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혼란

<초록의 사정>

by 초록Joon

선택할 고민 없이 편하게 받아먹던 식판을 과감히 집어던지고 온 새로운 환경에서 부딪힌 건 의외의 녀석이었어. 낯선 음식도, 못 알아듣는 외국어도, 뒤바뀐 도로 방향도 아니었지. 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를 향한 의문이 명치를 세차게 두드렸어. '나는 누구인가?' 그동안 회사원 아무개로 살면서 누구냐고 물으면 명함을 건네며 대답을 대신했지. 아무도 다시 묻지 않았어. 이런 거 말고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파고드는 사람은 없었거든. 유일한 포장지를 벗겨내고 보니 나를 소개할 말이 사라졌어. 아웃사이더로 편히 지내보겠다고 아무리 피해 다녀도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인연은 늘어만 갔는데, 만나서 입을 떼면 날 그려낼 표현이 부족했어. 어느 직장 다니는 누구라고 답하지 못하게 되자 어떤 말도 손에 잡히지 않았지. 뒤늦은 자아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 거야. 냉정하게 현재의 나를 바라볼 필요가 있었어.


무엇을 하고 사는지 차근차근 살펴봤어. 눈을 떴다 다시 눈을 감을 때까지 한 게 없었어. 정확히는 날 위해 한 일이 없었지. 기상과 함께 온전히 내 하루는 아이의 것이 되었으니까. 한 사람의 생활을 돌아가게 만드는 활동은 보통 일이 아니었어. 대단한 걸 하는 게 아닌데도 대단히 다른 걸 생각할 틈이 없었지. 함께 일어나 아이를 씻기고 밥 먹이고 옷 갈아입히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옷가지를 개고 같이 놀고 다시 밥 먹이고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함께 자고. 너무 똑같아서 조금의 변화도 알아채기 어려운 일상. 변하는 건 날짜와 계절뿐이었어. 아, 깎지 못해 길어지는 수염과 손발톱도. 이따금 기운이 조금 남아 아이보다 늦게 잠드는 밤이면 그제야 제쳐 둔 질문이 찾아왔어. '오늘 나 뭐 했지?'


어쩌면 완벽한 주 양육자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어쩐지 그게 나라고는 인정하기 어려웠어. 물론 아이의 성장을 온몸으로 느끼는 기쁨은 굉장했지. 어제와 다른 오늘을 눈앞에서 계속 볼 수 있는 건 축복이 맞았고. 엄마보다 아빠를 점점 더 찾는 광경은 어떤 절경 못지않았거든. 비워 두었던 내 자리를 찾아간다는 보람은 자주 날 쓰다듬었어. 그런데도 차면 빈다는 세상의 진리처럼 한쪽이 채워지면서 다른 쪽이 비는 게 느껴졌지. 나로만 가득 찼던 지난날과는 판도가 달라진 전업 아빠의 삶이 어딘가 공허한 거야. 직장인이라는 옷을 벗고 나니 어떤 옷도 어색했던 걸까. 집에서 아이를 본다고 말하면 변하는 상대의 표정에 당황해서 사실은 일을 하다가 쉬고 있는 거라며 구질구질하게 말이 길어지곤 했어. 어차피 당장 내 모습은 영락없는 하우스허즈밴드가 맞는데도.


타지에서 겪은 최고난도 문제를 해결할 때도 나의 정체가 걸고넘어졌지. 살려면 지낼 곳이 있어야 하는데, 돈이 있어도 집을 빌리려면 신분이 확실해야 하더라고. 돈만 있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계약을 할 수 있는 고향과 달랐어. 한국에서야 맞벌이 부부였지, 여기선 그저 대학생과 백수 커플인 거야. 심지어 애도 딸린. 배경과 과거 이력을 중요한 자격 요건으로 보는 집주인들 앞에선 매력 없는 세입자였던 모양이야. 거의 두 달을 헤맸어. 안 가본 지역도, 들어가 보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로 어지간한 곳은 다 돌아다녔지. 잠이 든 아이를 둘러업고 집을 보러 가서 부동산 업자에게 지원 서류를 제출하며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면서 자주 생각했어. 만약 내가 기존처럼 누구나 아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면 이런 고생을 했을까.


바뀌지 않는 신분 탓을 하며 잠잘 곳을 구하느라 방황하면서 호주의 거주 체계에 관해 알게 된 것도 많아. 전세 제도가 없으며 매주 돈을 내는 렌트 방식이야. 계약기간은 최대 1년이고, 이마저도 3개월 살아보고 나서 검증되면 연장해 주기도 해. 집을 보기 위해서는 사전 예약이 필수야. 지나가다 들러서 '집 좀 봅시다' 할 수 없어. 물건 확인도 계약도 모두 중개인을 통해서 진행돼. 집주인은 만날 일이 없지. 대신 복비, 즉 부동산중개료는 소유자가 모두 부담하고. 황당하고 까다로웠던 건 바로 경쟁방식이라는 점. 선착순 거래가 아니고, 신청받아서 집주인이 골라. 그러다 보니 서류 작성이 확실해야 하고, 적어내는 참고인에게 직접 연락해서 믿을 만한 사람인지 확인까지 해. 내 돈 내고 내가 세 들어 사는 건데 무슨 오디션 보는 줄 알았어. 최고로 기막힌 사항은 정기 중간 점검이야. 3~4개월마다 집 상태가 괜찮은지 중개인이 방문해서 사진 찍고 보고서를 작성해. 여기까지 읽고 다 놀라 도망가지 않았나 모르겠네.


결국에는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걸 총동원했어. 쉬고 있는 회사의 재직 증명서와 자산 증명 자료를 제출했어. 청구될 주세를 어떻게 낼 건지 자금계획까지 알려 줬지. 딱 한 군데가 우릴 받아줬어. 지금까지 살고 있는 집이기도 해. 드디어 제대로 새 출발을 할 수 있다는 기쁨에 벅차오르더라고. 살림 담당자로서 새 터전에 필요한 준비도 여기저기 부딪혀 가며 해나갔어. 물이 나오게 하고, 가스를 쓸 수 있게 만들고, 전기가 흐르게 하고. 잠자리와 앉을자리를 마련하고 먹거리와 입을 거리를 저장 관리할 장치도 구했지. 공간을 정리하자 곁에 있는 아이에게 눈길이 돌아갔어. 한창 배움이 필요한 어린이를 계속 끼고 지낼 순 없었지. 가끔 떨어져 보낼 가까운 유치원에 등록했어. 대부분의 큰일이 마무리될 즈음 한숨을 놓으며 고요한 허탈을 맞이했지.


당장 하는 일이 지금의 자신을 정의한다고 하지. 아이를 돌보며 가정과 집안을 관리하는 생활은 바쁘지만 분명 편안했어. 꼭 일터에 출근해서, 보기 싫은 사람과 만나고,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던 예전 일상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지. 굳이 표현하자면 하루하루가 온전히 나와 가족에 집중하는 생일 같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춘기에도 겪지 않았던 나라는 존재의 궁금증은 끊이지 않았어. 남과 구별되는 내가 가지는 나만의 개별성과 독특성은 무엇인가. 전에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껍데기에 숨어 고민을 잊고 살았는데, 발가벗겨지자 두 손으론 가릴 부위가 너무 많아 헛헛하고 허전했어. 맨살로 바람을 맞으며 차가운 상념에 빠지는 날이 늘어났지.


깜깜한 밤에 쓰레기를 버리러 밖으로 나오는 길에 하늘을 보곤 했어. 넓고 깊은 밤하늘은 거대했지. 조금만 집중하면 커다란 우주에 혼자 남은 기분을 느낄 만큼 완벽한 어둠과 별빛의 조화. 종종 그 안에 빠지면서 깨달았어. 내가 누구인가 싶은 혼돈의 상황은 단순히 아빠나 주부로 정의되는 바람에 벌어진 게 아니라는 걸. 당장 입은 옷이 까슬거리고 불편해서 싫은 게 아니었어. 오히려 저 텅 빈 광야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내던져진 걸 두려워하고 있었지. 단 하나의 점과 선도 없이 모든 게 내 마음대로라는 가능성의 범람 앞에 압도된 거야. 눈 옆을 가린 채 짜인 길을 따라 달려오던 경주마의 눈가리개가 벗겨지자 나설 방향을 잃은 것처럼. 그렇게 낯선 땅에서 백지에 던져지며 또 다른 삶이 펼쳐졌어. 스스로 골라야 하는 무한한 선택 더미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