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의 사정>
엄마와 아빠의 말은 사실이었어. 새로운 나라에 도착해서 우리 세 가족은 계속 붙어있었거든. 더 오래 함께 지내기 위해 떠나왔다는 이유가 정말이었던 거야.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났지. 어디를 가더라도 다 같이 갔고. 그중에서 제일 많이 다녔던 곳이 어딘 줄 알아? 자연이 넘치는 호주답게 공원이나 바다를 예상했겠지만, 전혀 아니야. 우린 남의 집을 무척이나 자주 구경하러 갔어. 오긴 왔는데 어디서 지낼지 정해지지 않았거든. 커다랗게 생긴 집도 가보고, 높다랗게 생긴 집도 가봤지. 정말이지 실컷 보러 다녔어. 두 분은 나처럼 처음인데도 씩씩하게 모르는 말로 낯선 집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며 머물 곳을 골랐지. 나한테도 집에 꼭 필요한 게 뭐냐고 물어봤는데, 답은 정해져 있었어. 바로 욕조! 난 물에 몸 담그고 노는 걸 최고로 좋아하거든. 그것만 있으면 돼. 내 요구가 흔쾌히 받아들여진 뒤에도 욕조가 있는 우리 집은 한참 동안 만나지 못했어. 한동안 목욕을 못 해서 그런지 점점 기분이 축 처지더라고.
비가 오던 밤이었나. 엄마 아빠 사이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한국의 어린이집 생각이 난 거야. 보고 싶은 친구들과 선생님, 익숙한 놀이터와 장난감. 막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눈물이 펑펑 나면서 엉엉 울음이 터졌어. 어린이집 이름을 외쳐가며 가고 싶다고 떼를 썼지. 답답함이 쌓여있었는지 꽤 오래 흑흑 대며 칭얼댔어.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두 분 중 한 명이 같이 훌쩍댔어. 이럴 땐 대부분 아빠일 가능성이 높아. 강한 겉모습과 다르게 의외로 눈물이 많거든. 내가 울면 바로 약해져서 종종 급할 땐 써먹기도 해. 아무튼 그날은 내내 울다 꼭 안겨서 잠이 들었어. 나도 좀 컸는지 그러고 나선 훌훌 털어버렸어. 사실 그날 이후 나도 좀 바빠지기도 했고. 내가 말이야, 무려 외국에서 그림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거든.
더 어릴 때부터 말보단 그림으로 날 표현했어. 말은 좀 천천히 했지만, 그림은 먼저 그렸어. 마침 글자도 배우지 않는 어린이집이었기 때문에 더욱 빠져들었지. 어디서든 틈만 나면 그렸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나는 모든 걸 선과 색으로 드러냈어. 말과 글자가 달라진 이곳에서는 더욱 파고들었지. 영어는 몰라도 그림은 다 통했거든. 여전히 우리가 살 집을 구하지 못해 내가 다닐 어린이집을 정하지 못한 상태로 시간이 흘렀어. 그동안도 계속 그림을 그렸는데, 호주 미술 선생님께 한번 배워보지 않겠냐는 부모님의 제안에 붕 들떴어. 하지만 걱정이 더 컸어. 분명히 모르는 말로 이야기를 할 테니까. 그즈음부터 새로운 대학교 공부로 바빠진 엄마 대신, 아빠에게 내 옆에 붙어 있어 달라고 부탁했어. 말이 안 통하는 날 위해 기꺼이 아빠는 수락했고, 그렇게 내 생애 첫 번째 미술 수업에 참여했어. 선생님은 상냥하게 알려주고 처음 보는 여러 방식을 보여줬어. 미술 학원은 선생님의 집 옆에 있는 작업실인데 온갖 도구와 색깔이 있었어. 단번에 마음에 쏙 들어서 쭉 다니기로 했지. 놀랍게도 지금까지 계속 인연이 이어지고 있어. 말없이 날 받아주는 그곳이 참 좋거든.
한 걸음을 뗀 덕분인지 다음은 술술 흘러갔어. 몇 번의 이사 끝에 그렇게 찾던 우리 집에 들어갔고, 거기서 내 방도 얻었지. 가장 큰 변화는 집에서 가까운 유치원에 가게 된 거야. 어린이집도 아니고, 유치원이라니까. 뭔가 좀 더 형님이 된 의젓한 기분으로 방문했어. 와, 처음 보는 장난감이 정말 많더라고.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도 친절하게 날 대했어. 아직 대화는 무리였지만 마음은 느낄 수 있었지. 며칠을 정신없이 놀았던 것 같아. 다만 낯선 곳에서 지내느라 밥도 잘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긴 했어. 아, 이야기 안 했었나? 이래 봐도 내가 좀 민감하거든. 여기까지만 읽으면 과감한 도전을 즐기는 줄 알 텐데, 전혀 아니야. 낯선 환경을 만나면 온몸이 굳고 멈추지. 적응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해. 잘 모르겠다고? 준비 단계 없이 뛰어들었던 유치원에서 돌아온 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들려줄게.
집에 있는 빨간 날이 되자마자 몸이 이상해졌어. 해도 뜨기 전인 깜깜한 이른 아침에 속이 울렁거렸어. 어제 먹은 저녁이 목으로 올라왔어. 참지 못하고 자던 침대에서 토를 해버렸지. 놀란 엄마 아빠가 치우고 씻겨준 뒤 곧 잠이 들었지만 쉽게 가라앉지 않았어. 다시 한번, 그리고 또 한 번 연거푸 뱉으며 괴로워했지. 지쳐서 잠들었다 깨서 엄마가 해준 계란죽을 먹었어. 어찌 된 일인지 먹으면 계속 거꾸로 흘러나왔어. 아침 먹다가도 토가 멈추지 않았어. 결국 급하게 병원으로 날 데려갔어. 의사 선생님 앞에서도 구역질과 구토를 했어. 작은 약을 입에 넣고 나서야 괜찮아졌지. 돌아와서 쭉 늘어져 하루를 보냈어. 다행히 그날 밤 잠든 사이엔 별일은 없었지. 일어나자마자 전날 먹은 계란죽이 생각나서 아빠에게 부탁해서 먹었는데, 글쎄 또 토를 하고 만 거야. 병원을 또 가나 싶었는데 심해지진 않아서 집에서 푹 쉬었어. 두 분 말로는 아마 우리와 다른 호주 사람들과 처음 만나서 그런 거래.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작은 벌레가 달라서 서로 몸이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이라나. 신고식을 호되게 겪은 셈이지. 그 이후로도 모든 게 새로웠고 몸은 예민하게 굴었지만, 마음의 준비는 끝난 상태였지. 한 번 해봤다는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어.
또 다른 처음은 영어였어. 나 말고 모두 다른 말을 쓰는 게 어떤 기분인 줄 알려나. 유치원에 '물'과 '화장실'이라는 말만 외워서 갔거든. 내가 급해서 손짓, 발짓하면 선생님이 대충 알아듣긴 했는데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어. 그래서 많이 듣고 관찰했어. 아는 말이 없어서 입을 열 일이 없었지.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나아졌어. 아빠도 날 위해 집에서 영어 글자 놀이를 함께 해줬거든. 알파벳을 하나씩 들려주며 알려주었고, 자주 보이는 물건의 영어 이름을 가르쳐줬어. 놀이하듯이 문제 내고 맞히면서 아는 게 생겼어. 그때 아빠가 꽤 감동했던 순간이 기억나는데, 내가 알파벳을 순서대로 컴퓨터 자판에 입력했던 날이야. ABCDEFGHIJKLMNOPQRSTUVWXYZ, 이런 식으로. 자신이 붙자, 유치원에서도 점점 이해하는 게 많아지고 표현할 수 있는 말도 생겼어. 누가 물으면 내 이름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었고, 선생님이 하는 말도 친구들 하는 행동과 맞춰보면서 눈치로 알아챌 정도는 되었어. 마법의 언어인 '미안해', '고마워'도 금방 깨우쳤고. 아빠도 옛날에 처음 영어 쓰는 나라에 갔을 때 힘들었데. 나보다 훨씬 큰 대학생이었는데도 못 알아듣고 말 못 해서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나. 그래서 날 보며 걱정이 많았고, 자주 미안해하기도 했어. 유치원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늘 하루 잘 지냈냐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어. 내가 듣고 말해 주는 게 늘어나니 아빠의 표정이 밝아졌지. 막막하던 내 가슴도 편해진 건 물론이었어. 역시 낯선 처음은 영원하지 않더라고.
내가 흥미를 보이면 엄마 아빠는 관심을 보이면서 더 알려주고 싶어 해. 그림을 그리길 좋아하는 내게 좋은 선생님을 찾아준 것처럼. 피아노를 종종 치던 엄마를 보면서 나도 악기를 연주하고 싶어 했어. 눈치챈 두 분이 알맞은 첫 음악 체험 활동을 알아보곤 내게 권했지. 시작하기 전에 꼭 내 마음이 어떤지 물어봐 줘. 정말로 하고 싶은 건지, 억지로 떠밀려하는 건 아닌지. 내가 좀 헷갈리면 잠시 멈추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 하고. 마음의 준비가 되고 나서 아빠와 같이 어린이를 위한 음악 교실에 찾아갔어.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선생님이었는데 웃으며 날 반겼어. 특별히 영어가 서툰 날 위해 아빠가 옆에 앉을 수 있게 해 주었어. 첫날엔 우쿨렐레라는 기타와 닮은 악기를 연주했어. 아이용이라서 작았는데 내겐 딱 맞았지. 마음껏 연주하며 어떤 악기인지 알아 갔어. 갈 때마다 새로운 악기를 만날 수 있어서 재밌었어. 하모니카도 불고, 드럼도 치고, 기타도 퉁기고, 건반도 치고. 아, 딱 한 번 크게 울었는데 바로 커다란 금색 악기를 만났을 때야.
입으로 부는 트롬본이라는 거대한 녀석이었는데 보는 것만 해도 무섭더라고. 선생님이 처음에는 소리를 내기 어려울 거라고 설명했다는 걸 아빠를 통해 들었어. 근데 내 앞에서 부는 친구들이 전부 크게 연주를 해낸 거야. 내 차례가 되어 나도 쉽게 되겠거니 생각하고 입을 가져다 대고 힘껏 불었지. 근데 이게 웬걸. 아무리 세게 불어도 꿈쩍하지를 않네. 당황한 채로 계속 시도했는데, 전부 나를 쳐다보니 더 긴장돼서 못 하겠더라고. 보다 못한 아빠가 달려와서 도와주려 했는데 소용이 없었어. 결국 정해진 시간이 지나서 내려놓았는데 무언가 억울했어. 선생님도 본인이 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내게 설명을 다시 해주었어. 난 한 번 더 도전하고 싶었는데 기회는 오지 않았어. 내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어서 답답했어. 수업이 그대로 흘러 끝나자, 눈물이 마구 흘렀어. 아쉽고 창피하고 서럽고 슬펐지. 괜찮다는 아빠 품에 안겨서 오래 울다 집에 갔어. 깔끔하게 설명할 수 없는 막막함을 느낀 날이었어. 나중에 떠올려 보니 욕심만큼 되지 않아서 그랬던 모양이야. 이것도 처음 느낀 감정이었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둑질할 뻔한 적도 있었어. 오해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줘. 의도한 건 아니었다고. 그날도 엄마 아빠랑 어느 가게에 함께 갔었어. 마침 나같이 따라온 아이를 위한 놀이공간이 있더라고. 혼자 들어가서 신나게 놀았지. 처음 보는 놀잇감이 있는 곳은 언제나 환영이거든. 한창 놀고 있는데 두 분이 볼일 마쳤다며 날 데리고 나왔어. 엉겁결에 손에 들고 있던 장난감을 놓지 못하고 차에 탔지. 찜찜한 마음에 조용히 말을 꺼냈어. 이걸 그대로 들고 나왔다고. 잠시 놀란 엄마 아빠는 천천히 상황을 파악하고 차를 되돌렸어. 다시 가게로 돌아가서 열심히 연습한 사과의 말을 직원에게 전했어. "아임 쏘리." 웃으며 뭐라고 내게 말했는데, 아빠에게 전해 들으니 용감한 아이라며 원하면 상으로 가져도 좋다고 했다는 거야. 머쓱하고 멋쩍은 나는 고맙다고 작게 말하고 다시 손에 들고 나왔어. 두 분은 용기를 낸 날 칭찬했어. 짧은 순간 복잡한 기분을 겪은 첫 경험이랄까. 더 재밌는 건 선물로 받은 그 장난감은 곧 잃어버렸어.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는지, 남의 물건엔 손대지 말라는 교훈만 남기고 사라졌나 봐.
새로운 순간은 계속 찾아왔어. 그때마다 두근거리고 어지러웠지. 지금도 다르지 않아. 다만 배운 게 있어. 처음은 두렵지만 곧 괜찮아진다는 걸. 더 어릴 적엔 피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미루고 넘기고 도망 다녔어. 안 하겠다고 하면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거든. 이곳에선 한 번쯤은 꼭 넘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 오히려 어렵고 힘든 일을 먼저 부딪치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해. 키가 커서 안 그럴 것 같은 엄마 아빠도 무섭대. 안 해본 걸 해보는 게 떨리고 긴장되는 건 자연스러운 거래. 그렇지만 한 번은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했어. 두 분도 처음이 가장 어렵지만 눈 딱 감고 해 본대. 그러고 나면 거의 다 아무 일 아닌 것처럼 흘러간대. 이제 나도 그렇다는 걸 알아. 해 보기 전까진 모르지만, 하고 나면 별거 아니라는 걸. 새로운 땅에서 그걸 배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