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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r 01. 2024

비록 파국으로 치닫는 부부 관계지만

[전업 아빠 육아생존기] 7화

오늘의 운세나 심리 테스트 같은 걸 믿지 않는다.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로하려는 목적 말고는 없으니까. 한 치 앞도 알 수 없고, 확실한 게 하나도 없는 인생에 실제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알면서도 혹시나 하면서 기댈 곳을 찾느라 가끔 들여다보는 셈인데 내겐 별로 가치가 없게 느껴진다. 그냥 재미로 하는 거라는 부류도 있지만 어쩐지 그 재미도 내겐 귀찮음을 넘어서지 못한다. 시간과 품을 들여서 이러니저러니 나에 관해 묻는 말을 읽지도 않고 덮는 이유다. 


고집스러운 내 속을 모르는 지인이 유행하는 '퍼스널 컬러 테스트'를 소개했다. 링크도 클릭하지 않고 바로 아내, 파랑에게 전달했다. 혼자였다면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았겠지만, 나와 전혀 다른 파랑의 취향을 존중하기에. 가장 아끼는 사람을 위해 번거로움을 무릅썼다고 하면 좀 과하려나. 역시나 아내는 반기며 바로 해보곤 결과를 알려줬다.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다고 흥분하며 나도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다른 사람이면 거절했겠지만 그래도 제일 아끼는 이의 부탁을 내칠 수 없어 순식간에 여러 질문에 답했다. 입력한 답을 통해 나온 나를 열심히 설명하는 내용은 그럴듯했다. 어찌 보면 성공률이 높아 보였지만 여전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생각은 여전했다. 마치 점을 보러 가서 듣는 '여름에는 물을 조심하고, 겨울에는 감기를 조심하라' 같은.


그럼 그렇지 하면서 코웃음을 치고 있는데 파랑이 나의 테스트 결과를 궁금해했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다며 최대한 관심 없다는 듯 전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아내는 나의 퍼스널 컬러를 입으로 되새기더니 사라졌다. 잠시 후 매우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본인의 휴대전화를 보여주며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뭐가 그렇게 심각한가 싶어 문득 호기심이 생겨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떡 하니 자극적인 표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둘의 관계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게요. 파국이라고.'



일이 잘못되어 결딴이 난다는 극단적인 단어는 다름 아닌 서로의 퍼스널 컬러로 따져본 나와 아내의 궁합이었다. 너무도 다른 사람이라서 처음엔 신선하고 궁금해서 흥미를 끌 수 있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지쳐 나가떨어진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한쪽이 노력한다 해도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었다. '노력해서 안 되는 것도 있어요!'라고 확신하면서. 뭐 이런 게 다 있냐며 내치기엔 틀린 말이 없었다. 오히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질 정도였다. 우린 정말 완전히 다른 성향이 맞았다. 우리 부부가 툭탁대는 경우는 모두 둘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그날 온종일 난 '홍파국'으로 불렸다. 내심 짐작은 했지만 제대로 확인한 아내는 그럴 줄 알았다며 무릎을 쳤다. 재미나지만 섬뜩한 우리의 쉽지 않은 사이를 주변에 꽤 열심히 알렸다. 아내의 묘하게 진지한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난 어색하지 않았다. 도리어 익숙하기까지 했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파랑은 나와의 다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 시작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느 연인처럼 퇴근 후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인사동 인근으로 기억하는데 여기저기 '궁합/사주/타로'라고 적혀있는 천막이 보였다. 모태신앙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파랑이 갑자기 내 손을 잡고 그곳으로 이끌었다. 그땐 확실한 갑을 관계이기도 했고, 항상 분명한 이유가 있는 친구라서 순순히 따랐다. 내심 혼자서 이 친구와의 결혼을 꿈꾸던 시점이었기에 한 번쯤 재미로 봐 두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과 별개로 확연히 보이는 우리의 차이가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했다.


조그만 탁자를 두고 맞은편에 앉은 인자한 표정의 아주머니는 시원하게 말했다. "아주 좋습니다." 우리 둘의 관계가 무척 괜찮다고 했다. 나는 기뻐하며 안도했고 파랑은 만족하지 못했다. 바로 다음 집을 찾아갔다. 그곳에서도 호평 일색이었다. 다시 나는 후련해했고 파랑은 복잡해했다. 더 이상 어찌할 도리 없어 하는 파랑에게 물었다. 알고 싶었던 게 도대체 뭐냐고. 연애하며 관계가 깊어지면서 눈에 띄는 우리의 다름에 관해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혹시 궁합이 별로라고 나오면 그 핑계로 날 떼어볼까 했다는 것이다. 원체 내가 운은 타고난 사람이라 절묘하게 피했던 모양이다. 물론 행여 안 좋다고 했더라도 다른 방법을 통해 꽁꽁 엮어놓았을 테다. 그렇게 우린 사랑을 시작하면서 완벽히 다른 사람이란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안 싸우고 잘 지내는 연인이나 부부도 있다고 하지만 우린 아니었다. 다행히 둘 다 속부터 악한 사람은 아닌지라 의도가 나빠서 싸운 일은 없었다. 다툼의 원인은 늘 다름의 차이를 이해하는 노력의 방향이 어긋나서였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점점 알게 된다. 다만 단순히 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배우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온전히 포용하려면 자신이 아닌 남을 중심으로 두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론적으로 맞지만 감정에 휘둘리는 보통 사람에겐 취하기 어렵다. 다툼이 시작되어 뜨거운 마음에 휩싸이면 차가운 이성과 쉽게 헤어진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씩씩대다가 적당한 시간이 흘러 가라앉으면 깨닫는다. '아, 이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이를 보는 내 관점은 낙관적이다. 이렇게나 철저하게 다른 사람이 지금껏 잘 살아왔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기 위해 이야기도 많이 하고 솔직하게 찔러 봤다가 데이기도 하면서. 아직도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자부심마저 느낀다. 어차피 사람은 모두 다르며 누굴 붙여놓아도 간극은 존재한다. 간극의 크기는 문제가 아니다. 아주 사소한 부분도 충분히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가 될 수 있으니. 중요한 건 인정하고 좁히려는 정성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우리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바로 딱 옆에서 지켜본 사람의 증언을 확보했다. 우리의 서로 다름을 골고루 물려받은 아들이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아빠랑 엄마랑 딱 맞는 것 같아. 어떻게 이렇게 만났을까?" 아이의 눈은 꾸밈이 없고 정확하다. 덕분에 우리가 잘 어울린다고 확신한다. 무시무시한 '홍파국'이라 불려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까닭이다. 귀가 얇아 자주 팔랑대지만, 우리 사이를 향한 믿음은 두텁다. 분명히 다르지만 충분히 품고 배려하며 지낼 수 있다. 그게 사랑이니까.



홍석준 작가의 [전업 아빠 육아 생존기]

"옛날에는 아빠도 육아를 함께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대."라며 마치 여성도 투표할 수 있게 해 달라 주장하던 옛사람처럼 잊히길 바란다. 내 바람이 지금 읽고 있는 당신으로부터 시작되길 바라며 글을 보낸다.

아빠도 함께하는 육아를 만드는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 저자 홍석준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원고료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액 기부합니다.)



[전업 아빠 육아 생존기] 7화



<연재 배경>

네이버 연애 결혼 <썸랩>으로부터 원고를 요청받았다. <썸랩>은 네이버와 문화일보의 합작 회사로 네이버의  '연애 결혼' 주제판을 운영했었고, 현재는 연애 결혼과 관련된 컨텐츠를 네이버 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에디터님께서 우연히 내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읽고 내용이 정말 좋아 연재를 부탁한다고 했다. 보내주신 칭찬을 괜히 덧붙이자면 '쉽게 읽히면서도 중심이 잡힌 글'이 참 좋다고 했다. 세상에 필요한 육아하는 아빠 이야기를 들려주며 꼭 같이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제안에 감동했다. 이 글은 그렇게 탄생했다. 






세상에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교보문고 https://bit.ly/3u91eg1 (해외 배송 가능)

예스24 https://bit.ly/3kBYZyT (해외 배송 가능)

알라딘 https://bit.ly/39w8xV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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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이 책의 탄생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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