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의 초등학생이 되는 기분

<노랑의 사정>

by 초록Joon

전날까지 들어가던 학교의 문이 어느 날 갑자기 닫혔어. 이제부터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날 수 없다고 했지. 슬슬 얼굴을 익혀가며 친해지고 있었는데 볼 수 없다고 하니 아쉬웠어. 오늘은 지난번에 하던 술래잡기를 이어서 하기로 했었는데, 참. 갑자기 나타난 나쁜 병 때문이래. 사람에게 붙어서 이리저리 옮겨 다녀서 아예 만나지 못하게 한 거래. 늘 가까이 붙어서 노는 우리가 서로 위험할 수 있다고 부모님이 설명해 줬어. 그렇다고 아주 얼굴을 못 보게 된 건 아니었어. 가끔 아빠 컴퓨터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났지. 입던 교복을 벗고, 교실이 아닌 각자의 집을 배경으로 화면에 나타났어. 안 보다 보니 괜히 더 반갑더라고. 선생님과 아빠랑 엄마가 전화하는 것도 옆에서 들었어. 선생님을 향한 마음을 그림으로 그려서 사진으로 선물하기도 했지. 점점 학교에 가지 않는 게 익숙해질 무렵 교문이 다시 열렸어.


학교에 갈 수 있었지만 난 가기 어려웠어. 더 이상 아빠나 엄마와 교실까지 함께 걸어갈 수 없었거든. 학교 문 앞에서 헤어져야 하는 게 새로운 규칙이라나. 혼자서 가방을 메고 멀고 먼 우리 반으로 걸어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거야. 나처럼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해 교문에서 선생님이 어려운 헤어짐을 도와줬어. 할 수 있다고 응원하면서 내 손을 잡고 교실까지 같이 가줬거든. 커다란 마스크로 눈만 빼고 얼굴을 가린 선생님들 말고는 전과 다 똑같았어. 아, 하나가 더 달랐다. 기침을 하거나 열이 있으면 바로 집에 가야 했지. 친구들도 번갈아 가며 학교를 빠졌고, 선생님도 종종 오지 않았어. 못 와서 빈자리가 생기면 앉아있던 사람이 궁금하고 보고 싶었어. 나중에 이름을 알게 된 코로나라는 작은 바이러스가 이렇게 만든 거래. 내 초등학교 생활은 이 녀석과 함께 시작된 거야.


좀 특이한 출발을 했지만, 학교는 즐거운 곳이었어. 간단히 내 시간표를 말해볼게. 아침에 도착해서 과일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눠.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하거나 퀴즈를 맞히기도 하지. 우리 교실에서 조금 배우다 보면 곧 첫 번째 쉬는 시간이 돼. 신나게 놀다가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떨지. 다음엔 다른 교실로 가서 미술이나 음악, 체육 같은 활동을 해. 그러고는 다시 두 번째 쉬는 시간. 또 친구들과 즐기다가 간식을 먹지. 다시 교실로 돌아와서 정리하면 종이 울려. 집에 갈 시간이야. 해가 높게 떠서 제일 더울 때지. 부모님이 못 데리러 오는 친구는 돌봄교실로 가기도 해. 난 언제나 약속한 장소에서 아빠가 환하게 기다리고 있으니 곧장 달려 나가. 꼭 오늘은 어떻게 지냈고 무엇을 배웠냐고 묻는데, 잠깐 고민하다가 재밌게 놀았다고 답하곤 해. 웃는 내 얼굴을 보고는 우린 같이 웃으며 학교를 떠나.


주인공이 되는 특별한 일도 자주 벌어졌어. 일주일에 한 번, 반에서 스타 스튜던트(Star Student) 한 명을 뽑아. 이번 주에는 누가 될지 모두 기대하지.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면서 뽑힌 이유를 알려줘. 안전하게 지냈다든지, 생각이 깊다든지, 열심히 배웠다든지, 맡은 일을 잘했다든지. 자기 이름이 불리면 깜짝 놀라며 기뻐해. 지금까지 지켜보니 한 번 되면 또 되는 건 아닌 것 같아. 일주일 뒤에는 다음 친구에게 망토를 줘야 하거든. 무슨 망토냐고? 아, 말을 안 했구나. 스타 스튜던트의 상징인 멋진 망토를 두를 수 있어. 수요일 오후에 학교 전체가 강당에 모이는데, 그때 각 반의 스타 스튜던트가 망토를 휘날리면서 무대에 모여.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나도 되어 봤으니까! 좀 더 자랑해도 되나? 한 번은 반 대표로 교장 선생님과 차를 마신 적도 있어. 조금 더 근사한 'Morning Tea With The Stars'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고 성실한 학생이라서 뽑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어. 정확히 어떤 말인지 몰랐지만, 기분은 참 좋았어. 특별해지는 순간의 두근거림이 굉장하거든.


근데 살아보니 항상 기쁘고 신날 수는 없는 거더라고.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실수가 있어. 친하게 놀던 친구의 팔을 물었거든. 물론 일부러 아프게 하려고 한 건 절대 아니었어. 공중에 떠 있는 상상의 비눗방울을 입으로 물어 터트리는 놀이를 하고 있었을 뿐이야. 하필 무는 곳에 친구의 팔이 있어서 멈추지 못하고 '왕'하고 물어버렸지. 친구가 울었고, 선생님이 다가와 어떻게 된 건지 물었어. 나도 많이 놀랐지만, 최대한 솔직하게 대답했지. 그날 학교 마치고 아빠와 선생님은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어. 웃음이 사라진 아빠의 얼굴을 보며 불안했어. 아직 제대로 혼난 적이 없었는데 이게 처음이 되려나 싶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빠에게 괜찮다는 말을 들었어. 학교는 배우는 곳이니 앞으로 그러지 않으면 된다고. 주변이 위험할 수 있는 놀이는 집에서 하겠다고 약속했지. 친구에겐 정성 들여 그린 사과의 그림 편지를 선물했어. 흔쾌히 받아준 그 친구와는 아직도 사이좋게 잘 지내. 못된 마음이 없었다는 걸 알아준 덕이야. 진심은 통한다고 어디서 들었던 것 같은데 이게 그건가 봐.


한 학년을 마치는 해의 마지막이 되자 불안해졌어. 수줍고 낯가리는 내가 아주 오래 걸려서 친해진 정든 선생님이랑 친구들과 헤어질 때가 되었다고 들었거든. 해가 바뀌면 다시 새 반에서 다른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을 만난다네. 믿을 수가 없었어. 이해도 되지 않고. 왜 그대로 똑같이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면 안 되는 걸까. 이렇게 서로 편하고 좋은데. 답답한 마음에 아빠를 붙들고 이유를 물었어. 학교에서는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거래. 그래서 자꾸 사람도 장소도 바뀌면서 그 안에서 적응하는 연습을 하는 거라고. 나중에 학교를 떠나 크고 낯선 세상에 나올 때를 위해서. 전부 다 끄덕일 순 없어서 쭈뼛거리는 나에게 아빠가 놀라운 소식을 전해줬어. 걱정을 놓을 수 없는 날 충분히 안심시킬 수 있는 이야기였지. 다음 학년에 같은 반이 되고 싶은 친구 5명의 이름을 적어내면 그 중 최소 1명은 꼭 만날 수 있대! 나중에 새 학년 되어 새 교실로 찾아가니 정말로 그 친구들이 있었어. 이제 학년 올라가는 건 문제도 아니야.


아기로만 지내다 어엿한 학생이 되면서 생긴 게 있어. 떨어져 있는 엄마와 아빠를 떠올리는 버릇이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갈 때는 나 혼자 지내기 바빠서 그럴 일이 없었거든. 우리 세 가족이 새로운 곳에서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는 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두 분이 열심히 일한 덕분이래. 그때 벌어둔 돈으로 여기서 부족함 없이 생활하고 있다고 했어. 아빠는 나를 돌보고, 엄마는 공부를 하고, 나는 배우고 자라고. 잘은 모르지만 오랫동안 두 분이 고생 많았을 거야. 괜히 같은 학생이라서 엄마가 대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있으면 더 생각이 나더라. 어느 날 오후였나,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아빠와 마주 앉아 간식을 먹으며 쉬고 있는데 느닷없이 비가 세차게 내리는 거야. 나도 모르게 말했지. "엄마가 잘 있었으면 좋겠다." 내 마음을 알아챈 아빠는 나랑 같이 엄마에게 힘내라는 응원 인사를 적어서 보냈어. 엄마와 멀어진 상황을 이해하지만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나 봐.


날 키우는 아빠가 부족해서 그런 건 아냐. 이따금 말이 길어져서 잔소리가 1절을 넘어 2절로 이어질 때는 좀 힘들긴 하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나와 붙어있는 아빠가 대단하다는 걸 알아. 하나부터 열까지 날 모두 챙겨주느라 정말 바쁘거든. 한 번은 선생님께 집에 홀로 있을 아빠가 슬플까 봐 걱정된다고 말씀드렸어. 나랑 엄마랑 모두 학교에 가면 아빠는 혼자 밥을 먹을 거 아냐. 언젠가 등교하기 전에 또 생각이 나서 아빠에게 내 인형 친구 몇 명을 안겨주고 왔어. 외롭지 말라고. 고맙다고 웃는 아빠는 오히려 내가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어. 집 마당이나 베란다에 앉은 잠자리를 만나면 "우리 아들 잘 지내는지 보고 와 줄래?"라고 한다네. 며칠 뒤, 거짓말처럼 학교에서 빨간 잠자리가 내 손등에 앉았어. 아빠가 보낸 게 분명했지. 잘 지내고 있다고 아빠에게 전해 달라며 속삭여서 다시 날려 보냈어. 떨어져 있지만 우린 단단히 이어져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