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뱃지는 유용할까?
우리나라는 임산부들에게 뱃지를 나눠준다.
배가 부른 상태로 출퇴근길에 버스 또는 지하철을 타도 앉아서 가기가 쉽지 않기때문이다. 임신을 하고 나서 경력단절에 대한 걱정보다 지옥철을 임신의 몸을 끌고 타는 것이
더 무서웠다. 임신 초기에 배가 부르지 않을때는 임산부 뱃지가 유용할것이라 생각했지만 경험상 50프로 정도의 확률로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경우 일어나 주었다. 배가 많이 나오면 뱃지가 없어도 일어나 주겠거니 기대했지만 서울 직장인들의 피로도는 누군가에 양보해줄 마음을 매일 넘어서 있다.
저출산문제를 우리 사회는 얼마나 공감하고 있을까? 공감할 수 없게 만드는 우리의 환경은 어떠한가?
한사람이 편안하다고 느끼는 반경이 최소 5세제곱미터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불특정 다수와의 거리가 10센치 이하로 줄어드는 출퇴근 시간은 생존의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한사람 서있기도 비좁은 공간에서 느끼는 강한 생존의 본능보다 어떻게 양보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몸이 불편한 사람, 나이가 많은 분, 배가 나온 임산부가 눈에 보이긴해도 신원불명의 사람들과 가까이 붙어 출퇴근을 하는 지옥철안에서 나의 최소공간이 확보되는 지가 더 중요한 출퇴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울 밀집화 현상은 서울의 저출산율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서울 고밀화 현상이 해소되어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할 여유가 생기는 사회가 될지, 서울 고밀화 현상을 해소하여 자연스럽게 저출산문제가 해결되어 교통약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할 여유가 생길지 모르겠다.
임산부석에 앉지 못하고 서서 갈때 한번은 앞뒤로 사람이 밀려 배가 압축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저기요 여기 배요! 배요!"라고 소리친적이 있다. 배를 보호해야한다는 의무감에 나도 모르게 터져나온 말은 내가 임산부라는 설명에 대한 내용이 아닌 당장 뱃속에 아기를 보호해달라는 외침이었다.
사회적 믿음안에는 내가 양보하면 나중에 내가 약자가 되어있을때 배려를 받을 수 있는 믿음도 포함되어있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 사람이 너무 많아지면 내 차례는 영영 안올것만 같아진다.
출퇴근 지하철을 탈때 이런 환경가운데에도 양보를 해주시는 분들을 볼때면 감사하기도 하고 나도 받은 이 배려를 꼭 잘 돌려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된다. 서울 인구밀집도가 적당했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같은 사람이지만 한국의 지옥철을 타며 출퇴근 할때와 이보단 공간이 넓은 시드니의 출퇴근 트레인을 탈때의 마음과 태도가 다르다. 사람간의 거리가 어느정도 확보될때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더 느껴지고 눈에 잘 안띄는 다른 사람의 사소한 불편함도 더 잘 보이게된다.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나와 우리가 이문제를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