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생활, 이상과 현실의 차이

<파랑의 사정>

by 초록Joon

과연 여행과 생활은 다르더라. 겉에서 밝은 것만 취해 즐기던 입장과 속으로 들어가 헤쳐 나가는 상황은 차이가 있었어. 왜 이런 적 다들 있잖아. 멀리 사는 친구에게 놀러 갔을 때, 여행처럼 찾아가는 나는 명소와 맛집을 찾아봐서 다 알고 있는데 친구는 잘 모르거나 가본 적이 없는 경우. 등잔 밑이 어둡다는 설명보다는 여행자와 생활자의 자세가 다른 모양이기 때문일 거야. 나에겐 호주가 그렇게 변해서 다가왔어. 불과 몇 달 전에 같은 곳을 즐기던 나와 살아가기 위해 버둥대는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지.


자질구레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일이 많았어. 로밍 서비스로 쉽게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새로 개통해야 했고, 국제운전면허증으로 가능했던 운전도 현지 드라이버 라이센스로 바꿔야 했지. 한국 신용카드면 충분했던 전과 달리 호주 은행에서 새로이 계좌를 만들어 써야 했고, 관광비자면 문제없던 신분도 학생비자를 새로 발급받아야만 했어. 한 번 쓰고 버렸던 용품도 앞으로 계속 쓸 앞날을 고려해서 준비해야 했고, 맛있게 먹고 평점을 남길 식당보다는 필요한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가게를 알아봐야 했지. 아이와 방문해서 근사한 사진을 남길 장소를 고르는 대신 아이가 안전히 지낼 보육 기관을 찾아야만 했고. 번거롭지만 적절히 대처하면서 풀어나갔어. 어쨌든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방법은 다 있었거든. 다만, 가장 크고 급한 매듭이 잘 풀리지 않았어. 우리 가족이 머물 공간을 구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더라고.


계획대로 절대 되지 않는 삶이 당연하단 걸 다시 깨달았지. 집을 해결하기 위해 제일 먼저 오래 애를 썼지만,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 잘 곳을 구하느라 겪은 수많은 눈물겨운 시행착오는 다음에 남편 초록이 불쌍하면서도 유쾌하게 털어놓을 거야. 이곳에서 살림살이 담당자는 아무튼 그니까. 여기선 남겨 놓고 싶은 미담 하나만 전하려고 해. 잠시 머물려했던 임시 숙소에 비싼 돈을 계속 퍼부으며 머물게 되자 이건 아니다 싶었어. 조건이 열악하더라도 비용을 아낄 수 있는 현지 민박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았지. 미친 듯한 검색의 터널을 지나서 뜻밖의 천사를 만났어.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상상할 수 없는 거처를 제공하던 그녀들. 거대한 숲속에 자리한 이층집의 1층을 빌려주었는데 자연의 한가운데서 편안히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어. 잠잘 곳도 제대로 못 구하는 각박한 타지살이 초기에 큰 위안이 되었지. 집주인은 우리와 똑같은 세 가족이었는데 엄마와 딸의 이름에 엔젤(Angel)이 들어 있었어. 이름처럼 친절하게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모두 세심하게 챙겨주며 마치 우릴 위해 내려온 천사처럼 보살펴 줬지. 요즘도 가끔 아침에 일어나면 반기던 그곳의 커다란 나무들과 따뜻하게 물어보는 그녀들의 안부가 떠올라.


전할 수 있는 감동은 여기까지야. 그 이후로도 수많은 우리의 처음이 있었지만, 이다음부턴 철저하게 내게 집중해야 했거든. 모두 기억하지? 내가 이곳에 온 목적. 영어로 간호를 공부해서 일을 하는 거야. 솔직히 말해서 오기 전까지는 새로운 대학 공부를 걱정하진 않았어. 뭐라고 해야 하나, 공부는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거든. 모든 일이 그렇지만 그동안 경험한 일 중 공부는 늘 명확했어. 시간을 들여서 집중하면 결과는 나오게 되어 있거든. 뻔뻔한 자신감을 가지고 왔는데 놓친 게 하나 있었지. 다른 언어로 공부한 적은 처음인 거야. 내게 영어는 외국어였고, 영어로 이루어진 대학 공부는 전혀 다른 이야기더라.


해외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부푼 꿈을 꾸며 세상 밖으로 나왔어.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몇 년 공부하고 생활하면 곧장 자유롭게 구사할 것이라는. 한 번 나가봤던 초록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맹세코 그럴 리 없다고 했지만, 케바케 아니겠냐고 일축했지. 온통 영어로 가득한 곳에서 살면 네이티브 스피커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믿었어.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서 영어가 늘겠냐면서. 첫 강의가 끝나고 마음은 혼란으로 가득했어. 얼마나 못 알아들었는지조차 가늠이 안 되는 무지의 시간은 영원히 능숙해질 수 없다는 공포를 던져주기 충분했지. 초록이 말한 게 이거였어. 언어는 경험치를 쌓으면 저절로 올라가는 레벨이 존재하는 게임과 달랐어. 모르는 언어를 마주한다는 건 소통과 이해의 단절을 의미했지. 가로막힌 벽이 저절로 낮아지거나 얇아질 거라 믿었던 기대는 터무니없던 거야. 평생 영어를 배우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최고점에 오르는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전화 통화.


전화기를 붙들고 나누는 대화는 도무지 방법이 없었어. 상대방의 얼굴과 입 모양, 눈짓과 표정이 빠져있으니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었지. 자꾸 되묻는 나를 건너편에서 지겨워하는 게 느껴지면 가슴이 쪼그라들었어. 언어는 말이 통해야 의미가 있는 건데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전하지 못하는 장면이 반복될수록 절망에 빠졌지. 통화를 마치고 나면 개운하지 않고 불안했어. 내가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그는 나의 말을 의도대로 받아들인 걸까 하면서. 배우려는 호기심으로 무너지는 좌절감을 붙드는 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같았어. 결국 적응의 동물답게 적당한 실수와 아쉬움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하려던 공부에 집중했지. 어쩐지 학기가 접어들수록 묘한 가정을 하게 되었어. 만약 모국어로 배우더라도 웃으면서 쉽게 배울 수 있을까. 배움의 어려움이 과연 언어만의 문제냐는 고민이 든 거야. 그만큼 사람의 건강을 다루는 간호 학문은 생각보다 넓고 깊었어.


내버려 두어도 흔들리는 솜털 같은 신입생 시절에 가슴을 들이받는 소식이 종종 들려왔어. 엊그제 만나 반갑게 인사한 동기가 사라졌다는. 다양한 이유와 소문만 덩그러니 남았지. 사정이 생겨 한국으로 돌아갔다더라,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다른 나라로 떠났다더라. 이미 떠난 이의 사정을 물을 순 없었지만, 만만찮은 학업이 이유란 건 짐작할 수 있었어. 조금만 약해지고 틈을 보이면 나도 그럴 수 있겠다 싶었거든. 다른 친구의 과제 불합격과 실습 탈락이 귓속으로 들어올 때마다 떨렸지. 주어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니까. 첫 과제, 첫 시험, 첫 실습을 마치면서 해냈다는 안도만큼이나 겁이 몰려왔어. 앞으로 남은 기간에 나는 어떤 소문으로 남게 될지. 자랑스럽진 않아도 안타까운 이야기로 남긴 싫었으니까.


약해질 때마다 함께 온 가족에게 미안했어. 물론 같이 고민하고 결정했지만, 처한 현실을 들여다보면 짠했어. 한국 친구들과 잘 놀며 지내던 아들은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외국인 사이에 놓여있었고, 멀쩡히 회사 다니며 가치를 내보이던 남편은 쉬면서 애만 보며 멈춰있었고. 괜히 나 때문에 안정적인 삶을 떠나온 가족이 고생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난 새로운 공부를 하고 원하는 일을 위해 나아가는데 둘은 어색한 환경에서 괴롭힘 당하는 느낌이랄까. 초록에게 죄책감을 털어놓으면 눈이 커지며 손짓, 발짓을 동원해 나를 달랬지. 초반의 우왕좌왕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당신이 꿈을 꾸며 달려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옆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며 성장하고 있다고. 특히 남편 초록은 가족 중에서 현실이란 땅에 제일 가깝게 붙어있는 사람이라 어떤 일이 벌어져도 차근차근 가능한 해결안을 찾아 조금씩 해나갔어. 하늘 높이 날아가려는 나와 조화를 이룬다고 해야 할까. 그의 격려는 동동 뜨던 날 차분하게 만들었지.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고들 하지. 맞아. 언제나 푸른 이곳의 하늘과 다르게 나의 발걸음은 마냥 밝진 못했어. 어둡고 축 처지기도 하고 때론 늪처럼 쑥 빠져 꺼내느라 혼나기도 하고. 하지만 다르게 보면 이런 완벽한 조건도 없었어. 완전히 날 믿어주고 지지하는 어느 때보다 강력한 지원군을 갖춘. 내가 추구하는 내일에 의심을 품거나 의문을 던지는 주변은 없었어. 오직 응원과 애정을 다해 사랑으로 감싸주는 가족만 있었지. 여행과 생활의 차이를 극복하듯 이상과 현실의 틈도 천천히 메꿔갔어. 무한한 가족의 신뢰 덕분에 얻은 충만한 기운으로. 무엇보다도 지쳐 쓰러질 이유가 없었어. 내가 하고 싶어 결정한 나의 선택이니까. 든든한 믿음 속에서 난 허리를 세워 바로 설 수 있었어. 무척 당당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