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작이란 이런 거 아닐까.
대사 하나, 손짓 하나, 카메라 앵글 하나, 소품 하나 허투루 쓴 게 없는. 남자 주인공이 농인이기 때문에 그 어떤 드라마보다 대사가 없다. 그런데도 눈빛과 표정으로 그 많은 게 표현이 된다. 정우성, 신현빈 두 주연배우가 연기를 참 잘한다고 처음으로 느꼈다. (스포 있음)
모은의 이야기
농인과 청인이 만나 서로의 세계에 스며드는 과정에서 여러 경계가 사라진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편견을 허문다. 소외받던 학폭 청년은 어쩌면 그보다 더 소외받았을 농인 친구들을 만나 상처를 회복한다. 서로의 현생을 마구잡이로 할퀴던 지독한 첫사랑은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비로소. 웃으며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이 된다.
남자 주인공은 마침내 생모를 마주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여자 주인공 모은이 있다. 모은은 세속적 관점에서 철저한 비주류다. 안정적인 직장을 관두고 뒤늦게 키운 배우의 꿈을 위해 분투한다. 생활을 위해 부지런히 알바하는 한편, 끝없이 오디션을 본다. 그과정에서 모멸감을 느끼고 상처받기도 하지만,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한 계단씩 딛고 올라선다. 남자 주인공 진우의 장애에도 처음부터 편견이 없다. 데이트에도 적극적이고, 마음도 먼저 고백한다. 어려운 진로, 불편한 연애를 기꺼이 선택하는 그녀는 항상 자기 주도적이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저력이 있다. 차분하고 조용하지만 당차고 야무지다.
진우의 이야기
진우도 매력적이긴 마찬가지. 진짜 어른 같다. 나이만큼, 살아온 인생의 깊이만큼 품이 넉넉하고 배려심이 깊다. 다만, 사랑에 있어서는 아직 어리숙하다. 모은을 위해 아낀 이야기들이 모은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특히, 모은을 둘러싼 두 남자. 그들을 그리는 방식이 전형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소리를 잃은 남자와 소리를 만들어내는 남자. 그 과정에서 모은과의 관계를 모은이 소리를 대하는 태도로 그려낸다.
웰메이드 멜로
오랜만에 본 드라마가 웰메이드라 너무 좋았다. 제작자로서의 정우성의 안목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원작 일본 드라마의 판권을 산 게 10여 년 전인데, 작품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기까지 여러 가지로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발랄한 농인 제자들 덕분에 분위기가 마냥 무겁지 않다. OST도 좋다. 다만, 너드 커넥션의 서영주 음색이 너무 선명해서 몇몇 장면에서는 작품과 괴리감이 좀 느껴졌지만. 시간이 흘러 또 봐도 너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