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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an 22. 2022

앞으로 몇 권이나 더 읽을 수 있을까?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요즘 유일하게 우울하고 슬픈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독서에 대한 생각을 하면 가라앉는다. 앞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 한정되어 있다는 판단이 들면 좀 많이 아쉽다. 결코 빠르지 않은 독서 속도이기에 제 아무리 읽어봤자 1년에 50권이다. 30년을 줄기차게 읽는다고 쳐도 1,500권이다.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책이 어마어마하고 내가 읽는 속도의 수천, 수만 배 이상의 책이 계속 쏟아져 나올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건 바라볼수록 가슴만 아플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돌아와 집중해야 하는 질문은 하나다. 주어진 유한한 독서의 시간에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책에 눈을 뜨던 처음에는 그냥 눈에 띄는 대로 읽어왔다. 주로 남들이 많이 보는 책(소위 베스트셀러)을 따라서 같이 보기 시작했다. 성공률이 나쁘지 않았다. 인기가 있다는 건 최소한의 검증이 되었다는 뜻이었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책이 대부분이었다. 곧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대중의 취향이라는 게 크게 변화가 없는지 거기서 거기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시장경제논리에 따라 책이 상품으로써 홍보되는 경우가 많았다. 주제는 고만고만하게 일찍 일어나서 돈 잘 벌어보자는 식이 많았고, 심지어 내용보다도 표지로 밀어붙이는 상황이 자주 벌어졌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을 읽어도 저 책을 읽어도 시리즈 물인 마냥 다 비슷해 보였다.


답답한 마음에 작가를 정해서 읽어봤다. 좋아하는 작가, 추천받은 작가의 책을 줄줄이 읽기 시작했다. 이건 이거대로 재미가 있었다. 누가 썼냐는 것이 꽤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가끔 이 작가 아니었다면 절대 읽지 않았을 종류의 책을 접하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작가를 정해놓고 하는 독서는 확실한 보증수표임에 틀림없지만 새로운 변화에 목이 마른 건 어쩔 수 없었다.


언젠가부터 종종 책 리뷰를 참고했다. 모르는 책과 작가를 간접적으로 만나는 경험은 새로운 책을 찾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런 책이? 이런 작가가?’하며 놀라고 앞으로 읽을 책 목록에 넣어둘 때 기분은 비밀을 숨겨둔 느낌이다. 그렇게 만난 책이 정말 괜찮았을 때는 어떤 보물을 찾은 것보다도 기쁘다. 지금처럼 내가 이렇게 읽은 책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열심히 책을 골라 읽어도 제대로 남는 건 10권 중에 1권 정도다. 이 정도라도 건져서 다행인 건지, 아니면 9권을 읽었기 때문에 그 한 권이 있을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한정된 시간에 한정된 독서를 이어나가다 보면 항상 이 책이 떠오른다. 가끔 읽은 책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때마다 이 작가의 독특한 독서와 책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독서광인 작가는 본인의 책에 대한, 독서에 대한 여러 생각을 재미있게 때론 강렬하게 풀어놓고 있다. 오래 품고 있던 생각과 꼭 일치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좋은 책은 만장일치를 요구하지 않는다.

독서 모임이나 독서 토론회를 가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갈 계획은 없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편중되고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한 책에 대한 결론을 작가는 강하게 비판한다. 나도 이에 강력하게 동의한다. 책뿐만이 아니라 어떤 것에 대한 개개인의 의견과 입장은 모두 다르다. 이를 나누고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만장일치처럼 하나의 정해진 결론을 내려는 행태라면 난 거부하겠다. 지문을 읽고 미리 정해진 답 찾기는 학교에서도 인생에서도 이미 지겹게 많이 했다. 그럴 바엔 혼자서 읽고 생각하고, 그 시간에 다른 책을 더 읽는 게 낫다.


살던 곳을 떠나 멀리 넘어오느라 대부분의 책을 다 정리했다. 꼭 읽고 말겠다며 싸 들고 온 책들이 거의 다 소진되어 간다. 정해놓은 목록 안에서 갇혀 읽던 독서를 마감하고 이제 새로운 책을 찾아서 갈 시간이 다가온다. 설렌다. 남아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음을 아는 만큼 그 안의 독서가 더 귀하게 느껴진다. 아쉽다. 어떤 방법을 사용한들 좋은 책을 읽을 확률이 마구 올라가진 않을 거라서. 어쨌든 읽어보기 전엔 모르니 오늘도 한 줄 더 욕심을 내며 눈을 돌려본다.




읽었던 그때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조 퀴넌/위즈덤하우스) - 2018 완독


<기억에 남는 구절>

나쁜 책 읽기 : 좋은 책은 저자들이 우리 대신 다 생각을 해놓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고 말고 할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러나 끔찍한 책은 저자가 이다음에 또 무슨 믿기지 않는 헛소리를 하려나 궁금증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뇌에 자극을 준다.


추천사에 대해서 : 추천사를 해독하여 작가가 친구를 칭찬하면서도 친구 책은 칭찬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구사한 언어 곡예를 파악할 수 있다.


<덮고 난 후의 마음>

작가의 엄청난 독서 내공을 알 수 있다. 정말로 책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어려울 때 살기 위해서 읽던 게 습관이 돼버린 듯하다. 주로 소설류를 많이 읽는 것 같았고, 프랑스 어를 배우면서 원서로도 많이 읽는 듯했다. 작가와 소설에 대한 주관이 뚜렷하여 다독가로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다.


'좋은 책은 여러 번도 읽지만 어쩐지 손이 안 가는 책들은 죽을 때까지 못 읽을 것 같다'는 대목에서 사놓고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는 내 책장의 책들이 떠올랐다. 당분간 계획대로 읽으려 했던 책들을 먼저 읽고, 앞으로 어떤 책들을 읽을지 고민을 많이 해야겠다. 책은 정말 많고 읽을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에 쉬운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많이 읽어야 그 방향을 잡기가 수월해지기에 오늘도, 내일도 꾸준히 읽을 수밖에 없겠다.



읽고 남는 건 받은 질문과 했던 고민뿐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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