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왔씨요
무옥은 이북 사람이다. 서울에서 잘나가는 만두가게 '평만옥'을 일구었다. 숙련된 솜씨로 정성스레 만두를 빚고, 손님을 맞고, 하루의 영업을 마감한 후 방에 몸을 누이는 성실한 자영업자의 루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반복되는 신성한 무옥의 생의 싸이클이다. 그런 그가 일군 부는 웬만한 기업가를 능가하는 수준. 하지만, 상처했고, 하나뿐인 아들은 출가해버렸다. 피난길에 여동생마저 잃어, 가족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터. 외로움을 제사로 달래는가 싶게 제사에 집착한다.
손주들이 나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손주들이 나타났다. 출가한 아들에게서 자식이 태어나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사연인즉슨 이러하다. 무옥의 아들 문석은 의대생이었다. 같은 과 학생이던 여자 친구와의 스킨십을 못마땅하게 여긴 여자친구의 아버지는 산부인과 교수이자 난임치료의 권위자. 그는 문석에게 정기적인 정자 기증을 요구한다. 알고 보니 그렇게 문석의 알짜배기(!) DNA로 태어난 아이들이 400여명이 넘고. 이래서 영화 제목이 대가족인가 했다. 무옥을 찾은 문석의 자식들이라는 '민국'과 '민선'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승려가 된 문석은 또 어떻고.
친자인가 아닌가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다. 유전자 검사 결과 민국 남매는 문석의 친자가 아니었던 것. 그새 정이 잔뜩 들었던 평만옥 식구들과 아이들. 무옥은 충격에 몸저눕고, 죽음의 문턱 앞에서 꿈을 꾼다. 꿈속에서 무옥의 부모는 무옥을 키운 건 자신들이 아니라 세상이었다며 다정하게 일러준다. 꿈에서도 반가운 민국 남매의 '할아버지' 소리에 사경을 헤매던 무옥은 의식을 되찾고. 한편, 민국 남매는 어른들의 말실수로 자신이 친자가 아님을 알게 되고는 도망을 택한다. 어렵사리 남매와 상봉한 무옥은 부인과의 사별 후 사실혼 비스무레한 관계였던(!) 가게 지배인 방여사와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하고 민국 남매를 입양한다. 이들 부부의 입양은 릴레이로 이어지고, 급기야 전재산을 아동 보호 시설에 기부하기까지 한다. 성인이 된 민국, 민선 남매가 각자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 손을 잡고는 무옥의 기일에 절을 찾는 모습.
혈통주의란 무엇인가
무옥은 핏줄에 애착이 강하다. 그런 무옥이 꿈에 부풀었다가 아이들이 제 핏줄이 아님을 알고 무너지는 건 당연지사. 아들 녀석의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진짜 무옥의 핏줄들은 전세계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하지만, 막상 무옥의 곁에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민국과 민선이 있다. 급기야 입양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아이들과 대가족을 일구는 무옥. 깨달음을 얻고 나서는 오히려 하나뿐인 제 핏줄 문석에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은 내가 돌볼테니 너는 니 갈 길을 가라고. 핏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 시간이 지나 무옥의 기일에 모인 절에서는 중년이 된 문석의 주도로 다같이 모여 재를 지낸다. 핏줄에 대한 애착은 우리나라의 보편적 정서와도 일맥상통한다. 남이던 사람들이 진정한 가족이 되는 과정이 영화에서는 좀 심플하게 그려진 면이 있다. 하지만, 내 안의 오랜 혈통주의를 극복하고 타인을 가족으로 맞기는 쉽지 않을 터. 그 어려운 결단을 지켜보노라면 뿌리깊은 우리네 혈통주의에 대해 자연스레 생각하게 된다.
불교와 유머 한 스푼
작중 아들이 출가하여 승려가 된만큼, 불교를 투영한 장면이 꽤 많다. 똥에서 불심을 깨닫는다던가, 요리에서 해탈을 한다던가. 정신의 지평이 넒어지는 순간이 종교적인 배움과 절묘하게 잘 어울린다. 뿐만 아니라, 은근한 깨알 유머들이 있어 마냥 늘어지거나 마냥 가족물로 비춰지지만은 않는다. 연출의 묘를 꼽자면 아역 배우들의 1인 2역이다. 민국과 민선이 피난길의 무옥과 여동생 역할을 겸했다. 덕분인지 아이들과의 관계가 조금 더 진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