 최고니까.
살던 집으로 돌아와서 한동안 원래대로 지냈어. 두 분은 뭔가 고민했고 준비했어. 한국이 아닌 다른 데서 사는 건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었나 봐. 아빠는 똑같이 회사에 갔고 엄마는 집에서 공부를 했어. 뭐가 있어야 우리가 떠날 수 있다고 했는데 그걸 가지기가 어려웠나 봐. 긴 여행의 추억이 가물가물해질 때쯤 두 분이 내 손을 잡고 말했어. 다녀왔던 따뜻한 그곳에 가서 살아보기로 했고, 이제 갈 수 있다고.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랐는지 둘이 내 입만 바라보고 있더라고. 그제야 속마음을 꺼냈지. 이제 고민 끝난 거냐고. 세 가족이 오래 같이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좋다고. 둘은 기뻐하며 함께 지내기 위해 가는 게 맞는다고 확인시켜 줬어. 실감 나기엔 살아온 날이 짧았지만 뭔가 크게 바뀌나 보다 했어. 그 이후 찾아온 분주한 나날 덕분에.
내게 전했던 소식을 우리가 만나던 모든 사람에게 말했어.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이모, 삼촌, 어린이집 선생님, 어린이집 친구 부모님, 회사 삼촌, 회사 이모, 아빠 친구, 엄마 친구. 나도 덩달아 친구들에게 어디 멀리 가서 살 거라고 했어. 가끔 보는 사람들을 하루가 멀다고 계속 만나면서 인사했어. 아쉬워하며 나를 많이 안아 줬어. 비행기를 타면 다시 와서 볼 수 있는데 왜 그러는지 잘 몰랐어. 평소처럼 어쩌다 보는 것과 뭐가 달라지나 싶어서. 정작 슬펐던 건 아끼는 장난감이랑 인형과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었어. 당연히 전부 가지고 가려고 했는데 안 된다고 해서 처음으로 가기 싫어졌어. 비행기가 무거워지고, 배에 태워도 비싸다는 설득이 억지 같았지. 결국 더 사랑하는 엄마 아빠와 함께하기 위해 데려가지 못하는 친구와 하나씩 작별 인사를 했어. 그때도 많이 울었는데 지금도 놓고 온 친구를 떠올리면 눈물이 나. 특히 커다란 악어 인형은.
어딜 가도 내 물건으로 가득했던 집이 텅텅 비었어. 줄 건 주고 버릴 건 버리고 보낼 건 보내고. 우리 집엔 다른 사람이 살 거래. 나와 엄마 아빠가 없으면 우리 집이 아니니 상관없었어. 우리가 남지 않은 빈집을 뒤로하고 여행 갈 때만 쓰는 바퀴 달린 커다란 가방을 가득 들고 비행기 타는 곳으로 갔어. 날 챙기는 어른 둘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난 그냥 놀러 가는 기분이었지. 내 나이 때는 둘 만 곁에 있으면 든든한 거 아니겠어? 그런 마음으로 여길 왔어. 아침에도 저녁에도 나란히 일어나고 누울 수 있는 게 좋아서. 어디라도 문제없었어. 함께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