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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과 원자폭탄

by 쑥쑤루쑥

폭탄 맞은 듯한 머리와 강아지처럼 처진 눈매.괴짜 같으면서도 순둥이 같은 인상의 아인슈타인. 그가 위대한 과학자로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영화에서는 스위스계 유대인이자 평화주의자로서의 그를 다룬다.(스포 있음)


히틀러를 위시로 한 나치 정당이 점차 득세할 무렵, 아인슈타인은 전 재산을 몰살당하고 영국으로 떠난다. 과학자로서 그는 이미 세계적 셀럽이었다. 말 한마디가 기사화되고, 툭하면 벌떼같은 기자들에 에워 싸인다. 하지만 타국에서 펼치는 학문의 영역에서마저 독일 측의 정치적인 비하가 스며들고. 영국에서 안전을 보장받은 전원생활을 하면서도 아인슈타인은 히틀러가 그려가는 독일 정세를 예의 주시한다. 그의 비뚤어진 정복욕과 그로 인해 전쟁이 일어날 것을 간파한다. 하지만, 그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때마침, 독일에서 핍박받는 유대계 학자들의 망명을 도우려는 단체가 아인슈타인을 찾아온다. 연설을 부탁한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연설이 히틀러를 자극해독일 내 유태인들이 더 큰 고초를 겪을까 우려하지만, 결국 수락한다. 소박한 단체의 소박한 연설로 예정되었던 행사는 엄청난 규모로 변경되고. 그의 연설을 필두로 미국에서는 독일의 유대인 박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진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종신직을 수락하고 평화로운 연구를 하던 어느 날, 독일에서 원자력 관련 중대한 발견을 했다는 소식을 접한 아인슈타인은 고심 끝에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다. 독일의 연구가 전쟁 무기화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그렇게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되지만, 정작 아인슈타인은 거기서 제외된다. 게다가 독일은 원자폭탄을 끝내 만들어내지 못했다. 반면, 원자폭탄을 성공적으로 만든 미국은 원폭 투하로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다.


아인슈타인은 고뇌한다.평화를 위했던 그의 서한이 과연 평화를 지킨 것일까. 마침내 히틀러는 사라졌다. 전쟁도 이겼다. 하지만 평화는? 그가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당시가 떠올라 더욱 괴롭다.


한편, 독일이 사라진 자리에 러시아가 파고든다. 미국과 러시아의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독일과 같은 재앙이 반복되는 건 아닐까. 과학기술을 토대로 인류는 진보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아쉬운 건 두 가지. 일단, 주연 배우의 분장이 너무 아쉽다. 노년의 헤어라인과 검버섯, 주름이 친구 먹은 피부를 그렇게 어색하게 표현하다니. 아인슈타인의 얼굴이 워낙 널리 알려져 있어서 그런지배우 외모의 싱크로율이 좀 더 높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줄곧 들었다.


극중 일본의 한 기자가 아인슈타인에게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라고 강요한다. 실제로는 서한을 보냈다고 나오는데, 아인슈타인의 연구실을 찾아와 따진다. 꿈인 것처럼, 또는 현실인 것처럼 알쏭달쏭하게 연출한 장면이다. 기자는 묻는다. 그렇게 끔찍한 방법을 써야만 했냐고. 자기네 일본은 충분히 지난날을 반성하고 있는데 그래야만 했냐고. 어처구니가 없다. 반성은 무슨 반성. 지들이 한 짓은 원자폭탄만 안 썼다 뿐 뭐가 달랐다고.


아인슈타인을 천재 과학자로만 알았다. 세계사의 궤적 속에 평화주의자로서 그의 고뇌가 이토록 단단히 얽힌 모습이라니. 특히, 히틀러와 아인슈타인을 교차편집한 장면들은 적어도 그의 고뇌의 크기에 있어서만큼은 정치 지도자급으로 느껴질 정도다.


과학과 인류, 과학기술과 전쟁, 전쟁과 평화, 과학자와 정치인, 과학자와 인간 등 다채로운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사진: UnsplashJESHOO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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