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과 부담의 적응

<파랑의 사정>

by 초록Joon

다른 곳에 산다는 건 말 그대로 다른 점이 많다는 거야. 당연한 모든 것들이 달라지지. 맞이하는 개인에 따라 좋기도 나쁘기도 편리하기도 귀찮기도 하지. 하루는 '우와!' 하며 기뻐 놀라지만, 다음날이면 '으잉?' 하며 풀썩 실망하지. 어린애도 아닌데 모든 게 완벽할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어. 다만 실제로 겪으면서 저절로 나오는 감탄사를 삼키기 어려워서 그래. 옆에 있는 남편 초록은 이런 투명한 반응에 조마조마하지. 긍정의 표현에는 역시 오길 잘했다는 표정으로 뿌듯해하다가도, 부정의 표출에는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머리를 긁적이지. 가치 판단이 빠진 순수한 느낌의 묘사를 온전히 받아들여달라고 여러 번 주문하는데도 안 되네.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사고방식의 선두 주자 초록은 어렵나 봐. 이쯤에서 달라진 생활의 발견을 한번 들여다볼래?


따뜻한 남쪽 나라로 온 첫 번째 이유, 바로 날씨. 이곳은 따뜻한 날이 많고 길어. 대강 일 년의 절반이 여름인데, 그렇다고 숨이 턱턱 막히고 습한 시기가 아니야. 타들어 갈 듯한 뜨거움을 넘지 않고 뽀송한 공기를 유지하지. 여름이 아닌 기간도 봄, 가을, 겨울로 구분하긴 하지만 크게 차이가 없어. 한겨울에도 한낮엔 20도를 넘어서는 쨍쨍함을 뽐내고, 해가 떨어져도 10도 밑으로 잘 안 떨어져. 추우면 생명의 위협을 받는 내겐 최적의 환경이야. 한 가지 깜빡한 건, 인간에게 살기 좋은 곳이면 다른 생명에게도 그렇다는 점. 대자연에 둘러싸인 새로운 삶의 터전에는 우리 말고도 여러 친구가 함께 살아. 길 가다가 자주 보는 캥거루, 코알라, 숲 칠면조, 주머니쥐는 이제 친숙해. 사실 더 자주 보는 녀석들은 따로 있는데 도저히 못 친해지겠더라. 난 발이 4개보다 많으면 질색하거든. 사방에서 온갖 벌레들을 마주치며 소스라치고, 유독 커다란 바퀴벌레는 아직도 질겁을 해. 한국에선 평생 한 번 볼까 말까였는데. 여기선 느낌이 싸하면 십중팔구 바선생을 만나. 무슨 선생이냐고? 이름도 부르기 싫어서 별명을 지어줬어. 어찌나 똑똑한지 도통 잡히질 않으니 높여 부르는 수밖에.


내 삶을 지탱하는 또 다른 축은 먹거리야. 살려고 먹지 않고, 먹으려고 산다면 감이 잡힐 거야. 완전히 달라진 식재료와 음식의 향연에 한동안 취해 지냈어.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풍경에 퐁당 들어가 어울리는 게 재밌더라고. 고향에서는 일부러 묻고 따져서 찾아가던 분위기 남다른 식당이 곳곳에 널려 있었지. 서구 사대주의에 물든 탓인 걸 인정하는 바야. 영어와 서양인이 어우러진 장소라면 일단 먹고 들어가는 느낌,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우선 커피가 맛있어. 그리고 저렴해. 싸고 맛 좋으면 끝난 거 아닐까. 대형 체인점에 가지 않아도 지역 카페 어디를 들러도 고유의 색깔을 드러내며 풍미를 자랑해. 다른 사랑은 호주산 소고기. 한국에서도 워낙 유명하니 말이 필요 없겠지. 현지에서는 더욱 싸고 신선하니 발길을 끊을 수가 없어. 하나 또 잊은 건, 쉽게 질리는 내 입맛이야. 가성비 좋은 비프 덩어리도 한없이 먹을 순 없었어. 물려버리고 난 뒤엔 다시 전통의 돼지 삼겹살로 돌아갔지. 그러고도 모자라서 한식으로 거슬러 올라갔고. 마땅한 한국 음식점이 없는 이곳에선 우리 집이 한식당이야. 못 하는 게 없는 파(랑)식당에서도 손 쓸 수 없는 건 한국에서 먹던 회. 흔하디 흔한 광어 반 우럭 반 한 접시가 떠올라 침을 삼키던 날이 참 많았어.


정작 가슴이 떨려서 사지는 못해도 여러 물건을 구경하고 요리조리 비교하는 걸 좋아해. 비싼 명품이라 그러는 게 아니야. 내 취향은 오히려 반대지. 낯선 나라의 동네 슈퍼에 풀어놓으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게 나라면 설명이 되려나. 우리나라 오일장처럼 여기도 주말이면 지역 시장(Local Market)이 들어서. 신기한 아이템을 둘러보며 관찰하는 게 낙이야. 곁들인 맛난 즉석 간식은 덤이고. 이곳 쇼핑의 최고 매력 포인트는 오프라인 중고가게야. 옵샵(OP Shop)이라고 부르는 데 이름처럼 기회(opportunity)의 공간이야. 쓰던 물건을 기부하면 깨끗이 정비해서 낮은 가격으로 판매해. 자선, 구호, 종교 단체에서 운영하고 수익금은 좋은 곳에 쓰이지. 직원도 자원봉사자가 많아. 무의미하게 버려져 쓰레기가 되지 않고 필요한 곳에 흘려보내는 아름다운 경로를 제공해. 따뜻한 기운 듬뿍 받으면서 신나게 구경하는 맛이 쏠쏠해. 어쩌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을 주고 챙겨 나오면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덕분에 우리 집을 채운 대부분의 물품이 세컨핸드(secondhand)야. 딱 하나의 가게가 마음에 안 드는데, 물건이 아닌 서비스를 파는 곳이야. 길게 말할 필요도 없어. 호주 현지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은 더 이상 가지 않아. 70년대 뽀글이 파마를 시전하고 자랑스러워하던 미용사의 웃음이 가득했던 악몽 같은 기억을 마지막으로.


삶이 달라진다는 건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적응해 나간다는 거야. 어떻게 전부 다 좋기만 하겠어. 밝고 순수한 아이가 들을까 봐 못 꺼내는 말이지만, 인생은 널려있는 고난 속에 종종 행복을 찾아 느끼는 여정 아니겠어? 지상은 천국이 아니잖아. 어딜 가도 장단점은 존재해. 지금의 상황이 나에게 좀 더 잘 맞기 때문에 만족하고 사는 거야. 이편의 불편함과 저편의 그것을 따져가며 더 나은 데 머무는 거지. 이마저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어 떠나지 못하고 주어진 대로 사는 게 대부분이니, 어려운 도전으로 얻은 새로운 선택지는 가치가 있지. 어쩌면 여태 늘어놓은 바깥의 변화는 차라리 쉬운 상대였어. 머리로 이해하고 판단해서 적절한 방법으로 극복하면 되니까. 반면 안쪽에 자리 잡아 날 끌어내리는 부담은 떨칠 수 없게 무거웠어. 차갑게 처리할 수 없는 감정의 문제였거든. 다름 아닌 가정을 이끄는 가장의 무게.


단순히 벌이를 도맡는 차원이 아니야. 여기선 초록과 나, 둘 다 본격적으로 일을 하지 않았고, 가끔 내가 일 나가는 것도 졸업 후 쓰일 취업 지원서에 한 줄 넣는 경력을 유지하기 위함이었거든. 그것보단 가족의 비자(VISA)를 책임지는 '주 신청자'로서 느끼는 부담이야. 저번에도 한 번 이야기했듯 비자는 다른 나라에 외국인이 살 수 있는 허가증이야. 우리는 내가 현지 대학생으로서 머물 수 있는 학생비자를 받아서 지내고 있었어. 졸업 후 보장된 기간이 만료되면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새로운 비자를 얻어야만 해. 새로운 곳에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거지. 온 가족이 이곳을 마음에 들어 할수록 내게 매달려 있는 주 신청자의 무게는 점점 묵직해졌어. 오로지 내가 어찌하느냐에 따라 함께 온 남편과 아이의 운명이 결정되는 사정은 날카롭게 품 안으로 파고들었지. 중압감을 버티려면 체력이 중요한데 힘을 기르기는커녕 안 망가지면 다행인 게 나야. 건강한 신체와는 애초에 거리가 멀었고, 귀중한 재산인 몸을 보전하기도 급급해서 곧잘 다쳤거든. 유일하게 신의 의도가 궁금한 순간이 나사를 하나 풀어놓은 내 몸뚱이를 확인할 때야. 이리도 쉽사리 놓치고 넘어지고 부딪히는지, 휴.


부상의 역사를 극히 일부만 공개할게. 자질구레하게 긁히고, 멍들고, 베이고, 삐고, 열나고, 머리 아프고, 구토하는 건 일상이니 빼고. 아직도 흔적이 남은 정도의 화상을 2번 겪었어. 평생 살면서가 아니라 몇 년 밖에 지내지 않은 타국에서만 말이야. 다 내가 저지른 거라 할 말이 없어. 정확히는 흐늘거리는 내 손이지만. 뜨거운 물이 담긴 병과 컵을 제대로 닫지 않은 채로 내 몸에 기울이고 말았어. 처음엔 허벅지에, 다음엔 손목에. 쏟은 순간 직감했지. 가볍게 데인 게 아니구나. 나름대로 간호 지식을 쌓고 있는 간호사 유망주였으니 판단은 적중했지.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을 굳이 실현한 거야. 오래 병원에 다니며 다른 간호사에게 치료받았어. 조금 불편할 뿐이라 생활의 지장은 없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만약 더 크게 다쳐서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면. 웃으면서 좋은 꿈 잘 꿨다며 짧은 시도를 빠르게 정리하고 돌아갔을까. 넓은 땅덩어리에 사느라 때때로 운전 중에 졸음과 만나는데 그때마다 같은 이유로 아찔해지곤 해. 자신이 다칠 걸 걱정하는 게 아닌, 딸린 식구의 무너진 미래가 먼저 떠오르는 걸 보니 홀로 사로잡힌 부담감이 상당했나 봐. 운동과 담을 쌓았던 내가 살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으니 말 다 했지.


짓누르는 건 육체를 향한 육중함만이 아니었어. 끊임없이 날 증명해야 했어. 검증되지 않은 외국인인 내가 이곳에 당당히 머물려면 가치 있는 인재임을 보여줘야 하거든. 이민 정책이라는 게 어찌 보면 아주 간단해. 이 나라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을 선별해서 권리를 주는 거야. 쓸모 있는 인력인지 확인시켜 줘야 한다고. 그것도 '내가 이런 것도 잘합니다!' 같은 장기 자랑이 아닌, 정부가 원하는 틀에 꼭 맞춰서. 최우선 과제는 역시 현지 언어의 능통함. 영어를 못하면 불리하고 잘하면 유리한 제도로 마땅하게 굴러가지. 여러 시험을 여러 번 봤어. PTE이니 CCL이니 인정해 주는 테스트는 모두 다. 물론 공짜일 리가 없지. 꽤 큰돈을 연거푸 들였어. 결국 필요한 점수를 얻어서 다행이지, 시간과 비용을 들이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거든. 나머지는 무사히 간호사 되기. 졸업까지 거치는 과제, 시험, 실습 과정은 가시밭길이 따로 없어. 흥미로운 지식을 배우는 재미와는 별도야. 자칫 어디서든 실패하거나 탈락하면 벌어질 도로아미타불이 두려웠어. 나 때문에 가족 전체가 안정적인 삶과 멀어질 수 있다는 불안이 빈번히 어깨에 내려앉았지.


마지막 학기를 앞둔 방학이었나. 조용히 지켜보던 초록이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어. 돌아보면 이곳에 도착한 날부터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한 내가 안쓰러웠다고. 옆에서 말로는 늘 할 수 있다고 격려하지만 정말로 해내는 내가 대견하고 기특하다며. 혼자 짊어진 부담을 덜어줄 수 없어 미안하고 고맙다고. 남편은 내 등에 올라탄 짐을 잘 알고 있었던 거야. 살던 곳에선 나눠서 지던 걸 여기선 내가 몰아가졌으니. 순간 따뜻한 편지 덕택에 잊고 있던 걸 알아챘지. 난 내 힘으로만 서 있는 게 아니란 걸. 몸이 아플 때도, 영어 시험을 준비할 때도, 간호 실습을 나갈 때도, 옆에 있는 가족의 도움으로 견디며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거야. 흔들리고 헤매도 다시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던 건 든든한 그들이 붙잡아 준 덕이야. 혼자가 아니란 걸 깨닫고는 다른 곳에 살며 겪는 다름과 부담에 편안히 적응해 갔어. 내가 아닌 우린 강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