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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 Jan 30. 2022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후견인 제도 탈출과 그 의미

By Amber Tamblyn (June 26, 2021)

[저자 소개] ; 앰버 탐블린 (Amber Tamblyn)은 청춘 영화 '청바지 돌려 입기 (The Sisterhood Of The Traveling Pants)' 시리즈로 유명한 배우입니다. 해당 작품에서는 현재 라이언 레이놀즈 (Ryan Reynolds)의 아내이자, 미국 가십걸 (Gossip Girl) 시리즈로 유명한 블레이크 라이블리 (Blake Lively), 미국 길모어 걸즈 (Gilmore Girls) 시리즈로 유명한 알렉시스 브레델 (Alexis Bledel), 그리고 미국 어글리 베티 (Ugly Betty) 시리즈로 유명한 아메리카 페레라 (America Ferrera)도 볼 수 있습니다.


원문: https://www.nytimes.com/2021/06/26/opinion/britney-spears-amber-tamblyn.html



2007년 팝아이콘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LA 주변부에 있는 미용실에 가서 본인의 머리를 대머리로 밀어버렸다. 나는 그 미용실을 알고 있었다. 내 집에서 바로 언덕 위에 있었던 곳이기에 예전에 운전하며 많이 지나쳤던 곳이었다. 이후 그녀는 우산을 들고 포토그래퍼의 자동차로 향했고, 그 순간 파파라치 무리들은 수천 번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며 전 세계가 영원히 들여다볼 그녀의 사적인 지옥을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자라면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음악을 자주 듣지는 않았지만, 상기 서술한 바와 같이 그녀가 표출한 새로운 형태의 분노에는 큰 공감을 했다. 외부에서 보면 그녀는 그저 술에 취해 난리를 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그녀의 분노 표출이 나 역시도 저항하고 싶은 어떤 물리적 힘에 대하여 이뤄지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10살 때부터 배우로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독립영화에 출연했고, 이후 11살 때부터 17살 때까지는 "General Hospital"이라는 드라마에 출연했다 (i.e., 할리우드와 ABC 채널 각각에서 가장 오랫동안 방영된 드라마 시리즈물). 21살이 되었을 때, 나는 "Joan of Arcadia"라는 인기 TV 쇼에 출연했고, 이때부터 가족 살림에 큰 변화를 가져다줄 정도로의 큰돈을 벌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부모님은 내 삶에 개입하고 모든 걸 관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내 공동 매니저로 활동했고, 어머니는 내 수입을 관리했다. 내 돈은 우리 가족여행에, 저녁식사에, 때때로는 관리비 지불에도 쓰였다. 결국 이것이 우리 가족의 사적, 프로페셔널 관계에 혼란을 줄 즈음에,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


이번주에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 21살 때까지 번 돈이 내가 지금까지 번 돈보다 많을 것이 분명한 그녀는 -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행해진 13년 동안의 후견인 제도의 경험에 대하여 유죄를 강력히 시사하는 법정 증언을 했다. 그녀는 무대 퍼포먼스를 강요받고, 그녀의 의지와 무관하게 약을 먹어야 했던 다수의 학대 사례에 대하여 증언했다.


내 삶의 여정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것과는 달랐다. 거의 대부분의 미디어는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아버지와의 관계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했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 부모님과 건강하고 돈독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만큼 유명하지 않았다. 물론, 나는 에미상과 골든글로브상에 후보로 오른 적은 있었으나, 브리트니 스피어스처럼 전 세계가 알고 있는 수백만 장의 앨범 판매고를 올린 가수는 아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겪었을 수년간의 학대와 비슷한 스케일의 경험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전히 비슷한 점은 존재한다. 어려서부터 명성을 얻고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을 때 따라오는 결과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있더라도 어디로 귀결될지 모른다는 것을 증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결과가 독성을 띨 수 있고, 젊은 여성에게 취약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우리 가족 살림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의 유의미한 돈을 벌기 시작할 때, 우리 가족은 부유하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는 싱어송라이터이자 공립학교 교사였고, 아버지는 배우 출신의 화가였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세탁할 때 우연히 돌돌 말려진 100달러짜리 지폐를 오래된 양말에서 발견하더니, 이를 하늘 높이 들며 너무나도 좋아하셨다. 그리고 내게, 이게 우리 가족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냐고 되물었던 기억이 있다.


내 부모님은 내 프로페셔널 삶의 대부분을 관리했고, 이는 내가 20대 후반에 약혼을 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내 처음 연기경력에서부터 아버지는 공동 매니저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대본을 읽었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굴했으며, 어머니는 내 수입과 투자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비즈니스 매니저였다. 이는 나름 풀타임 업무였기 때문에 그들은 돈을 받으며 일을 했다.


그들은 언제나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윤리적이었다. 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아버지가 그녀를 반복적으로 불렀던 것처럼, "경주마"처럼 대우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 어머니는 수표 결제부터 신용카드 사용내역 기재까지 돈 관리와 관련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다. 아버지는 나를 굉장히 보호해 주는 지지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돈과 얽혀서 부모님에게 급여를 드리는 형태는 우리 모두의 관계를 해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부모님과 돈 얘기를 할 때마다 왜 내가 번 돈에서 나오는 용돈에 대하여 내가 요청을 해야 하는 것인지 감정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다. 부모님과의 모든 대화는 내 수입과 일에 관한 것이 되었고, 때문에 나는 맘 편히 그들에게 인생 상담을 하거나 삶의 조언을 구하는 등의 시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수입원이었기 때문이다.


더 심오하게는, 인간관계의 맺고 끊음이 불분명했다. 내가 돈을 더 많이 벌수록, 내가 지원해야 할 그룹은 더 확장되어 먼 친척들이나 친구들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소액 대출이 필요하거나 급전이 필요할 때마다 찾는 대상이 되었다. 내가 21살이 되었을 때, 나는 심지어 내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기 위해 그의 자동차를 사주기도 했다. 나는 그 정도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나의 죄책감을 달래기 위해 돈을 쓰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한마디로 나는 모든 사람의 ATM 기계였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은행이었다. 내가 자랄수록, 그 사랑의 원천을 믿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이번주 진행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증언에서 가장 믿기 힘들었던 것은 그녀가 더 이상의 자녀를 가질 수 없도록 자궁 내 피임기구의 사용을 강요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돈만을 통제받은 게 아니라, 그녀의 몸까지도 통제받은 것이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는 젊은 여성에 있어 돈과 몸은 틀림없이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이내믹과 관련하여, 나는 내 버전의 사례를 공유할 수 있다. 자라면서 나의 몸무게는 가족들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제작자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히 논의되었다. 나는 쓴웃음을 참고 견디곤 했다. 조용히 마른 채로 있는 것은 재고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재고용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나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다는 것이었고, 더불어 가족을 위한 돈을 계속 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내가 겪은 것이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겪은 통제와 학대의 다이내믹에 비할 바가 결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다이내믹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쉬운 것인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는 한 개인이 자라면서 가장 기본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적정한 인간관계의 선을 지키는 것을 연습하는 등의 역량을 배양할 기회가 사라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부모님과 프로페셔널한 관계를 정리했을 때 그들은 뭔가를 잘못했다는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이건 그들의 잘못이 아닌, 돈의 잘못이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대중적인 시선에서 오랫동안 사적인 통제를 당한 유일한 여성은 아니지만, 그 경험을 증언하여 대중적인 기록을 남긴 첫 여성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그녀가 증언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는 지난 2007년 분노에 차있고 또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에 지쳐버린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현재 그녀의 모습마저도 또 다른 타블로이드 기사처럼만 활용하는 데 혈안이 된 세상이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증언이 대단히 급진적인 행동이었다는 것을 안다 - 바라건대, 이러한 행동은 모든 세대와 산업분야를 걸쳐 비슷한 고통을 받고 있는 여성에게 파급효과를 주기를 기대한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용기를 내 발언함으로써, 우리의 자율성 - 몸과 재정적 측면 모두 - 이 싸워서 쟁취할 만한 것임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우리는 현재 그녀의 진실을 결코 모를 수 없다 - 그녀를 위해 쓰이거나, 만들어지거나, 투영된 목소리가 아닌, 브리트니 스피어스 본인의 목소리로 증언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진실을 듣고자 하는 건 온전히 우리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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