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사정>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거대한 질문은 덩치가 커서 그런지 굴러가지 못하고, 금세 고민의 선두 자리를 빼앗겼어. 바쁘고 새로운 일상이 팽팽 돌아가는 바람에 말이야. 전날 밤에 세상이 끝날 듯한 실연을 겪어도, 다음 날이면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게 인간의 삶 아니겠어?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잠자고. 낯선 나라의 생활은 경험하지 못한 기막힌 상황을 자주 연출했지. 더 이상 놀라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잡은 마음을 비웃듯이 에피소드를 찍어댔어.
우린 타운 하우스(Town House)에 살고 있어. 2층 단독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단지를 이루고 있지. 아파트처럼 위아래로 붙어있진 않지만, 바로 옆에 가까이 이웃과 마주하고 있는 상태야. 층간소음만 조심하면 얼굴 볼 일 없는 한국과 다르게 옆집과 눈도 자주 마주치며 인사해. 생활의 반경이 겹치다 보니 이웃의 특성에 영향을 받지. 특히 조용한 적이 없던 노란 차 아저씨는 굉장했어. 개조한 자동차의 엔진소리도 존재감이 엄청났지만, 뒤에 끌고 다니던 모터보트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 어찌나 자주 웽웽 돌리며 세척을 하던지 차라리 고장 나길 바랐던 게 몇 번인지 몰라. 기계가 멈추면 사람이 울어댔어. 기본 목소리 데시벨이 커서 대화가 벽을 넘어 귀에 들어오기 충분했고, 거기에 더해 딸과 아빠가 흉포한 기침을 달고 살았는데 감기약을 가져다줘야 하는지 종종 걱정했어. 약을 챙기다가도 그 집에서 정체 모를 기분 나쁜 연기가 피어나오면 집어던지고 창문을 닫기 바빴지. 마당에서 도대체 무얼 태우는 건지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거든.
다행히 같이 살던 다른 가족과 안 좋게 헤어져서 떠났어. 나 같아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들과 함께 지내기 어려웠을 거야. 어느 날 짐을 싸고 있길래 반가움을 감추고 물으니, 이사를 간다는 거야. 얼굴로는 아쉬워하며 속으로는 더 빨리 나가도록 일손을 거들고 싶었지. 오른쪽 집이 해결되자 왼쪽 집에 문제가 생겼어. 시도 때도 없이 피우는 흡연가가 나타나서 한참 고생했지. 다음은 소처럼 울어대는 개가 사는 뒷집이 등장했고. 우리를 둘러싼 이웃집에서 돌아가면서 이벤트를 열어줬어. 말도 없이 우리 차고 앞에 주차해서 차를 빼지도 넣지도 못해 곤란하기도 했고, 마당 울타리 밑으로 숨어 들어온 강아지가 응가를 하고 도망가기도 했지. 최고의 기억은 한밤중 약에 취해 우리 집을 본인 집으로 착각해서 문을 열어달라고 외치던 이웃사촌이야. 자기 집인 양 바지를 벗고 마당에서 한참을 누운 채 시위하더라고. 결국 경찰을 부르자 급한 나머지 벗어둔 바지도 깜빡하고 도망쳤지. 덕분에 이제 어지간한 걸로는 놀라지도 않아.
근처에서 선사하는 경이로움 외에도 타지의 신기한 광경은 계속되었어. 다 늘어놓을 순 없으니, 뭐가 가장 좋을까. 그래! 당일 배송의 민족이 들으면 경악할 이야기를 해야겠군. 여기선 온라인 쇼핑으로 물건을 구입하면 금방 오지 않아. 언제쯤 오느냐. 바로, 잊을만할 때 도착하지. 주문한 사실이 기억 저편으로 가물가물 넘어가려 할 즈음 말이야. 땅덩어리가 워낙 크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 다만, 가뜩이나 늦는 와중에 집에 사람이 없다고 도로 가져가는 건 무슨 짓이냐고. 외출을 다녀오면 문 앞에 쪽지가 남겨져 있을까 봐 불안불안해. 부재중이라서 배송물을 가까운 우체국이나 보관소에 안전하게 맡겨두었다는 안내야. 부들부들 황당한 종이를 들고 차에 올라 10분을 달려 물건을 찾으러 가지. 이럴 줄 알았다면 인터넷으로 안 사고 진작에 직접 나가서 사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괴상한 곳에서 고통받지 말고 어서 도망치라고 외치지 않으려나 모르겠네. 기억에 남은 몇몇 사건을 늘어놓은 것뿐이야. 적응의 동물답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고. 분위기도 바꿀 겸 이곳의 내가 사랑하는 부분을 전해볼까. 밀도가 낮아서 참 좋아. 사람이든 차든 건물이든. 전에 살던 곳의 빽빽함이 없어서 여유롭지. 대자연 환경도 놀라워.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를 쉽게 접하니 편안해. 답답하다가도 눈을 돌려 구름과 물을 보면 곧 가라앉아. 하루가 일찍 시작되고 빨리 저무는 것도 매력이야. 해가 뜨면 활동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 저녁이 있는 삶을 굳이 외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가족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해. 남 눈치를 덜 보는 것도 신선해. 오기 전에 호주가 패션망국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었었는데, 정말 옷차림이 제각각이야. 남을 의식하지 않아야 가능한 상태랄까. 덕분에 괜히 비싼 옷 갖추지 않고 적당히 입고 살 수 있어서 감사해. 맨발과 벗은 웃통으로 다니는 사람 천국에선 나름 챙겨 입은 거라고.
급격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할수록 달라진 가족 관계를 더욱 실감했어. 바깥세상만큼이나 우리 사이도 변해갔거든. 먼저 아이와 꼭 붙어있게 된 아빠로서 비워두었던 틈을 채워갔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우리 둘은 깊어졌어. 매일 아들과 단둘이서 유치원과 학교에 오가는 길은 마법을 부렸어. 손을 꼭 잡고 서로에게 집중하는 순간은 상대를 향한 이해를 키웠지. 진심으로 응원하고 받는 사이가 된 걸 최소한 하루 2번은 느껴. 아침에 헤어지면서 전하는 뽀뽀로, 오후에 다시 만나며 나누는 포옹으로. 아이에게 힘을 주고, 때론 내가 힘을 얻는 관계로의 발전은 감격스러워. 할 일이 늘어서 바빠진 어느 날 아이가 굉장한 선물을 줬어. "아빠는 할 게 있어도, 나랑 먼저 잘 놀아줘!" 내심 우선순위를 놓치고 있진 않은지 노심초사하고 있었는데 한 방에 떨쳐줬어. 우리에겐 서로가 1순위 맞거든.
아이보다 훨씬 먼저 만났던 아내와는 상황이 좋지 않았어. 지내온 시간이 긴 만큼 다 알고 꽤 친해졌다고 여겼는데 이게 웬걸.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이 부딪히는 거야. 생각지도 않았고 예상치도 못하는 접점에서 계속. 왜 이렇게 사사건건 불협이 나는 건지 원인을 살폈지. 답은 쉽게 나왔어. 부부라고 하지만 이토록 많은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낸 적은 처음인 거야. 연애 시절에는 가끔 만나 뜨거운 사랑을 불태우느라, 신혼 기간에는 맞벌이하고 남는 시간에만 함께 노느라, 육아 초기에는 일 빼고 나면 번갈아 가며 애 보느라. 완벽히 다른 사람과 제대로 붙어서 살아본 적이 최초인 거지. 그동안 같이 있기만 했지 오래 얼굴 보며 대화하면서 알아가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던 거야. 끝난 줄만 알았던 결혼 초기의 강렬한 부부싸움을 이제 와 다시 겪었던 이유였어. 상황 파악이 이루어진 우리는 인정하고 천천히 나아갔어. 새로 만난 룸메이트와 기호와 취향을 하나씩 맞춰가듯이.
두 학생을 집 밖으로 내보내고 홀로 식탁에 앉아 밥을 먹다 보면 문득 그들이 떠올랐어. 세 가족이 각자의 자리에서 식사하는 모습이 묘하더라고. 가족이라 같은 집에 살면서 깊이 사랑하고 끈끈하게 지지하지만, 결국 각각의 삶은 따로 존재하니까. 아이와 아내의 치열한 하루를 응원할 수 있지만, 내가 그들의 수고를 조금도 직접 덜어줄 순 없잖아. 자기의 위치에서 스스로 바로 서는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며 걸어가야만 하지. 같이 살지만 따로 커가는 가족의 성장이 흐뭇해질 무렵, 미뤄둔 또 다른 관계의 질문이 고개를 들었어. 다름 아닌 나와의 관계.
내가 맺은 자신과의 관계도 변화했어. 전에는 외부의 인정으로 곧추서 있다 보니 내면의 나와 사이가 좋은 줄 알았어. 어딜 가도 당당했으며 자존감이 강렬했으니. 나만큼 나를 강하게 믿는 사람이 없다고 믿을 만큼. 흩어진 껍데기를 벗고 나자 약해빠진 나를 발견했어.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초라한 맨몸의 자아. 보잘것없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가족을 지탱하는 중심이라지만 가족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허무가 몰려왔지. 온몸에 힘이 사라지며 멍한 시간이 늘어갔어. 갑자기 우울이 찾아온 게 아마 그때였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