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5분 정리의 힘>
출근 시간보다 한참 이르게 사무실에 나서서 몰아치는 일을 쳐내기 바쁜 아침. 분명 어제도 그렇게나 많은 업무를 해치웠는데도 오늘은 오늘대로 일이 많다. 물 한 모금, 숨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헉헉대며 모니터를 바라보는데 맞은편의 선배는 아침부터 또 시작이다. 어김없이 오늘도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책상의 먼지를 닦아내고 가지런히 정리를 한다. 어제도 했고, 그저께도 해서 도무지 더 이상 닦아낼 게 없어 보이지만 늘 그런 식이다. 자리를 가다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내가 멍하니 바라볼 시간이면 충분하다. 신성한 아침 의식이 끝나면 그가 차분하게 일을 시작한다. 늘 그렇듯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하나씩 하나씩 구겨져 있는 일들을 피고 접어가며 제대로 똑바르게 처리한다.
한 번은 물었다. 아침마다 멀쩡한 책상을 도대체 왜 그렇게 매만지는 거냐고. 대답은 간단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공간을 정리하며 마음가짐도 말끔하게 만든다고. 신비한 동물 사전에나 등장할 법한 인물을 보듯 쳐다보다가 먼지로 뒤덮인 내 책상으로 시선을 옮겨온다. 설마 하루 종일 허덕이는 내 처지가 저 먼지 때문인가. 곧장 그럴 리 없다며 고개를 흔든다. 먼지를 쳐내는 시간에 일을 하나라도 쳐내는 게 신상에 좋을 거라는 믿음이 확고했다.
원하지 않았지만 쌓이고 쌓여서 어쩌지 못할 순간이 찾아온다. 꼭 직장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어느 시점에 목까지 꽉 막힌 느낌이 올 때가 있다. 미루어둔 고민, 모른 척했던 일, 쏟아지는 질문까지. 습관적인 일 처리 본능으로 닥치는 대로 해결해 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뭐가 뭔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게 엉키고 얽혀있다. 대충 아무렇게 쌓아둔 그때의 편함이 지금의 괴로움으로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매일 아침 주변을 정리하던 선배가 떠오른다. 어쩐지 그는 이런 엉망진창의 상황을 만들지 않았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회사 밖에서의 상황은 모르지만 실제로 회사 안에서 그는 당황하거나 허둥지둥 대는 일이 없었다. 미리미리 덜어낸 먼지와 서류 뭉텅이 덕분이 아니었을까. 언제나 그의 자리엔 딱 그때 집중하는 일만 놓여있었다. 언제 적 자료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종이 더미가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던 내 자리와는 사뭇 달랐다. 시험을 앞두고 갑자기 자리를 청소하는 학생처럼 몇 년 만에 버리기 시작했다. 이것도 오래 지났고, 저것도 필요 없고. 대부분 없어도 전혀 문제없는 짐이었다. 그렇게 비워내기를 한참을 했다. 문득 버리기엔 너무 새것인 물건을 발견했다. 선물 받았지만 읽지 않던 책을 그 순간 운명처럼 만났다.
달려가며 뒤에 뭐가 얼마나 쌓였는지 돌아보지 않았던 내게 귀한 깨달음을 주었다. 그동안 쌓아온 시간과 공간의 기록이 정리되지 못하고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특히 찝찝하게 얽히고설켜 있던 인간 관계도 더 이상 미루어 둘 수 없는 상태였다.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만난 이 책은 너무도 적절한 해결책을 선물했다. 한정된 공간을 정리하며 살지 않으면 더 이상 채울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뻑뻑하고 버벅거리며 돌아가던 게 다 이유가 있었다. 온갖 게 뭉쳐서 하수구 막히듯 쌓여 있으니 새로 들어오는 게 통하지 못했다. 지난 삶이 가지런하지 않으니 다가오는 삶도 어지러운 곳에 대충 엉거주춤하게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열고 책이 전하는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머리로 아는 것을 넘어 몸으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출근하면 먼저 자리를 정리했다. 눈에 보이는 먼지를 치우는 게 아님을 알았다. 어제까지의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고 오늘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버릴 것을 버리고 치워둘 것은 제쳐두면 맑아졌다. 지금에 집중할 준비가 되어 당황하거나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일에서만 일어난 변화가 아니었다. 살아가는 다른 공간인 집에서도 그랬고 보이지 않는 공간인 마음속도 그렇게 변했다. 마냥 묵혀두고 쌓아두기보단 규칙적으로 닦고 버리는 습관은 예상보다 큰 효과를 가져왔다.
정리가 되면 그제야 중심의 내가 보였다. 항상 가려져 있어, 있는 줄도 몰랐던 존재를 알아챘다. 어쩌면 반복된 정리의 목적은 그 안에 있는 자신을 스스로 챙기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부차적이고 부수적인 기타 등등을 떼어내고 털어내 버리면 핵심만 남았다. 나에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자, 세상이 변했다. 내가 원하는 바를 바라보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평생 쓰레기, 찌꺼기에 파묻혀 있었더라면 불가능했으리라. 쓸데없는 것에 매몰되지 않게 밖과 속을 비우고 남겨두자.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새로움을 품을 수 있게.
<읽었던 그때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
하루 15분 정리의 힘 (삶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공간 시간 인맥 정리법) (윤선현/위즈덤하우스)
일과 물건에 둘러싸여 있는 게 우리 삶이다. 시간, 공간, 인간관계에 얽매이고 힘들어하는 우리다. 정리, 정돈, 청소를 통해 비움, 나눔, 채움의 미학을 실천하길 권한다. 중요함을 설파하며 그렇지 못했을 경우를 경고한다. 내용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덮고 나서 사무실 공간을 바로 정리하게 되었다. 독자가 움직인다는 건 놀라운 변화다. 다음은 시간 정리다. 작은 단위부터 몇십 년 후까지가 한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내 시간을 말끔하게 만들어보자.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