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아 많이 덥지? 언제나 다정한 친구는 아빠 부고마저 다정하게 보내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만나 줄곧 가깝게 지냈으니 우리 사이 지난 세월이 벌써 30년이 넘어간다. 친구 아버지 몸이 약간 불편하신 줄은 알았다. 하지만 최근 큰 병환 중이신 건 이날에서야 알았다. 300km거리. 당연히 갔을거다. 휴가지로 택한 곳이 중간 지점쯤 되었나보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연락을 받아 생각보다 빨리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1층에서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던 친구와 마주쳤다. 보자마자 친구를 안아주었다. 우리는 서로 눈물을 흘렸다. 소식을 들었을 때도 사실 눈물부터 났다. 왜 아닐까. 8년이 지났지만 아직 괜찮지 않다. 아빠가 없다는 건 이 나이 먹고도 서글픈 일이다. 조문을 드리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2시간 남짓 머무르는 동안 친구는 주로 내 앞에 앉아있었다. 더러 일어나 방문객들을 맞고, 아이들을 챙겼다. 상주이자 엄마이기도 하니까 장례식장에서도 바쁜 건 당연하다.
몇 년 먼저 아빠의 부고를 치른 것도 나름의 경험이었나보다. 친구의 고민에 우리집 경험을 교훈삼아 해 줄 말이 제법 많았다. 이런 조언을 건네는 내 모습이 나조차 낯선데 친구는 연신 너무 도움이 되는 말이라고 맞받아친다. 장례식장에서의 바쁨, 휑한 집에서 느껴지는 본격적인 슬픔, 그 와중에도 해내야 할 행정적인 일들, 일상에서 수없이 베어나올 그리움, 홀로 사실 엄마의 거취에 대한 고민 등.
가장 친한 친구의 아빠가 돌아가신 날. 아침부터 고단했을 친구와 함께 그 날의 일몰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봤다. 머지않아 까맣게 변한 하늘 위로 화려한 알전구들이 줄지었다. 그 모습이 꼭 오징어잡이배 같아서. 대체로 슬플 사람들 눈에 비친 비주얼이 잔치라도 되는 듯한 엉뚱한 조합에 웃음이 났다. 하지만, 이내 수긍했다. 장례식이 잔치같은 면이 있긴 하다. 고인을 기리기 위해 오랜만에 사람들이 모이고, 대접한 맛있는 음식 위로, 여러 담소가 오간다. 슬픈 이야기만 나누는 건 아니니까.
전화로 서로 시시콜콜한 일상을 늘어놓기는 왕왕 해왔지만 얼굴을 마주한 건 5년 만이었다. 고운 친구의 얼굴이 많이 수척했다. 친구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많이 늙으셨다. 그리고 내 손을 오래도록 잡고 놓지 않으셨다. 어떡해요, 어머니... 어머니 건강 챙기셔야 해요...정도만...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걸 알기에. 이 날 나는 어머니와 친구에게 사과말씀을 전했다. 휴가지에서 와서 복장이 많이 불량했다. 왕꽃양말에 츄리닝에 블라블라. 까만 옷이라곤 수영복 뿐이었는데 수영복을 입고 갈 순 없었으니까. 얘기를 들은 친구가 빵 터지는 모습에. 내 주접이 성공했음을 확인하고 뿌듯하기도 했던 이 내 마음. 역시 친구는 내 유머를 좋아했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에 창밖으로 커다란 무지개를 봤다. 내 평생 그렇게 큰 무지개는 처음이었다. 이 무지개를 친구에게 선물로 보내줘야지 마음 먹고 사진을 보내주었다. 다정한 친구의 눈에서 흐를 눈물이 앞으로 많을 줄 안다. 그 무엇으로도 진정되지 않을 감정일 것이다. 친구가 그 아픔에 무던해지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아무쪼록 친구가 잘 견뎌냈으면 한다. 조만간 전화 한 통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