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동물이다. 동시에, 네 발 짐승만을 동물로 칭하기도 한다. 우리는 때때로 말한다. 사람더러. 짐승만도 못하다고.반려동물 전성시대에 걸맞게 값비싼 용품이 등장하자, 또 말한다. 개 팔자가 나보다 낫네.
홍은전 작가는 '인권이 짓밟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게 업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 장애인 야학의 세계에 발을 들인 일, 반려묘와 살게 된 일을 계기로 장애인 운동과 동물권 운동에 자연스럽게 친해진다. 우리의 일상에 장애인과의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장애아를 키우는 어느 엄마의 일갈처럼, 우리 나라 장애인은 시설과 집에 숨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설마저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장애인을 특별하지 않게 대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나라는 갈 길이 멀다고도 생각한다. 건강상태마저 획일적인 틀이 있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요란한 시선을 받는 곳이니까.
우리 동네에서도 가끔 보이는 '교통 약자 택시'가 목숨 건 장애인 인권 투쟁의 결과란 걸 알게 됐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장애인들이 시설을 떠나 시민들과 섞여 시민의 한 사람으로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그들의 꿈이라는 것도.
동물권 관련한 작가의 경험은 공장식 축산업의 피해자인 소, 돼지, 닭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더 많은 고기와 부산물을 위해 동물들의 품종을 개조하고(이 과정을 '장애화'라고 부르고 있다), 대량 학살 시스템으로 죽이는 것이. 전쟁 때문에, 혹은 지도층의 왜곡된 인식으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학살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거다. 실제로 대량 도축에 도입된 컨베이어벨트가 홀로코스트에 사용되었다는 것이, 그 시스템을 설계한 이들이 공장식 축산업 종사자였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인간을 동물과 차별화하는 동시에 동일시한다. 때로는 우열을 가려가며. 끊임 없이. 그 안에서는 다시 비장애인간과 장애인을, 반려동물과 고기가 될 동물을 구분한다. 약자에 대한 배제가 계속되는 한 인간의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은 계속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이 땅의 '비장애인간중심주의', '종차별'에 대해 생각해본다.
필사
p.23 나는 내가 너무 인간인 것에 지쳤고 동물적인 관계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해방감을 느낀다. 기쁨만큼 슬픔을 바라볼 힘이 생기고 해방감만큼 책임감이 생긴다. 나는 동물인 것이다.
p.27 '장애인도 인간이다'라고 외치는 인간들과'인간도 동물이다'를 외치는 동물들의 사이는 내가 경험한 가장 가깝고도 먼 거리다.
p.40 나에겐 이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미래처럼 들린다. 노인요양시설에 갇히게 될 우리 말이다. 아무도 시설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모두가 시설에서 죽는 시대에 살고 있다.
p.46 자기 고통의 주체가 되어야만 기쁨도 희열도 선명하게 움켜쥘 수 있다고 명애의 삶이 말하는 것 같다.
p.50 장애인들은 철저히 버려졌고 동물들은 체계적으로 착취당한다. 그들이 당하는 차별과 폭력은 완벽하게 가려져서 절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p.51 그러나 진실을 본 존재는 반드시 선을 넘는다. 그리고 선을 넘은 존재들만이 볼 수 있는 어떤 세계가 있다.
p.64 축산 동물은 신체적 극한에 이를 때까지 품종 개변을 당한다. 1년에 60개의 알을 낳을 수 있는 닭이 그 4배를 낳도록 품종개변 당하고 짧은 생애 내내 골다공증에 걸려 다리가 부러진다. 젖소의 유방은 몸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많은 젖을 생산하도록 '장애화'되었고, 지속적인 강제 임신과 착유로 인해 젖소의 60퍼센트가 다리를 절고 35퍼센트가 유방염에 걸려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닭은 자신의 거대한 '가슴살'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주저앉고 돼지의 다리는 비대해진 제 체중을 지탱하기에는 너무 약하다. 인간들이 품종개량이라고 부르는 이것이 20세기 전반의 야만을 대표하는 우생학의 한 형태라는 것은살면서 내가 알게 된 가장 무시무시한 진실이다.
p.70 한국은 개 식용 산업이 존재하는 유일한 나라다. 오직 먹기 위해 개를 대량으로 사육하는 개농장이 3,000여곳이 있고 매년 100만 개들이 도살된다. 평생 좁은 케이지에 갇혀 제 똥오줌 위를 벗어날 수 없는 개들은 인간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살아간다. 이토록 잔혹한 착취를 통해 인간이 얻는 수입은 연간 2,800억~5,600억원이다.
p.80 한국은 경제헙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장애인 예산이 꼴찌 수준인 나라다.
p.83 그는 계속 도살장에 갔다. 슬픔이 아니라 무감각을 계속 마주하기 위해서였다.
p.86 축산업이라는 거대한 폭력과 학살 위에 도살되는 돼지는 한 해 2,000만 명.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 그의 이름은 새벽이다.
p.91 어떤 선택은 결실을 맺고 어떤 선택은 그렇지 못했대도 온전히 나쁘기만 한 선택은 없었다. 상처도 좌절도 모두 '내 것'이고 시행착오를 겪을 때마다 영희는 고유하고 선명해졌으니까. 영희는 자라서 영희 자신이 되었으니까.
p.95 경석은 그런 방식으로 많은 제도를 만들어왔지만 그가 정말로 바라는 건 제도 안의 한 자리가 아니라 제도 안과 밖의 경계를 뒤흔드는 것이다.
p.133 먹고 사는 일이 불법인 그는 존재 자체가 범죄였다. 돈을 벌 방법이 없는 사회에서 돈을 벌겠다고 나선 장애인은 어떻게 해도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 '병신'들에게 허락된 노동은 구걸뿐이었다.
p.134 살아있다는 것이,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어마어마한 특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p.142 인간의 눈으로 보면 '음식'이고 동물의 눈으로 보면 '폭력'이다. 햄버거 패티처럼 '사소한 취향'이 되기도 하고 '역사상 일어난 모든 전쟁이 만들어낸 비극을 다 합한 것보다 더 큰 폭력'이 되기도 한다.
p.143 우리는 왜 한편에선 동물을 보호하고 한편에선 동물을 학살하는가.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입는가. 우리는 왜 '개를 먹으면 안 된다'는 주장엔 고개를 끄덕이면서'소, 돼지, 닭을 먹으면 안 된다'는 주장에는 '과하다'고 반응하는가.
p.153"사회적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권력을 획득해가는 과정이 좋았습니다. 저는 관계가 역전되고 권력이 전복되는 과정에 희열을 느끼고, 그것이 제가 장애인운동을 좋아하는 이유 같아요."
p.162 우생학은 우수한 유전자를 보존하고 열등한 유전자를 제거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최우량종만 번식시키고 나머지는 거세하고 죽이는 동물 육종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우생학의 광풍으로 1930년 미국 주들의 절반 이상이 '저능아, 뇌전증 환자, 정신박약자'에 대해 강제 불임 수술을 하는 단종법을 통과시켰다.
p.164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었다. 그 역사에 동물이 포함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p.180 이야기한다는 것은 타인과 관계 맺는 일이고 우정을 나누는 일이며 그들로부터 날마다 배우고 성장하는 일이라고, 규식이 말했다.
p.183 "내겐 소중한 사람이 언론에서 그저 '불쌍한 장애인'으로 취급되는 건 무척 모욕적이었다.
p.184
내가 충격을 받은 건 장애인의 열악한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장애인도 버스를 타자'라는 언뜻 소박해 보이는 구호는 실은 장애인을 배제한 이 문명 전체를 문제 삼겠다는 뜻이다.
p.185 당장 가야할 길이 막힌 사람들이 길길이 날뛰며 우리가 법을 어겼다고 비난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장애인은 어길 법조차 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p.196 어른이 된 시점은 동물원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때라고 종종 생각한다...멀쩡한 생명을 가두고 때때로 전시한다는 점에서 장애인시설은 영락없이 동물원이다.
p.211 세상엔 절대적 악인과 선인이 있는 게 아니라 그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선하고 악할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
p.219 '인간의 얼굴에서 짐승이 보이면 전쟁이나 학살이라고 부를 텐데, 짐승의 얼굴에서 인간이 보이면 그건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p.227 이유 없이 조롱당하고 무력하게 총을 맞고 피 흘리며 죽는 인간들에게서 동물이 보일 때, 나는 이전보다 훨씬 생생하게 전쟁의 가슴 아픔과 무시무시함을 느끼고 있었다.
p.237 홀로코스트의 주요 이론가, 설계자, 집행자들은 농업과 동물 육종 권위자이거나 우생학 지지자들이었다. 홀로코스트 설계자 힘러는 농업을 공부했고 양계장을 운영하며 닭을 육종했던 사람이었고, 이론가 다레는 농업 전문가였다. 아우슈비츠 소장 회스는 농업의 열광적 지지자로 수용소를 농업연구소로 만들고 싶어했던 사람이었다. 누구도 '괴물'이 아니었고 '평범한' 농업과 축산업 권위자들이었다. 축산업은 우생학의 요람이었다. 유대인을 절멸시키는 임무를 수행한 이들에게 동물착취와 도살의 경험은 훌륭항 훈련이었다.
p.241 세계대전의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대학살이 오늘날 우리 일상을 지탱하는 기본 질서라는 사실을 자각하면, 인류 역사 최악의 범죄인 홀로코스트가 우리의 식탁 아래 거꾸로 매달려 작동되고 있다는 기이한 감각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p.243 아름답고 비효율적인 세계로의 초대.
p.245 도살장 앞에서 만난 동물권 활동가들은 이 당연한 현실이 전혀 당연한 게 아니라고 ,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그 말은 몹시 충격적이면서 동시에 익숙했다. 아니, 익숙했기 때문에 충격적이었다. '동물'의 자리에 '장애인'을 놓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무수히 반복해온 말이었기 때문이다.
p.251 동물들을 말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며 고통조차 느끼지 않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들의 고유한 능력은 무시되고 오직 이성과 언어 같은 인간 중심적 능력이 절대 기준이 된다.
p.255 세계의 확장은 내가 아는 만큼이 아니라 내가 알 수 없는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가장 혁명적으로 이루어진다.
p.257 나는 인권이 짓밟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장애인이나 부랑인 수용소의 피해생존자 같은 이들을 만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어떤 것을 기어이 말하게 하고 그것을 다시 글로 바꾸는 일이다.
p.258 하지만 나는 내가 기록한 글을 보며 자주 공허함을 느꼈다. 현실의 그들은 '짐승처럼' 울었는데 글 속엔 '인간'만 보일 때 그랬다.
p.259 몸으로 말하고 현재를 살며 서로의 작은 몸짓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동물적 언어.
p.260 비장애중심사회가 우리의 인간성을 억압하듯 인간 중심사회는 우리의 동물성을 억압한다.
p.263 경쟁과 효율성, 자립, 언어와 이성을 중심에 두지 않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함께 상상하며 서로가 꿈꾸는 세계가 놀랍도록 닮았다라는 것을 기쁘게 확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