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이라도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보자

<초록의 사정>

by 초록Joon

식판 밥을 좋아해. 이미 메뉴가 정해져 있어서 편안하거든.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농담 같은 고백으로 써먹는 자기소개야. 스스로 고민해서 고르기보단 타인의 결정을 따르길 선호하지. 아주 오래 그렇게 살았고 지금도 자주 그래. 식당에 들어서면 수많은 선택지에 압도되어 가까스로 세트 1번이라고 주문하는 게 나야. 상황이 벌어지면 설명서를 찾지. 미리 갖춰진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따라가려는 본능에 충실하려고. 짜인 규칙이나 주어진 예시가 없으면 안절부절 난리가 나. 괜히 따라 할 사람이 없나 주변을 둘러보며 정작 눈앞의 광경은 최대한 외면해. 누군가 와서 원래 정해진 방법을 알려주기 전까진 먼저 찾으려 하지 않지. 자신만의 길을 찾으란 조언을 견디지 못할 폭력으로 느껴왔어. 말 잘 듣는 바른생활 친구는 철저하게 사회적 통념에 맞춰 살아왔지. 한국인 No. 49265935를 한 번 만나 볼까?


스무 살이 되기 전 학창 시절은 깨끗, 그 자체야. 10년 동안 학교에 제시간에 입장해서 보내주면 돌아왔지. 기억이 옳다면 지각도 결석도 땡땡이도 없었어. 아, 국가대표 축구 경기 보러 야자 빼먹고 분식집에 다녀온 적이 딱 한 번 있었지. 호되게 혼나곤 다신 엄두를 안 냈어. 지금도 회자되는 유일무이한 나들이였으니 말 다 했지. 이탈은커녕 일탈도 없었어. 삼탈은 말할 것도 없고. 자유로운 대학생이 되어서도 별로 바뀌지 않았어. 누군 놀 때까지 놀다가 수업도 시험도 빠지며 학사경고와 함께 자유를 즐겼다는데 난 배짱이 없었지. 같이 밤새 어울려도 시험 범위를 한 번은 읽고 가야 마음이 놓였어. 시험 전날 노래방에서 전공책을 펴고 있었다면 믿으려나. 친구 부를 차례가 되거나 내 차례에 간주 점프를 누르면서 페이지를 넘겼어. 덕분에 흔한 재수강 한번 없이 졸업했지. 학점이 좋았던 건 아니고 단지 B 언저리에 머물기 위해 애를 썼어. 그래야 평범하게 보인다고 믿고. 튀는 게 무서웠고 주변과 다를 자신이 부족했어. 손으로 훑으면 걸리는 거 없이 무난해지려고 살아왔지. 원 오브 뎀이 되면 무척 좋아했다고나 할까.


내 것 없이 살아온 취업준비생은 직장을 얻어도 변하지 않았어. 신입사원에게 통통 튀는 아이디어를 원할 때마다 어찌나 곤욕스러웠는지 몰라. 틀 밖에서 생각해 본 적 없는 내게 그동안 존재하지 않은 무언가를 내놓으라니 참. 몇 번 시도하다가 얘는 아니다 싶었는지 회사는 곧 포기했어. 말똥말똥 멀쩡하게 눈은 뜨고 있지만 새로운 걸 떠올리지 못하자 기대를 접은 거지. 대신 시키는 일은 잘했어. 언제까지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하면 그대로 지켜서 해냈어. 그제야 쓸모가 있었는지 약속된 업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부여받았지.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저런 예외적인 업무를 우연히 맡기도 했지만, 큰 틀을 벗어나진 못했어. 삼십 년 가까이 정형화된 삶을 걸어왔기에 그럴듯한 변화는 무리였지. 고기 맛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창조 경험이 전무한 나와 창의적인 활동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어. 무미건조하게 터벅터벅 걸으며 지낸 거야. 고민도 선택도 없이 따분하게.


지루한 인생의 대표 주자인 내가 유일하게 들떠서 안 하던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연애. 마음에 드는 이성이 생기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면 돌파야.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보는 놀라운 기발함과 추진력을 보이지. 여기에 힘쓰느라 다른 쪽엔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네. 아내 파랑은 어디서든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친구였어. 그런 사람 있잖아. 똑같은 걸 해도 개성 넘치고 있어 보이는 인물. 다재다능하고 재기발랄한 그녀에게 푹 빠져서 마구 들이댔어. 빛없는 돌멩이가 눈부신 보석에게 끌리듯 말이야. 진심과 정성이 통했다고 밖에 설명이 안 되는 우리의 결혼 생활이 시작됐지. 해맑게 날아다니는 그녀는 답답하고 꽉 막힌 일상을 선호하는 남편에게 따뜻하게 권하곤 했어. 당신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여행이든 공부든 뭐든 하라고. 회사를 그만두고 당장 돈벌이가 없어도 괜찮다고. 뛰어난 겁쟁이이자 신실한 경로 지킴이는 사랑을 담은 응원을 받을 깜냥이 못 되었어. 회사의 불합리에 점점 속이 타들어 가도 끝끝내 삭이고 다시 돌아갔지. 벗어날 시도를 하지 못한 건 당연했어. 나와서 무엇을 할지 정해주는 이가 없었으니까. 내가 가진 인생의 지도에는 다음 단계에 정년퇴직이라고만 적혀있었거든.


가까운 파랑의 주기적인 두리번거림과 일탈 도전이 영향을 준 걸까. 언젠가부터 계속 이러고 살 순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어. 지나온 티 없이 반듯한 직선이 마냥 곱게 보이지 않았거든. 지금까지처럼 매끄러운 표면으로 앞날의 도로를 포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지. 저 수많은 타인과 빈틈없이 같아지는 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냐는 의문이 찾아왔어. 문득 날 가만히 들여다보았지. 분명히 나는 나이며 그들과는 다른 존재인데, 뭐 하나 내 것이라고 할만한 게 없구나. 부족한 것 없이 배부른 채 오래 지내온 탓인지 갑자기 속 빈 껍데기 같은 인생에 급하게 체해 버렸어. 직접 고른 음식을 양껏 먹지 않고, 남이 먹어야 한다는 걸 속사정 무시하고 꾸역꾸역 먹어댔으니 급기야 탈이 난 거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배 속에 딱딱하게 남아 답답해질 수밖에. 꽉 막힌 가슴을 부여잡고 구역질을 해댔어. 토해내야 했거든. 이제는 원치 않는 타인의 찌꺼기를 모조리.


깨끗이 비워낸 후 글썽이며 벌게진 눈으로 다시 나를 살폈어. 10년을 붙잡혀 있던 대기업 덕에 먹고살긴 좋았어. 앞으로도 붙어만 있으면 그럴 테고. 흔히 말하는 안정적인 삶을 가지고 있던 셈이지. 다만 재미도 보람도 성취도 없었어. 매달 25일 거르지 않고 통장에 숫자가 찍히도록 매일 무표정 연극을 하고 있었지. 하는 일에 아무 감정을 담지 않은 채로. 회사와 난 앞으로 함께 갈 수 없는 동반자가 확실해 보였어. 어쩌면 시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대안이 없어 억지로 손을 잡고 있던 건지도. 가까스로 내가 파악되자 가족이 보였지. 밝기만 하던 파랑은 몸과 마음이 무너지고 있었어. 어두운 직장의 더러움이 방어벽을 넘고 만 거지. 예상치 못한 건강의 불안 앞에 삶을 재정비하는 중이었어. 남은 건 우리 둘만 바라보는 맑은 아이. 몇 년 뒤면 학교에 가는 녀석의 미래가 선명하게 그려졌어. 끝없는 압박과 비교 속에 입시 경쟁을 치를 안쓰러운 또 하나의 청소년의 얼굴에 아들이 겹쳤지. 겨우 살아남아 목적지에 도달한다 해도 밝을 턱이 없었어. 잘해 봤자 지금 우리 모습처럼 오래지 않아 잘못 살고 있다는 절망에 빠질 거라서. 나와 우리 가족에겐 변화가 필요했어. 절박하게.


파랑에겐 그녀의 고민을 맡기고, 난 나의 고민을 시작했지. 주제는 같았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막막하더군. 어두운 곳에 불빛 없이 혼자 서있는 기분이랄까. 방향도 목적지도 모른 채 눈 감고 더듬거리려니 두려웠어. 못마땅하고 지겨워도 남들 따라가기 편한 평범의 세상으로 돌아가야 하나 흔들리며 자주 약해졌지. 그대로 돌아가긴 창피해서 스스로 하나씩 천천히 물어봤어. 무엇을 하고 싶으며 어떤 걸 하기 싫은지. 또 해야만 하는 일은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인생 고민을 치열하게 파고들었지. 그전엔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 향해서.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물꼬를 트자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나왔어. 그때 정리해 놓은 노트를 요즘도 가끔 찾아가는데, 볼 때마다 개운해져. 내가 쏙 들어있거든. 이곳에 모두 가져올 수 없는 콸콸 넘치는 생각을 간신히 요약하자면 이런 거야. '남이 시키는 일을 억지로 하며 살지 말자. 배우거나 해보고 싶은 건 바로 하자.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아 보자. 주변 의식하며 낭비하지 말자.' 세상에 깔린 자기계발서에 흔히 등장하는 문구지만 내겐 직접 뽑아낸 거라 의미가 남달랐어. 더 확 줄이면 '남 신경 쓰지 말고 나로 살자' 정도겠네. 남으로 가득 찼던 날 비워내고 나로 채울 각오를 단단히 했지. 나답지 않게 말이야.


이제부터 나로 살겠다고 다짐하고 나자, 결혼 후 획득한 어정쩡한 사회적 역할 하나가 마음에 걸렸어. 한 아이의 아빠라는 무거운 자리인데, 여태까진 대부분의 맞벌이 가정처럼 워킹맘 아내에게 맡기고 돈으로 해결했지. 진정한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시간과 정성을 좀처럼 내놓지 못해 왔어. 나와 무관한 바깥을 몽땅 잘라내고 보니 품 안의 아이만 남은 거야. 더 늦기 전에 내 손으로 기르며 단단한 유대를 맺고 싶었어. 옆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끈끈하게 이어지는 모습으로. 돈만 던져주고 어떤 생각과 고민으로 커가는지 모른 채 소원해지긴 싫었거든. 또한 인생의 선배로서 나처럼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아본 적도 없는 바보로 키우진 말아야겠다는 결심도 했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것저것 해보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지.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자신이 없었어. 좋은 대학만을 위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지옥 같은 분위기를 핑계 대고 싶지만, 진짜 원인은 나였지. 이래 봬도 심지가 굳지 못하고 가벼운 팔랑귀라서 주변에 휘둘리기 선수거든. 가족과 지인이 '그렇게 키우면 나중에 원망받아요'라고 던지면 정말 그런가 싶어 아이를 들들 볶을 게 뻔했지. 그들과 떨어진 먼 곳으로 떠나야 했어. 그리하여 해외에서 아이 곁에 머물며 자유롭고 밝게 키우기 위한 주 양육자가 되기로 결심했지. 아빠육아휴직을 내는 방법으로.


멋모르고 달려오던 길에서 잠시 멈추고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갖기로 했어. 나와 아이, 아내 모두를 위해. 올지 모를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미루어 둔 오늘의 행복을 찾아온 셈이지. 지금을 살며 서로의 얼굴을 보려면 그래야 했어. 저 먼 앞만 보느라 따로 바라본 적이 없었으니. 개인의 성장과 가족의 완성까지, 이토록 근사한 이상은 현실과는 아직 거리가 멀었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언제 할 건 지를 정하는 건 끝이 없었지. 결정하고 처리해야 할 일 리스트는 줄줄이 이어졌어. 여전히 취향이 무색무취한 나와 달리 기호가 확실한 파랑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사안을 부러뜨려 나갔지. 떠날 곳을 정하고 사전 답사를 다녀온 뒤 마음을 굳혔어. 여기라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겠다고. 그럼에도 살던 곳을 정리하고 나서는 건 쉬운 게 아니었어. 파랑에게 벌어진 기적 덕분에 예상보다 빨라진 일정에 맞추느라 마음은 바빠져만 갔지. 속해있던 단체와 헤어지거나 멀어지고, 지니고 있던 짐을 주거나 맡기거나 버리면서 온전히 우리만 남는 과정을 거쳤어. 많이도 이고 살았구나 싶으면서 홀가분한 기분이 나쁘지 않더라고.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커다란 일은 사람과의 작별이었지. 꼭 붙어 부대끼며 살진 않았지만, 같은 하늘 아래 있어 언제든 볼 수 있던 이들.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는 것과 그렇지 않다는 건 어쩐지 커다란 아쉬움을 남겼지. 어떤 식으로든 맺어져 있던 관계 속에 나의 결정을 알렸어. 각각의 놀라움, 걱정, 호기심으로 다양한 표정을 지었지. 가장 인상 깊었던 반응은 오래된 친구 모임에서 나왔어. 이야기를 꺼내자 하나같이 똑같은 고민을 했었노라고 털어놓았어. 나보다도 먼저 알아봤고, 시기를 고민하다 어떠한 이유로 미루거나 포기했다는 각자의 사정들. 한 친구가 부러움 섞인 응원을 보냈어. 비슷한 상황과 조건 속에서 과감하게 행동에 옮긴 건 너뿐이라며 원하는 삶을 찾기를 바란다고. 혹시 모를 미련과 불안으로 퇴사도 하지 못하고 미지근하게 겨우 휴직을 한 내겐 과한 찬사였지. 아니다 싶으면 언제라도 돌아올 안전장치를 버릴 용기는 없었거든. 돌아갈 배를 죄다 태우는 식의 배수진은 소심한 나와 어울리지 않아. 어쨌든 식판 밥 마니아로서는 큰 결심을 한 거야. 알아서 나오는 밥을 포기하고 직접 찾아 먹는 길을 택했으니. 어릴 적 입맛은 평생 간다던데 새로운 식성을 발견할 수 있으려나. 그때부터 경기도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홍 과장 이야기는 제목을 바꿨어. 호주 시골 월세에 회사 쉬면서 애 보는 홍 아빠 이야기로. 미지의 세상으로 구미를 당길 만한 음식을 만나길 바라며 떠났어. 안 먹던 걸 먹다 보면 잊고 있던 소울푸드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