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세상 속 닮은 얼굴 관계

<파랑의 사정>

by 초록Joon

새로운 땅에서 겪는 변화 중 가장 영향이 큰 게 무얼까. 날씨, 먹거리, 주거, 교육, 직업, 의료 등 삶을 둘러싼 모든 게 달라지거든. 생활과 밀접한 환경이나 체계도 분명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아무래도 인간에겐 이게 최고 아닐까. 바로, '인연'.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가 인생의 질을 결정한다고 봐야 하잖아. 혼자 있을 땐 멀쩡하다가도 누굴 만나거나, 남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상황은 예측 불가로 전개되지. 기분을 들었다 놓는 건 기본이고, 괜히 저 밑으로 파고들게 하거나 얘가 나한테 왜 그러는지 궁금해 죽게 만들기도 하고. 우리가 겪는 스트레스는 전부 관계에서 나온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니.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유롭지 못할 인간관계의 오묘함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얽히고설킨 수많은 이어짐 속에 균형잡기가 난 늘 어려웠어. 역시나 새 땅에서 새 인연을 만나면서 내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지.


호주로 떠나기 전, 주변에서 한마디씩 거들었어. "나가서 한국사람을 조심해." "누구는 한국놈한테 뒤통수 맞았대." "외국에 사는 한국인이 제일 무섭다." 워낙 '카더라'의 홍수 속에 사는 게 익숙해서 적당히 걸러 듣지만, 아주 신경을 쓰지 않을 순 없더라. 타지에 나가면서 '나는 이제부터 한국인이 아닌 현지인으로 살 거야!'라고 노선을 정하지 않은 이상, 같은 나라 사람을 찾고 의지하게 되는 건 당연했으니까. 고국에서 살 때도 나쁜 사람 때문에 겪는 고통과 아픔은 존재했으니 특별히 뭐가 더 다르겠냐는 마음도 있었어. 원래 부정적인 기억은 오래 남아 널리 전하고 멀리 퍼지기 마련이잖아. 산 물건이나 음식이 별로면 바로 악플을 달러 가지만, 적당히 괜찮으면 별말 없이 지내듯이 말이야. 나만 처신을 잘하고 당당하면 별일 없을 거라는 소신을 가지고 날아갔지. 거기에 더해 바깥세상에서 귀한 인연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작은 소망도 살짝 품에 넣고서.


다양한 조건의 한국 사람이 해외살이를 하고 있었어. 워킹홀리데이 청년, 유학생, 해외취업자, 영주권자, 시민권자 등. 난 대학과 교회를 다니면서 주로 한인 유학생과 한인 교인을 접하며 지내게 되었지. 아무것도 모르던 처음엔 도움만 잔뜩 받았어. 무형의 정보와 유형의 물품을 전해주며 따뜻하게 다가오는 모두가 고마웠어. 나도 받은 사랑을 나중에 꼭 전하겠다고 스스로 독려했지. 가까워지며 친해지는 시기에는 다 좋아 보였어. 외로울 뻔한 외국에서 비슷한 얼굴을 보며 통하는 말로 서로를 보듬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접점이 늘어나고 시간이 쌓이면서 묘한 상황이 연출되었어.


우리 가족과 내 상황은 이랬어. 10년 맞벌이 부부를 잠시 내려놓고 휴직을 한 채로 아이와 호주에 살아보려고 온 거야. 나는 대학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고, 남편 초록은 아들을 돌보는 전업주부로 지내고.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지내며 당장 돈벌이는 하지 않았어. 돈 버느라 지쳐서 제대로 살펴보기도 전에 도망치듯 돌아가지 않기 위해 짠 작전이었어. 대신 정해진 기간과 예산을 치열하게 지켜가며 이곳이 우리와 맞는지 따졌지. 여기 아니면 죽는다는 식으로 온 건 아니었으니. 충분히 불확실했지만 주변에선 보기 드문 케이스였어. 완전히 자리 잡은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안정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었거든. 같은 대학 동기들만 봐도 그랬어. 홀로 사는 청년이 혼자 벌어서 집세, 식비, 등록금까지 내면서 어렵게 공부를 이어갔지. 교회에서 만나는 가족들도 힘들긴 마찬가지였어. 아이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부부가 일하며 불안정한 생계를 꾸리며 견디는 중이었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난 마음이 쓰여서 손길을 내밀기 시작했어. 나중에 어떻게 돌아올지도 모른 채.


붙어서 함께 고생하는 간호 동기가 눈에 먼저 들어왔어. 동기라고 칭했지만 거의 10살 가까이 차이 나는 한참 어린 동생들이었지. 나처럼 대학 졸업도 하고, 직장도 10년 다니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온 경우는 흔하지 않았거든. 조카뻘 되는 친구들이 타국에서 부모님도 없이 먹고사는 게 짠하더라고. 사촌 큰 언니나 젊은 이모 같은 마음으로 챙기게 되었어. 참고로 난, 내 사람이다 싶으면 마구 퍼주는 스타일이야. 집으로 불러 접하기 힘든 한식도 요리해서 먹이고, 반찬도 해서 날라 안겨주고 하면서 주기적으로 정성을 썼어. 세 들어 살던 집에 사정이 생겨 갈 곳이 없어진 딱한 친구들에겐 돈도 안 받고 방을 내주며 얼마든지 살도록 해주고. 학교 다니던 2년 내내 할 수 있는 만큼은 사랑을 주려 애썼어. 서로 친한 관계라고 순수하게 믿었기 때문에.


그중에 지금까지 남은 인연이 별로 없어. 받은 만큼 돌려받길 원한 게 아니야. 그냥 계속 알고 지내면서 연락하는 사이, 친구로 남을 줄 알았어. 필요할 땐 나를 애타게 찾고, 도움을 받으면 눈물을 흘리더니 그게 끝이야. 단순히 예의가 없다고 치부하면 편할지도 모르지. 근데 밖에 나가서 나에 관한 이러쿵저러쿵 불편한 소리를 하고 다니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걸 해주고도 욕먹는다고 하나 봐. 건너 들은 이야기와 짐작 가는 이유를 얼기설기 이어 붙여보면 억지스럽지만 이런 해석이 나와. 나의 평안해 보이는 상황이 불편해서 그랬대. 같이 어려운 사람이 힘내자고 하는 건 괜찮은데, 나은 위치에 있는 자가 손을 뻗는 게 거추장스러웠나 봐. 굉장히 억울해. 시간과 정성이 남아서 그런 게 아니었는데. 그저 보탬이 되고 싶어서 내가 가진 한정된 여유를 그들을 위해 사용한 것뿐인데. 그 후론 두려움이 생겼어. 누굴 도우려고 다가가는 게 망설여져. 원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싶고, 혹은 받고도 날 피할까 봐.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선 더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졌어. 초기에는 같은 믿음을 품었으니 보다 쉽게 포근하게 밀착되었지. 제각각 다른 성격을 가졌지만, 사랑으로 서로를 아끼는 모습이 좋았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을 거야. 성도 사이에 삐죽삐죽 가시가 돋는 걸 발견하기까지는. 겉으로 둥글둥글 완만하게 지내는가 싶었는데 세속의 흐름과 별반 다르지 않았어. 여기도 양상은 비슷하게 덜 가진 자가 더 가진 자를 질투하고 미워했어. 그게 권리든 재산이든 자식이든 따질 수 있는 모든 걸 비교하며 갈등했지. 다름을 존중하기보단 차이를 규명하는 데 집중해서 누가 더 옳은지 그른지, 높고 낮은지 정하기 바빴어. 몇몇 핵심 선동 세력에 상처받고 나가떨어져 정든 한인 가족이 하나씩 사라졌어.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벙벙하던 우린, 공격 대상이 되기 직전에 겨우 깨달았지. 우리의 한국에서 살던 적당한 배경과 이곳의 평온해 보이는 삶이 그들에겐 눈엣가시였나 봐. 내가 기억하기론 내세운 적도 뽐낸 적도 없는데. 받은 만큼 나누기 위해 두리번거리며 애쓴 적은 있어도. 오히려 적응하기 어려워하며 빌빌 기어다녔더라면 예쁘게 봐주었을까. 이유 없이 눈치를 보며 부자연스러운 관계를 질질 끌다 결국 도망치듯 떠났어. 하나만 걸리면 물어뜯겠다는 고약한 시선을 버티기 힘들었거든.


때마침 터진 코로나를 핑계로 삼아 한동안 나가지 않았어. 역병이 잠잠해질 무렵 목사님을 찾아가 고백했지. 죄송하지만 이런 이유로 그들과 함께 있기 싫어 떠난다고. 그동안 감사했고 그들을 조심하길 바란다고. 아쉽지만 우리의 사연을 이해한다고 했어. 또한 우린 모두 부족하며, 부족한 이도 품어야 한다고 말씀했지. 고귀한 바람대로 그들이 감화되어 아름다운 결말로 끝났다면 참 좋았을 텐데. 결국 교회는 사랑으로 안았던 그 사람들로 인해 얼마 안 가 산산조각으로 분열되었어. 비난하고 욕하고 단죄하고 깨물고 난리였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지. 원인은 뻔했지. 내가 맞고 너는 틀렸다는 의미 없는 경쟁 구도. 슬프면서도 솔직히 다행이라는 감정이 앞섰어. 더러운 꼴을 당하기 전에 제때 도망쳤으니까. 지금은 다른 곳에서 예배를 드려. 종종 지난 경험이 악몽처럼 떠오를 때면 무서워. 다시 반복될까 봐. 여전히 선뜻 어울리며 도울 일이 없는지 나서길 겁내는 까닭이야.


담지 못한 기막힌 스토리가 아직도 많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귀에 들어간 험담부터 자기들끼리 편가르기 하느라 쏟아지는 거짓말까지 셀 수도 없어. 기대가 너무 컸었나 봐. 살던 곳에서 괴로웠던 관계를 부추기던 타인과의 비교가 여긴 없을 줄 알았어. 나와 똑같이 그런 게 싫어서 좀 더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왔다고 여겼거든. 남 눈치 보지 않고 각각을 존중하며 살려고 말이야. 모두가 그렇진 않았던 거지. 비교 자체를 넘어서려고 온 나와 다르게, 태어난 곳에서는 앞서기 어려우니 새로운 곳에서라도 일등을 하려고 온 사람도 있었어. 도전의 목적이 같을 거란 순진한 예상이 틀렸던 거야. 다른 이의 목표를 알게 되니 왜 그리 남이 궁금하고 신경이 쓰이고 깎아내리길 원하는지 이해가 됐어. 내겐 안타까운 자태였지만 그게 그들의 행복이라면 어쩌겠어. 아예 한인과 접촉을 끊는 한인이 왜 생기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고. 동족이라는 이유로 섞여서 원치 않는 도토리 키재기를 하며 괴로워지고 싶지 않아서겠지.


바라보는 방향이 꼭 맞는 새로운 인연을 만날 거라 굳게 믿었어. 꼭꼭 숨어있는 보석을 찾는 식이 아니라 누구를 만나도 쏙 스며들 만큼 닮은 이가 가득할 줄 알았어. 여느 인생과 마찬가지로 계획과 일치하는 건 없었지. 실망에 지친 요즘엔 이런 생각까지 해. 무슨 근거로 소울 메이트를 만날 거라는 환상을 품었을까. 이제 포기하고 나 혼자 잘 살아보자. 흘러 들어오는 비교의 검은손은 철저히 차단하면서. 관계를 맺으면 깊어지기도 전에 겁이 나. 알고 보니 나랑 다른 사람일 땐 처신을 어찌하나 싶어서. 먼 곳으로 이동하며 복잡한 문제에서 탈출했다고 단단히 오산했어. 어차피 하늘 아래 인간 세계는 비슷비슷한데. 차라리 외롭길 바라면서도 슬며시 외로운 상태야. 그래도 혹시, 하나의 영혼을 나눠 가진 듯한 친구를 언젠가 마주치지 않을까. 더 넓은 세상에 나왔으니.




<파랑의 사정>은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