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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Feb 04. 2022

책이 던지는 질문을 받아서 다시 던진다

서평에 대한 생각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돕는다.

아직도 기억하는 책 <시크릿>에 나오는 대목이다. 요즘 ‘부와 성공의 비밀’을 서로 더 많이 담고 있다며 경쟁하듯 쏟아지는 수많은 그렇고 그런 책들의 원조다. 별로 가치 있어 보이지 않은 이 책의 문장을 왜 10년도 넘게 담아두고 있었을까? 혹시 엄청난 부자가 되는 비밀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안타깝게도 그랬다면 여기서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테다. 모두에게 그랬듯 내게도 황당무계한 행운을 가져다 주진 못했다. 그럼에도 저 한 구절이 남아 있는 중대한 이유가 있다. 바로 지금의 아내를 이 책 덕분에 만날 수 있었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서 망설였다. 그때 이 책은 내게 근거 없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간절히 바라면 당연하게도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서슴없이 외치며 날 유혹했다. 엉뚱하게도 그냥 그렇게 믿어봤다. 좋아했던 그녀가 내 여자 친구가 되고 말 거라고, 아니 이미 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믿었다. 신기하게도 현실이 되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돼버렸다. 그리하여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게 해 준 마법의 책으로 내게 남고 말았다.


책에 쓰인 말은 고정되어 있다. 읽은 뒤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어떻게 활용하는지 천차만별인 셈이다. 책을 덮고 나면 내게로 향하는 질문이 날아온다. 무언가 고민하고 생각하고 찾아보라고 채근한다. 독서란 글자를 읽고 이해하고 마는 게 아닌 ‘책이 던지는 질문을 받는 행위’라고 여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책에 없다. 책을 읽은 독자가 혼자서 답해야 한다. 찾을 수도 있고 못 찾을 수도 있다. 정답은 없다. 인생에 원래 그런 게 없듯이. <시크릿>을 읽고 누군가는 부자가 되는 법을 찾았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법을 찾았다. 똑같은 책을 읽고도 전혀 다르게 다음 행동이 이어질 수 있다. 이게 바로 책의 매력이자 힘이라고 믿는다.


서평(Book Review)을 쓰기 시작한 지 2년이 되었다. 한 권 두 권 늘더니 어느덧 100권이 넘었다. 책을 읽고 생각을 남기는 이유는 책의 매력이자 힘인 ‘책이 던지는 질문’을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허공에 던지는 그 질문을 누군가 받기 원한다. 내 서평을 읽고 그 질문을 받아 든 누군가가 그 책을 읽기를 원한다. 지향하는 서평은 단순한 독후감이나 옮겨 적기가 아니다. 책의 목차 설명, 내용 요약하기는 서평이 아니다. 가끔 책을 그대로 줄줄 옮겨 적는 경우도 있다. 그런 글은 일부러 읽지 않았고, 우연히 스쳐가더라도 기억에 남은 적이 없다. 책은 직접 읽으면서 스스로 생각을 하는데 의미가 있다.


어차피 직접 읽어서 생각하는데 왜 서평을 쓰냐고 물을 수 있겠다. 세상에 쏟아지는 책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어떤 책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생각을 하게 할 수 있는지 알려주기 위해서다. 서평의 이유를 설명하려면 먼저 책 고르는 방식을 밝혀야겠다. 책을 읽고 생각을 하기보단 어떤 생각을 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처음에 꺼낸 <시크릿>이라는 책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드는 방법’을 알기 위해 읽었다는 의미다. 지금 필요한 것에 대한 답을 찾거나 고민스러운 부분을 탐구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서평 안에 담긴 내가 먼저 받아 든 ‘책이 던진 질문’을 누군가 읽고 필요한 책인지 판단하길 원한다. 책의 제목, 저자의 소개, 주요 줄거리와 같은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책을 통해 고민했던 과정이 전달되어 느끼기를 기대한다. 우연히 내게 왔던 질문이 마침 필요한 이를 만난다면 그 책을 스스로 읽으면 되는 거다. 이게 내가 바라는 서평의 옳은 쓰임이다.


같은 맥락으로 필사를 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나서 남는 것은 책이 던진 질문이며, 그것에 대한 내 고민이다. 책의 내용을 직접 써 본다고 내게 남지 않는다. 그건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남긴 것이며 오로지 작가의 것이다. 남의 생각은 내게 남을 수 없다. 어차피 필사를 해도 잊어버릴 것은 결국 잊어버리고 필사를 하지 않아도 남을 것은 남는다. 건져낸 질문을 스스로 이해하고 자신의 언어로 다시 뱉어내 보는 게 중요하다. 다시 써보면 비로소 내 것이 된다. 필사를 하지 않기에 책의 내용이 구구절절 담기지 않는다. 직접 읽은 나도 바로 잊어버리는 마당에 심지어 직접 읽지 않은 남에겐 더욱 무용하다. 괜한 글자들의 옮김에 들어간 애씀은 어디에도 닿지 못하고 그저 휘발될 뿐이다. 


고집스러운 철학 때문인지 읽었던 책의 제목이나 저자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심지어 책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앞으로 더 잊어버릴 것이 확실하다. 분명하게 남는 건 ‘책이 내게 던졌던 질문’이며 치열하게 물고 늘어졌던 고민의 흔적만이 깊숙이 새겨진다. 다른 이들에게도 책이 이렇게 남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 질문들을 던질 것이다.


누군가 받아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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