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처음이었다. 오고 싶었지만 오고 싶지 않았다. 문턱을 넘기가 두려웠다. 처음 간 날 왜 왔는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는데 속절없이 눈물이 흘렀다. 눈물, 콧물을 닦으면서 의사 선생님과 얘기를 나눴다. 항 불안제를 처방받았다. 그리고 뇌파 검사, 무슨 신경 검사, 양육 태도 검사 등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계속 훌쩍이면서.
그 순간 떠오르는 어휘들을 고르는 검사가 있었다. 최근 힘들었던 심정들을 위주로 고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 곳을 방문했다는 사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 용기를 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개운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기분을 표현하는 어휘도 선택했던 기억이 난다. 후에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우울감이 아주 심하면 긍정적인 어휘를 거의 선택하지 않는다고 했다. 울면서도 긍정적인 감정을 느낀 것이 나쁘지 않댔다.
미량의 항불안제를 받아들었다. 하루 세 번 약 챙겨먹기가 쉽지 않았다. 미처 못 챙긴 날도 있었지만 효과가 생각보다 컸다. 큰 동심이와의 마찰에서 내가 맞불을 놓는 횟수가 줄었다. 조금 더 잔잔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손떨림이 좋아졌다. 두근거림은 조금 줄었지만 아직 불편해서 순환기 내과 진료를 고민중이다 (좋합병원에 있는 세분화된 그 모든 과들은 다 필요한 것이었다. 반드시 필요하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쌀알만한 알약 몇 개로 일과가 이렇게 매끄러워진다니. 의학의 대단함, 인간의 미약함을 동시에 느낀다.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류의 말들이 무색해졌다. 다행히 부작용은 없다고 했다. 적응 기간 동안 복용 중 불편한 점도 딱히 없었다. 지금도 약을 먹을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이 작은 게 효과가 이렇게 크다. 이 느낌을 선생님께 말했다. 나더러 그런 생각을 말란다. 기복의 싸이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더 나아지는 것에만 집중하란다. 어쨌든. 좋아지고 있다. 약으로.
사진: Unsplash의freestoc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